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장시간·장거리를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귀성·귀경길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특히 음식 장만, 상차림, 설거지 등 일이 산더미 같은 여성에게는 명절이 더욱 달갑지 않다.
명절을 전후해 겪는 과로 및 스트레스, 각종 관절통 등을 명절증후군이라고 한다. 한 국내 연구결과 귀성객 64%가 추석 때 명절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절의 퇴행성변화가 시작된 중장년층은 명절이 지나면 관절염, 허리디스크(요추간판수핵탈출증) 등에 쉽게 노출된다. 특히 무릎통증은 성별과 상관없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명절증후군 중 하나다.
여성은 강도 높은 노동으로 무릎과 허리 관절에 무리가 가면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나르는 동작은 상체를 숙이는 과정에서 척추 및 관절에 과도한 힘이 쏠려 압박을 준다. 게다가 음식을 장만하느라 장시간 쪼그려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하면 무릎통증이 나타나기 쉽다. 허동범 연세사랑병원 관절센터 소장은 “쪼그려 앉아 있을 때는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가 체중의 7~8배, 다시 무릎을 펼 때엔 체중의 9배로 높아져 무릎의 연골과 인대에 무리를 주고 심할 경우 퇴행성관절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중년 여성은 가사뿐만 아니라 폐경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연골이 약해져 관절염 발병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남성도 안심은 금물이다. 명절 기간엔 장시간 운전하면서 좁은 좌석에서 고정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럴 경우 혈액순환 저하로 무릎의 윤활액이 원활하게 돌지 않아 무릎관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허 소장은 “차가 계속 막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떼는 동작을 반복하면 근육이 경직돼 평소 무릎관절이 좋지 않은 환자의 경우 통증이 심해진다”고 말했다.
환절기 쌀쌀한 날씨는 무릎통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명절 기간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 새벽 일찍 귀성길에 나서고, 차례도 아침 일찍 지내는 경우가 많다. 아침 기상 후 스트레칭 없이 바로 찬 기운에 노출되면 주변 근육이나 인대가 경직되면서 관절운동 범위가 감소하고 무릎통증이 악화된다.
무릎통증을 제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퇴행성관절염(골관절염)으로 악화될 수 있다. 한번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는 연골의 특성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다리 모양이 ‘O자형’으로 휘어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좌식생활, 양반다리, 가사노동, 다리 꼬기 등 잘못된 자세와 조건이 겹치면 관절 안쪽 면에서 마모가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무릎 안쪽으로 체중이 실려 퇴행성관절염이 촉진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질병 초기엔 물리치료나 약물치료만으로 쉽게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연골이 심하게 손상돼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경우엔 기능을 상실한 무릎관절을 제거하고 새 관절을 넣어주는 인공관절수술이 불가피하다. 최근엔 인공관절 모형과 그에 맞는 수술도구를 3차원 입체로 제작하는 3D프린터 기술이 접목되면서 수술 정확도와 안전성이 향상됐다.
맞춤형 인공관절수술은 환자의 무릎 모양·크기, 하지 정렬, 연골의 닳은 정도를 고려해 환자 무릎에 딱 맞는 수술도구를 만든 뒤 인공관절을 이식하는 치료법이다. 미국에서는 2009년부터 시행됐으며, 국내에서는 2010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얻은 뒤 시행됐다.
이 수술은 시술 전 3차원(3D)시뮬레이션 영상을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의수술을 거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다. 인공관절도 자기공명영상(MRI) 혹은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이 안내하는 대로 정확하게 삽입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제작된다. 3D프린터를 통해 환자의 무릎과 똑같은 모형을 미리 제작해 수술 후 상황을 재현해 본 뒤 시술할 수 있다.
허 소장은 “수술정확도가 향상돼 주변 뼈·인대·근육 손상, 출혈, 감염 위험이 대폭 낮아졌다”며 “수술 후 피 찌꺼기에 의해 다른 부위 혈관이 막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색전증이나 혈전증의 발생 위험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인공관절의 수명은 환자의 몸 상태, 활동량, 수술 정확성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15년이다. 인공관절의 수명이 제한돼 있어 수술 시점을 잘 택하는 게 필요하다. 주로 재수술의 부담이 없는 65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게 수술을 권한다.
운동은 관절의 핵심요소인 연골을 튼튼하게 만들어 연골 손실을 줄여주는 데 도움을 준다.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 운동들을 꾸준히 시행하면 연골 세포 사이로 영양분을 스며들게 되고 찌꺼기는 배출되면서 연골이 건강해질 수 있다.
허 소장은 “고정식 자전거타기, 수영, 평지걷기 등은 무릎에 체중이 실리지 않는 운동으로 무릎 주변 근력을 높여 무릎을 보호하는 힘을 강화시킨다”며 “물속 걷기 및 체조, 물장구치기 등 물의 부력을 이용한 운동은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이 덜해 중·장년층의 퇴행성관절염 환자에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