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로 불렸던 뇌전증 환자가 정부의 진료비 삭감 및 치료제 처방 제한 조치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뇌전증학회는 17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뇌전증의 수술적 치료의 중요성과 현황 및 문제점, 뇌전증 환자의 사보험 가입 차별 문제 등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회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는 갑작스럽게 뇌가 경련 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스스로 대처할 수 없다. 우울증과 불안감이 심각하고, 삶의 의욕이 떨어져 자살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국내 뇌전증 환자는 매년 1000명씩 증가해 현재 약 17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한 달에 1회 이상 의식소실을 동반하는 중증발작이 발생하고 여러 항경련제를 복용해도 의식소실을 동반하는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약 2만명 내외로 추산된다. 이들은 취업할 수 없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극반층이다. 여러 항경련제를 복용해야 하고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지만 암, 뇌졸중, 파킨슨병 등과 달리 정부의 지원이 없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약 50%는 뇌전증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뇌전증수술은 신경과·소아신경과·신경외과·뇌영상·신경심리 전문간호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수술팀을 꾸려야 하고, 뇌전증 수술비 원가는 다른 신경외과 수술비에 훨씬 못 미쳐 수술할수록 병원 입장에선 손해다. 특히 뇌전증수술 시 사용되는 두개강내 전극검사의 수가가 과도하게 삭감됐다. 이로 인해 기존 뇌전증수술센터들은 수술을 포기하는 상황이며, 새로운 수술센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뇌전증수술센터 수는 20년 전 10개에서 지난해 6개로 줄었다.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뇌전증수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두개강내 전극검사의 수가를 지나치게 삭감해 중증 뇌전증 환자를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뇌전증 환자는 일반 사보험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보험회사로부터 부당한 제약과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전증학회 조사 결과 뇌전증 환자의 25%만이 생명보험에 가입했으며, 뇌전증 발병 후 가입한 환자는 15%에 불과했다. 뇌전증 환자의 53%가 생명보험에 가입한 영국과 비교하면 국내 환자는 사보험 가입 시 심한 차별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승봉 회장은 “뇌 자기공명영상(MRI) 결과가 정상이고 최소 1년 이상 경련발작이 없는 뇌전증 환자의 사망률은 일반 대중의 사망률과 유의한 차이가 없다는 최근 연구결과로 볼 때 국내에서도 뇌전증 환자의 사보험 가입 기회를 현재보다 적절한 수준으로 확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