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직장, 사회활동 등 모든 면에서 남성을 압도하고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는 여성이 과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공통 현상으로 법조계, 과학계, 의학계 등 사회 전반에서 ‘여풍(女風)’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이런 행태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나타나 ‘알파(α)걸’과 ‘베타(β)보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알파걸은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에서 유래된 것으로 ‘첫째가는 여성’을 의미한다.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 엘리트 계층의 여성을 지칭한다. 미국 하버드대 아동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교수의 저서 ‘새로운 여성의 탄생(2006년)’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베타보이는 알파걸의 선전에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학업이나 취업 면에서 뒤쳐지며 열등감에 시달리는 남학생을 의미한다.
초·중·고에선 대부분 여학생의 학업 성적이 남학생보다 우수한 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윤모 씨(38)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선 벌써부터 성별로 성적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며 “성적 우수생으로 구성되는 영어 우등생반의 경우 전체 학생의 4분의 3이 여학생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아들을 둔 학부모들은 남녀공학 입학을 피하기 위해 이사가는 경우도 많다. 남녀공학에선 남학생이 ‘성적 바닥을 깔게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교사들도 수업을 하거나 생활지도를 할 때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애로사항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중학교 교사 최모 씨(53)는 “무조건 성별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여학생들과 달리 남학생은 단순하고 명확하게 말한 뒤 이걸 복창하게 해야 제대로 이행할 때가 많고 수업 중 두리번거리거나 잡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흡연, 폭력, 게임중독, 인터넷중독 등 일으키는 비율도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여학생은 대개 남학생보다 성실하고 꼼꼼해 수행평가나 내신 성적에서 우위를 점한다. 최모 교사는 “수행평가 결과 남학생은 20∼30점대에, 여학생은 70∼80점대에 점수가 몰려 있다”며 “여학생은 수행평가 과제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대충대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학생과 여학생 간 학업 및 생활패턴 차이가 생리의학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현행 교육시스템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영인 국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남자아이는 불안감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여아보다 늦게 발달하고, 과격하게 몸을 쓰면서 감정적인 불편함을 해소한다”며 “지금처럼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길 강요하는 교육 방식은 남자아이들의 집중력과 학습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뇌 발달이 빠르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뇌 발달 속도가 2배 정도 앞서고 발달 완료 시기도 일찍 온다. 특히 학습과 관련된 두정엽은 여자아이 발달 속도가 남자아이보다 2년 정도 앞선다고 한다.
또 남자의 뇌는 행동에 직접 관련이 되는 부위만 활동해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외 기능을 하는 뇌는 모두 쉬는 반면 여자의 뇌는 직접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활동해 여러 기능을 가진 뇌가 동시에 움직인다. 여자가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를 요구하는 현대사회의 경향에 부합하는 뇌구조를 가진 셈이다.
또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움직임이 크고 활동적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학교를 싫어하게 된다. 듣기와 말하기, 기억력 등을 주관하는 측두엽의 신경세포는 여성이 남성보다 10% 정도 많다. 대개 남자는 시각이, 여자는 청각이 뛰어나다. 특히 여자는 신생아 단계부터 남자에 비해 청각이 훨씬 예민하게 발달한다. 지금처럼 교사 한 명이 정적으로 교단에 서서 여러 아이를 대상으로 지시를 내리는 방식은 청각 자극에 둔감한 남학생들에게 불리하다.
선진국에서는 신체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남아의 특성을 고려해 쉬는 시간마다 의무적으로 교실 밖으로 나가 뛰어놀게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쉬는시간에도 무조건 “뛰지 마라” 또는 “장난치지 마라”며 훈계하기 일쑤이고, 그나마 아이들이 뛰놀수 있는 체육시간마저 보충수업이나 자습 등 다른 시간으로 활용될 때가 많다.
상대적으로 빨리 조숙해지는 또래 여자아이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김 교수는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들은 언론을 통해 취업난이나 경제난을 접하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거나 매사에 진지하게 임한다”며 “남자아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여자아이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교사 직군의 여성 편중도 남자아이에게 불리한 환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 초·중·고 남녀 교사의 비율은 각각 56%와 44%로 남자 교사가 많았지만 1997년을 기점으로 여교사 수가 남교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여교사 비율은 76.2%, 전체 여교사 비율은 65%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사춘기 이전까지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성별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서은숙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사춘기가 되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간 인지발달 격차가 좁아지고 즉흥성이 서서히 줄어든다”며 “이런 골든타임이 오기 전 남자아이들이 자주 꾸중을 듣고 실패를 경험하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어 계속 인내하고 격려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