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29일 미세플라스틱을 사용 금지 원료에 추가한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 7월부터 국내에 유통되는 화장품에 적용하며 치약에 미세플라스틱이 사용되지 않도록 관리한다고 밝혔다.
미세플라스틱은 길이가 5㎜ 이하인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마이크로비즈)로 하수처리시설에 걸러지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아 해양생태계를 위협한다. 각질 제거나 세정 기능을 목적으로 스크럽, 세안제, 바디워시, 치약 등 생산 시 원료로 쓰이는 1차 미세플라스틱과 해양쓰레기인 큰 플라스틱 재료가 파도·자외선 등에 깨져 발생하는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나뉜다.
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활용품·화장품 제품 하나당 36~280만개의 플라스틱 알갱이가 포함돼 한 번의 세안에 최대 약 10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떠도는 동안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 등이 표면에 달라붙는다.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은 자연환경에서 분해되지 않고 생체조직 내에 축적될 수 있는 유독성 합성물질로 벤젠, 다이옥신, 폴리염화비닐(PVC), 알디카브(Aldicarb, 1965년 '테믹(Temik)'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살충제 농약) 등이 이에 속한다.
밀도가 낮아 바다 표면을 부유하는 미세플라스틱에 다양한 유기·무기물질이 달라붙어 무거워지면 바닷속 깊이 가라앉게 돼 다양한 생물종에 영향을 미친다. 바다 속 생물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먹이사슬을 통해 더 높은 사슬 단계의 다른 생물체로 옮겨져 인간의 식탁 위에 오른다.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등이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이 체내로 흡수되면 성장을 저해하거나 생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장은 “생물체의 소화기관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이 위·내장 세포막을 통과할 정도로 작으면 체내로 흡수·축적된다”며 “미세플라스틱이 나노입자 크기로 쪼개지면 생체 주요 장기는 물론 뇌까지 침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7월 발표한 ‘우리가 먹는 해산물 속 플라스틱’ 보고서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바다 생태계의 기초인 동물성 플랑크톤부터 갯지렁이·새우·게·가재 작은 어류와 대구·참다랑어 등 큰 물고기까지 다양한 생물종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알렸다.
유럽에서는 홍합·굴 섭취로 해마다 1만여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미세플라스틱 오염 실태는 아직 조사결과가 발표된 적이 없다. 다만 국내서는 화장품, 스크럽제, 세안제, 치약 등과 바다양식장에 쓰이는 플라스틱 소재 부표 등과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는 해양쓰레기 등이 주된 오염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관계자는 “유럽화장품협회에 이어 지난 4월 대한화장품협회가 마이크로비즈의 사용 중단을 권고하는 공문을 회원사에 보낸 이후 국내 55개 브랜드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우리가 세계 화장품·생활용품 상위 기업 30곳에 미세플라스틱 관련 내부정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마다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정의·기준이 달라 미세플라스틱 퇴출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강제성·통일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세계 30대 화장품·생활용품 기업의 미세플라스틱 사용중지 정책을 조사해 바이드스로프·콜게이트파몰리브·L브랜드·헨켈을 상위 그룹,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을 중간 그룹, 최하위 그룹에 에스티로더, 레블론, 암웨이를 최하위 그룹으로 평가했다.
상위그룹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미세플라스틱 사용중단 정책을 이행하는 시기가 빠르고 그 정책을 전체 글로벌 시장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폴리에틸렌 한 가지만 미세플라스틱으로 규정하는 등 다른 플라스틱 알갱이를 사용할 여지를 남겨 그린피스의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는 못했다. 중간 그룹은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정책을 적용하는 범위를 물로 씻어내는 제품에 한정했다. 최하위 그룹은 정책 적용 범위나 정책을 실행하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