신입사원 서모 씨(29)는 평소 추위를 많이 타 USB를 이용한 소형 전열제품을 애용한다. 잘 땐 온수매트를 이용하고 출근 길에는 항상 휴대용 핫팩을 들고 다닌다. 얼마 전 직장에서 신년회를 가진 후 술김에 온수매트 온도를 높게 설정한 채 깜빡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다리 피부가 붉게 변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화상 부위가 옷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고 결국 물집까지 잡히자 병원을 찾은 결과 저온화상(low temperature bur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저온화상은 전기장판, 핫팩, 전기난로 등 1인 온열기구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40~50도 열에 피부가 1시간 이상 접촉돼 화상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한 난방기계 회사가 낮은 온도에서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로 이 단어를 사용했으며, 의학적으로는 정식 명칭이 없고 특정 질병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고온화상에 비해 덜 위험해보이지만 오히려 화상 깊이는 더 깊어 치료가 어렵고 심장쇼크 등 다른 장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의 피부는 단백질로 구성되 오랜 시간 40도 이상 열에 노출되면 변형이 일어난다. 48도에서는 5분, 50도에서는 3분, 60도 이상에서는 8초 정도 노출되면 단백질이 파괴 및 변형되고 끓는 물 온도인 100도는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는다. 피부가 붉어지는 가벼운 증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심하면 물집이 잡히고 피부조직이 괴사돼 피부가 갈색이나 검정색으로 변할 수 있다. 신경조직이 파괴되면 마비 증상이 오기도 한다.
최재은 고려대 안암병원 피부과 교수는 “사람들은 흔히 고온에서만 화상을 입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물이 끓는 온도의 절반도 안 되는 48도에서도 충분히 화상이 발생한다”며 “저온화상은 데지 않을 것처럼 낮은 온도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피부 깊숙이까지 열이 침투하는 데다 화상을 입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령별로 발생 원인이 다른데 젊은층은 음주로 인한 숙취와 수면제 복용 후 취침, 고령층은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자각 증상이 별로 없어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피부가 약한 유아와 노약자는 피해가 크다.
특히 저온화상은 심장건강과 직결된다. 찜질방 바닥이나 온열매트 위에 장시간 누워있으면 근육이 압력을 받은 상태에서 칼륨 성분이 과도하게 녹아나와 혈관으로 들어간다. 이럴 경우 맥박이 고르지 못한 부정맥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지나치게 많은 칼륨 성분이 심장에 들어가면 심장쇼크까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과음까지 겹치면 심장에 더 큰 부담을 주게 된다. 과음 후 집이나 찜질방의 따뜻한 바닥에 2시간 가량 누워있으면 근육이 열과 압력으로 괴사하는 ‘횡문근융해증(Rhabdomyolysis)’이 발생할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저온에서 뜨거운 느낌을 받기 힘들어 같은 자세로 오래 누워있게 되고 피해도 클수밖에 없다.
최근엔 전열기구가 아닌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IT기기가 저온화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10분 이상 통화하면 기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볼과 귀를 스마트폰에 대고 장시간 통화하면 안면 피부가 화상을 입어 빨갛게 변한다.
저온화상을 입는 진피나 지방세포는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고 피부 변화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초기증상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러다 피부가 트는 것처럼 갈라지면서 따갑고 가렵다. 열에 노출된 부위에 생긴 붉은 반점 모양의 열성홍반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화상 부위 피부색이 변하는 색소침착은 1년 이상 지속되거나 평생 남을 수도 있다.
최 교수는 “낮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노출되는 특성으로 고온에 의한 화상보다 면적은 좁지만 피부손상 깊이는 더 깊다”며 “저온화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80%가 피부표피와 진피층 모두 손상된 3도 화상으로 피부이식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화상은 열 강도, 노출 시간, 피부 예민도 등에 따라 1도에서 4도로 분류된다. 1도화상은 피부의 표피층만 손상된 것으로 환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따가운 통증이 지속되면서 표피가 벗겨진다. 여름철 햇볕에 그을리는 현상이 대표적이며 차가운 물로 열을 내리는 응급처치법이나 연고제로 치유된다. 2도화상은 피부의 겉표면과 진피 일부가 손상돼 수포가 발생하고 심한 통증이 동반된다.
3도화상은 표피와 진피는 물론 피하지방층까지 손상된 상태이며 조직괴사 및 부종이 심하지만 통증은 오히려 없는 게 특징이다. 4도화상은 피부 전층과 근육, 뼈 등이 손상돼 응급치료가 필요하다.
저온화상을 피하려면 전열기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온수매트나 전기매트의 경우 직접 피부에 닿지 않도록 이불을 깔고 사용하고, 처음엔 온도를 높였다가 몸이 따뜻해지면 잊지 말고 낮춰야 한다. 매트 전원을 켜놓고 잠들면 몸이 온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옷에 붙이는 핫팩을 사용할 땐 안전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확인하고, 피부에 직접 부착하지 말고 옷 위에 붙여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장시간 통화할 땐 마이크 기능이 포함된 이어폰을 사용해 피부가 기기에 직접 닿는 것을 피해야 한다.
온열제품으로 화상을 입으면 12도 온도의 생리식염수로 화상 부위를 씻어낸다. 생리식염수가 없다면 얼음물이나 얼음을 수건에 감싸 찜질하는 것도 도움된다. 화상 부위에 생긴 물집을 제거하거나 일반 연고를 바르면 상처 부위에 2차 감염이 발생할 수 있어 깨끗한 수건 등으로 화상 부위를 덮어주는 게 좋다.
최 교수는 “뜨거운 물체가 피부에 닿은 뒤 간지러웠던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했을 텐데 그 단계를 넘어서면 저온화상으로 악화될 수 있다”며 “전기매트나 전기장판은 물론 휴대용으로 갖고 다니는 핫팩이나 손난로 등도 최고온도가 60도 넘어가므로 주머니에 장시간 두고 사용하면 위험하고,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전기난로도 2~3시간 가까운 거리에 두고 사용하면 화상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알코올, 소주, 치약, 알로에, 감자 등 민간요법은 감염이나 추가적인 손상을 초래할 수 있어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