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끈한 피부 만들려다 영구 흉터 남고, 자칫 집도의 실명 우려 … 굳이 치과 찾는 경우 드물어
“치과에서 프락셀 받을 수 있다고요? 그건 좀…. 굳이 치과에서 프락셀 맞겠다는 사람도 없을걸요.”
직장인 조모 씨(29)는 여고 시절 생긴 뺨의 여드름 자국을 지우기 위해 프랙셔널 레이저 치료를 알아보고 있다. 그러던 중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최저가에 가까운 치료비를 선보인다는 곳을 접했지만 아무래도 꺼려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술한다는 병원이 다름 아닌 ‘치과’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치아 문제에 전문적이어야 할 치과에서 미용시술을 한다는 말에 어딘지 찜찜했다.
현재 법적으로 치과에서 프락셀 미용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치과의사가 치과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으로 환자의 안면부에 프락셀레이저 등 피부레이저 시술로 주름 제거, 피부 잡티제거 등을 시행한 치과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레이저 시술은 안전성이 검증돼 있고, 치과의사가 전문성을 갖는 구강안면 치료 범위에 속하며, 치과의사가 해당 시술을 한다고 해서 사람의 생명·신체, 일반 공중위생상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무죄 판결의 이유였다.
이와 관련 피부과 전문의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이번 판결로 치과의사의 미용시술이 전면 허용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미용 목적의 치료이더라도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오히려 국민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라 반박하고 있다.
프랙셔널레이저(Fractional laser, 일명 프락셀)는 다양한 광원으로 피부에 눈에 안보일 정도의 구멍을 촘촘히 뚫어주는 치료방식을 통칭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원통 모양의 미세한 열손상을 진피 깊숙이 세로로(수직 방향) 전달하며, 주변 정상조직이 신속히 창상치유되도록 유도해 피부를 재생하는 원리를 낸다.
이때 생겨난 미세한 열손상 부위는 ‘미세열치료구역’(microthermal zone, MTZ)이라 불리며, MTZ를 중심으로 창상치유 과정이 일어나 다양한 피부재생 성장인자가 배출된다. 레이저가 침투된 조직에는 섬유아세포가 활성화돼 콜라겐 재생성을 촉진하는 등 손상된 곳을 치유하면서 결과적으로 피부를 맑게 되돌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프랙셔널레이저는 피부재생, 흉터치료, 색소질환 및 잔주름 개선, 모공축소 등 다양한 피부질환에 널리 쓰이는 피부과의 대표적인 치료법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레이저는 예민한 기기여서 임상경험이 부족한 의사가 잘못 다루면 부작용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감영성 피부질환, 염증, 지속적인 홍반, 색소침착, 흉터, 2차 피부감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서성준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프랙셔녈레이저 시술은 의대에서 교육받고, 전문의 수련을 받은 사람이라도 최소 10~30%의 부작용이 발생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시술”이라며 “단지 6개월 정도 교육받은 치과의사가 시술할 정도로 만만한 시술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으로 ‘피시술자의 실명’을 꼽았다. 서 교수는 “그동안 피부과 전문의들이 안전하게 잘 사용해왔기에 모를 수도 있지만 눈 주위 피부의 점이나 검버섯을 치료할 때 레이저 빛이 눈에 맞으면 환자는 물론 의사까지 실명할 수 있다”며 “피부과 전문의들은 해당 기기 사용 시 이에 항상 대비해왔지만 치과에서는 어떨지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레이저 교육을 받지 않아 미숙한 사람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흉터를 남기는 것”이라며 “매끈하고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시술받았는데, 오히려 흉터가 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치과에서 피부 병변을 제대로 캐치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원석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는 “적절한 지식이 없을 경우 피부 악성종양은 다양한 색소질환이나 양성종양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피부성질과 당뇨 결체조직질환 등 전신질환 유무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레이저 시술을 시행하면 부작용이 증가하고 피부암일 경우 제때 잡아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과의사들은 이같은 피부과 의사의 대처에 ‘밥그릇 싸움’이라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치대 교육 과정에는 피부에 대한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찬우 대한피부과의사회 기획정책 이사(리더스피부과 원장)는 “치과의사 전공의의 연차별 수련 교과 과정에 의하더라도 개정·고시 시기를 불문하고 피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수련 내용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치과에서 프랙셔널레이저 치료를 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의외로 피부시술에 큰 관심이 없는 데다가 환자 수요도 그리 높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서울 강남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A모 원장은 “다른 시술로도 바쁜 상황에서 굳이 피부 분야에까지 모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주변 원장들도 비슷한 분위기이며, 피부미용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일부 의사들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도 이갈이 보톡스, 사각턱 통증 보톡스 같은 치료 목적에서 찾는 보톡스 시술 외에는 다른 피부 시술 시행 여부를 묻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