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모든 부위는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어느 한 곳에 이상증세가 생기면 여러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눈과 머리다. 노안이나 외상이 없는데도 갑자기 시력이 저하되는 증상은 허혈성 뇌졸중을 비롯한 심뇌혈관질환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눈은 망막·맥락막·공막이라는 세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눈 가장 안쪽에 위치한 망막은 대부분의 시신경이 모여 있으며 4개의 동맥과 정맥이 연결돼 눈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망막폐쇄증, 일명 ‘눈 중풍’은 망막내 동맥과 정맥이 막히거나 손상되면서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시력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르는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망막혈관폐쇄증 환자는 2008년 9만 여명에서 2012년 13만 여명으로 40% 이상 증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많으며, 연령대별로는 50~60대에서 유병률이 높지만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부족 탓에 발병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다.
이 질환은 아직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고 경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2시간 이내에 응급조치를 받아야 한다. 망막동맥이 막히거나 딱딱해지면 인접한 망막정맥을 누르고, 이럴 경우 피가 잘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동맥에서 혈액은 계속 유입되는데 출구가 좁아지거나 막히면 정맥 압력이 점차 높아진다. 결국 한도를 넘어서면 정맥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혈액이 망막에 고여 시신경을 손상시키고 시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고혈압·당뇨병·심장병·뇌혈관질환 환자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최근 망막질환과 심뇌혈관질환 간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망막의 중심동맥이 막히면 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박상준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망막중심동맥폐쇄가 발생할 경우 1개월 전보다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21.5배 증가한다”며 “특히 동맥폐쇄 후 처음 1주일 동안은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최대 70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망막중심동맥폐쇄 발생 후 첫 한 달, 특히 첫 주에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급증하기 때문에 갑자기 시력이 저하된 경우 가급적 빨리 뇌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뇌혈관질환 여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싱가포르 연구팀이 고혈압 환자 2900여 명의 망막을 13년간 관찰한 결과 망막혈관이 손상된 사람은 뇌졸중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생성된 혈전이 먼저 눈과 망막혈관을 막은 뒤 여기서 떨어진 혈전이 뇌로 올라가 뇌혈관을 좁아지게 만드는 데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
박 교수는 “망막혈관폐쇄질환은 뇌혈관 및 심장질환과 위험인자가 같아 정기적인 혈압측정 및 혈액검사로 예방할 수 있다”며 “평소 혈압이 높은 사람은 망막혈관폐쇄 외에도 실명을 유발하는 망막질환인 당뇨망막병증, 황반변성, 녹내장에 대한 검진을 꾸준히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