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분석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환자별 유전적 특성에 맞춘 정밀한 질병 진단과 예방·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 그동안 유전자검사는 친자확인, 범죄수사(증거물에서 범인 DNA 검출) 용도로 주로 쓰였다. 단순히 DNA 염기서열 일치 여부를 판정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헬스케어 분야에서 질병의 진단·예방·치료 등 다양한 목적으로 관련 응용기술이 활용될 전망이다.
DNA 유전정보는 4종류의 염기인 아데닌(A), 티아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배열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유전체분석 결과는 특정 약에 치료반응이 높은 환자 선별, 어떤 유전자변이를 타깃으로 한 표적치료제 개발 및 적용, 유전적으로 발병위험이 높은 질환 예방 등에 쓰인다. 개인 유전체분석을 통한 질병 예방과 치료는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두 명에 의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졸리는 유전자 BRCA1 돌연변이(mutation)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분석 결과에 따라 2013년 유방을 미리 절제해 암 발병률을 5%로 낮췄다. BRCA1 또는 BRCA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유방암 및 난소암 발병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매우 높다. BRCA 돌연변이 유전자는 유전성이 강해 자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졸리의 외할머니, 어머니, 이모 등은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일찍 사망했다.
지난해 한국유방암학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졸리의 수술 사실이 알려진 이후 BRCA 유전자 검사는 3배 이상 증가했으며 유방절제술 건수는 5배나 늘었다.
잡스는 개인 유전체분석을 통해 암세포조직 및 혈액에서 췌장암을 재발하게 한 변이유전자를 밝혀냈지만 이를 치료할 약이 없어 2011년에 사망했다. 당시 그가 유전자검사를 받는 데 약 10만달러(약 1억원)의 거금이 들었지만 최근엔 1000달러(약 100만원)으로 비용이 떨어져 유전체분석 기반 질병 치료 및 예측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다.
100달러 게놈시대가 다가와 누구나 잡스처럼 정밀의료 서비스를 받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단 얘기다. 지난 10일(미국 현지시각)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next-generation sequencing) 기반 세계 유전체분석 장비 시장을 이끌고 있는 일루미나는 개인 유전체분석 비용을 100달러(약 11만7000원)까지 낮출 것으로 기대되는 신제품 ‘노바섹(NovaSeq)’을 공개했다. 분석 비용을 1000달러(약 100만원)까지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이섹엑스텐(HiSeq X Ten)’을 출시한 지 3년 만이다.
국내 유전체분석 전문기업 중에서는 테라젠이텍스가 2010년 아시아 최초로 예측성 개인 유전체분석 서비스인 ‘헬로진’을 국내에 출시하는 등 두각을 보이고 있다.
헬로진은 막대한 의료비가 지출되는 암, 만성질환, 희귀질환 등 120종의 질병에 대해 유전적 취약성을 분석해준다.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인 포함 동양인에서 유병률이 높은 질병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로써 발병위험이 높은 질환을 미리 알고 환경적 요인을 개선해 예방할 수 있다. 환자는 제휴 병원에서 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소량의 혈액으로 분석한 유전자정보를 바탕으로 의료진으로부터 건강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
헬로진은 △위암·폐암·췌장암·간암 등 암 총 11종 △뇌졸중·당뇨병 등 심혈관 및 대사질환,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편두통 등 신경계질환, 관절염·아토피피부염·크론병 등 면역계질환 등 일반질환 최대 35종 △니코틴 및 알코올의존증·항암제 거부반응 등 식품 및 약물반응, 고도근시·치열변형(부정교합)·중성지질수치 증가 등 신체적 특징에 관한 총 10종 △낭성섬유증·선종성폴립증·고셔병 등 희귀질환 보인자 총 44종 등에 관한 발병위험도를 예측해준다.
이 회사는 유전체검사를 크게 이들 4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다양하게 조합한 분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헬로진 암’은 암 11종만, ‘헬로진 플래티넘’은 암 11종 외 일반질환과 식품·약물반응 및 신체적 특징에 관한 17종을 더해, ‘헬로진 노블’은 4가지 전 영역에 관한 100종을 모두 분석해준다. 최근 출시된 ‘헬로진 아이’는 유·소아기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9종의 자가면역질환, 만성질환의 유전적 요인을 알려준다.
테라젠이텍스 관계자는 “유전자검사 기반 질병 예측 서비스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생에 한 번만 받으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드는 중대 질병을 예방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며 “한 고객은 헬로진 검사로 난소암 발병위험이 높은 것을 알고 암보험에 미리 가입해 이후 난소암에 걸렸지만 치료비 부담을 줄여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회사는 세계에서 5번째로 인간 게놈지도를 규명한 유전체분석 분야 개척자로 헬로진을 통해 6년 이상 수많은 동양인 유전자정보를 폭넓게 구축해 한국인 포함 아시아인에 최적화된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헬로진 검사결과의 정확도는 99.96%로 자사는 국내 유전자검사 정확도 평가 4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부터 소비자 직접 서비스(DTC, direct to consumer)가 시행됨에 따라 최근 ‘진스타일 다이렉트’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건강과 외형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지표를 확인해 고객에게 맞는 건강관리법을 제시한다.
유전체분석 DTC 합법화로 체질량지수, 중성지방농도, 피부노화, 혈당 등 12개 부문과 관련된 42개 유전자에 관해 의사의 처방 없이도 고객에게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진스타일 다이렉트는 약국이나 온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다. 체질량지수·중성지방농도·콜레스테롤·혈당·혈압·카페인대사 등 6부문에 관한 체내 유전적 특성을 알려주는 ‘진스타일 헬스’와 피부노화·피부탄력·색소침착·탈모·모발굵기·비타민C대사 등 자신의 외형적 유전특성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진스타일 뷰티’로 나뉜다.
이 회사는 부산, 서울, 경기, 대구, 광주 등 전국에 ‘유전자검사 약국 도입을 위한 교육 세미나’를 진행하고 진스타일 다이렉트를 약국에서 손쉽게 신청하고 전문가를 통해 분석결과에 대한 설명을 전달받는 체계를 구축했다.
테라젠이텍스는 최근 진스타일 뷰티와 연계해 자신의 피부 DNA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할 수 있는 ‘진스타일 스킨’ 서비스를 론칭했다. 진스타일 스킨은 △피부탄력 △일광노출에 대한 보호력 △피부민감성 및 염증억제 능력 △색소침착에 대한 보호력 △산화스트레스 방어력 △주름형성 억제 능력 등 6가지 피부의 타고난 안티에이징 능력을 분석해준다. 예컨대 자신의 피부가 자외선에 강하지만 주름에 약하면 주름개선 효과가 뛰어난 화장품을 사용하는 게 피부관리에 효과적이다.
이밖에 이 회사는 NGS 기반 비침습적 산전 기형아선별검사(NIPT, Non Invasive Prenatal Test) ‘제노맘’, NGS 기반 임상연구용 유전체분석 서비스로 암 관련 유전자변이를 확인하는 ‘온코믹스’, 유전성 유방암·난소암의 원인인 BRCA1 및 BRCA2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를 알 수 있는 ‘브라카인사이드’ 등을 서비스하고 있다.
테라젠이텍스에 따르면 제노맘은 국내 NIPT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유방암 예측검사(BRCA)인 브라카인사이드와 함께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지난해 3분기 회사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1%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