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성실’과 ‘빨리 빨리’로 대표되는 한국에서 여전히 ‘낮잠’은 사치에 가까운 행동으로 여겨진다. 신입사원이 업무 도중 잠깐 눈을 붙였다가는 상사에게 ‘개념 없다’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최근 서울 종로와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낮잠카페’를 찾는 직장인의 모습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위인들이 낮잠을 즐겼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이끈 윈스턴 처칠은 낮잠의 힘을 믿었다. 대처는 평소 저녁에는 4시간만 잠을 잤고 대신 오후 3시쯤 규칙적으로 낮잠 시간을 가졌다.
독일 자를란트대 연구팀에 의하면 약 45분간의 낮잠은 기억력을 최대 5배 높인다. 낮잠을 자는 동안 기억력을 강화하는 뇌파인 ‘수면방추(sleep spindle)’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새 정보를 뇌에 저장하는 기능이 향상된다. 30분 이하의 낮잠을 습관적으로 자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낮잠 후 뇌 우반구의 활동이 급격히 활발해지면서 창의성과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낮잠은 각종 만성질환의 유병률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적정 시간의 낮잠은 수축기 및 이완기혈압을 평균 5~10㎜Hg 가량 낮춰 고혈압 및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
그러나 지나친 낮잠은 역효과를 불러온다. 일본 도쿄대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에 낮잠을 40분 이상 자는 사람은 40분 이하로 자는 사람에 비해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았다. 특히 90분 이상 낮잠을 자는 사람은 대사증후군 위험이 50% 가량 증가했다.
과도한 낮잠으로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수면시간이 늦춰지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증가한다. 신철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신경과 교수팀에 따르면 오전 1시 이후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저녁 9~11시 사이에 자는 사람보다 대사증후군 위험이 1.87배 높았다.
신철 교수는 “제 시간에 먹는 식습관이 소화기관에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만큼 수면건강도 마찬가지”며 “불규칙하고 늦은 수면이 반복되면 신진대사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낮잠을 자기 좋은 시간은 각성 작용이 가장 저하되는 오후 1~3시다. 이 시간대에 15~30분씩 가수면(얕은 잠)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짧은 시간동안 낮잠을 자려면 빠른 시간 내에 잠이 들어야 한다. 이럴 땐 요가나 명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점진적 근육이완요법(PMR)’이 도움 된다. 발가락 끝부터 점점 상체로 올라가면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면 정신적 긴장이 줄어 잠이 잘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