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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마니아, 병원 달려간 사연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11-21 14:04:16
  • 수정 2021-08-24 16: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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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사 시간 단축, 위식도역류·비만 유발 … 정신건강엔 도움 주장도
혼자 밥을 먹을 때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식사 시간을 단축시키고 음식을 덜 씹게 해 소장과 십이지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직장인 권모 씨(여·26)는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음식점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게 일상이 됐다. 회사 근처는 밥값도 비싼 데다가 직장 사람들과 마음에도 없는 대화를 하며 식사하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혼자 밥을 먹는 게 주변 눈치도 보이고 불편했지만 점차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편해졌다. 스마트폰으로 좋아하는 드라마나 동영상을 시청하며 밥을 먹으니 시간 활용 면에서 일석이조이고, 소화도 더 잘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가슴 안쪽이 쓰리는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은 결과 위식도역류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근 독거노인, 취준생(취업 준비생),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 등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끼니를 때우는 ‘혼밥족’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엔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혼술’이란 단어도 생겼다. 

혼밥족은 학생과 사회초년생인 20~30대가 주를 이루지만 혼자 밥을 먹는 이유는 연령별로 조금 다르다. 20대의 혼밥이 일종의 ‘여유’라면 30대에게는 ‘생존’이다. 지난 5월 발표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1인가구 증가 양상 및 혼자 식사의 영양’ 연구에 따르면 20대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이유로 ‘여유롭게 먹기 위해’(24.2%)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반면 30대에서는 ‘같이 먹을 사람을 찾기 어려워서’라고 답변한 비율이 38.7%로 1위를 차지했다.

사회문화 중심이 단체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혼밥은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식사의 질이나 충분한 식사 시간을 담보하기 어려워 건강 상 불이익을 얻기 쉽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연구에 따르면 청년층이 혼자서 밥을 먹는 등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면 염증이나 조직손상 여부를 가늠하는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비만 등 각종 질환의 위험도 증가했다. 

혼자 밥을 먹으면 하면 평소보다 빨리 식사하는 경우가 많아 위장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음식을 섭취하고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20분 정도 소모된다. 즉 의학적으로 한 끼 식사에 최소 15~20분은 투자해야 소화나 영양면에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난해 이영미 가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서울·경인 지역 대학생 89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혼자 밥을 먹는 대학생의 약 70.4%가 15분 안에 식사를 마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분 내에 밥을 먹는다는 응답자도 8.7%에 달했다. 반면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 응답자의 식사시간은 대개 15~30분(48.4%)이었다. 

보통 위가 찰 정도로 밥을 먹으면 뇌에서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나온다. 하지만 음식을 빨리 먹으면 뇌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과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소화기관에 부담이 가중돼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역류성식도염이 발병할 수 있다. 혼자 밥을 먹을 때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식사 시간을 단축시키는 주요인이다. 오범조 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사 중 TV를 보면 뇌가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TV에 정신이 팔려 덜 씹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됐다”며 “음식물을 제대로 씹어 넘기지 않으면 충분히 소화되지 못해 결국 위와 십이지장에 큰 무리를 준다”고 말했다.
게다가 혼밥족이 즐기는 즉석식품이나 편의점 도시락류는 나트륨, 당분, 화학첨가물의 함유량이 높아 대사질환이나 비만이 동반될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김태현 연세대 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과 교수팀이 2014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성인 4181명을 분석한 결과 혼자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은 가족과 주로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보다 우울감을 가질 확률이 1.5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남성에서 더 두드러져 혼자 저녁식사를 하는 남성은 우울증 위험이 최대 2.5배 가까이 높았다.

홍나래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성은 여성에 비해 직장이나 학교 등 공동체 내에서 소속감을 더 많이 느끼는데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사 시간을 혼자 보내면 그만큼 박탈감이나 우울증 등을 겪을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혼자 저녁을 먹으면 가족과의 식사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교감 및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놓치게 돼 외로움이나 우울감이 증가하게 된다.

혼자 술을 먹는 혼술은 알코올의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밥보다 치명적이다. 미국 알래스카대 심리학과팀의 연구결과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은 타인과 같이 마시는 사람에 비해 알코올의존증 발병 위험이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따르면 혼자 술을 마시면 함께 대화할 상대가 없어 술 자체에만 집중하고, 술만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라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게다가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 자신의 주량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면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의 10% 정도가 호흡을 통해 배출되지만 혼술에서는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홍 교수는 “여럿이 술을 마시려면 술자리를 일부러 만들어야 하지만 혼자 술 마실 때는 낮밤 구분 없이 어디에서든 마실 수 있어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진다”며 “술을 혼자 마시기 시작하면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반대로 혼밥과 혼술이 자신만의 시간과 여유를 갖게 해 건강에 도움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브라이언 원싱크 미국 코넬대 식품브랜드연구소 박사팀이 혼자 밥을 먹는 그룹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은 그룹을 비교 분석한 결과 혼밥족이 오히려 건강한 식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사람과 식사한 참가자 중 평소 소식하던 사람은 과식했으며, 반대로 평소 든든하게 먹던 사람들은 양에 차지 않게 먹었다. 원싱크 박사는 이같은 결과를 일종의 ‘규범의 힘’으로 파악했다. 그는 “같이 식사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식사량과 속도를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혼밥과 혼술의 증가는 단체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로 문화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개인의 선택에 따른 사회문화의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와 사회 불신의 증가가 주된 원인이라면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 교수는 “혼자 밥을 먹든 술을 먹든 건강을 생각한다면 정해진 시간에 느긋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며 “인스턴트식품 등 간편식 위주로 식사하면 식사시간이 빨라지고 영양 불균형 상태가 되기 쉽다. 제육덮밥 같은 한 그릇 음식보다는 가급적 여러 종류의 반찬이 나오는 백반을 먹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제철음식과 과일로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 등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홍 교수는 “평소 식사량과 식사 시간을 유지한다는 조건 아래 1주일에 한두 번씩 혼자 밥을 먹고 자신만의 시간과 여유를 즐기면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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