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렙실 하나 주세요.”
‘옥시 사태’로 국민적인 옥시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약사는 단호하게 타사 대체 제품을 권했다. 정 씨가 민망한 표정을 하자 약사는 손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타사의 트로키 제품 구입을 유도했다. 심지어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목캔디만으로도 충분하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조언까지 했다.
정 씨는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스트렙실을 구해보려 인근 강남구 압구정동·삼성동의 약국과 집 근처 종로구 약국을 들렀을 때에도 비슷한 답변을 들었다. 압구정동의 B약국 약사는 “그 제품 옥시 건데… 정 아프면 진통제로 드릴게요”라며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종로구의 나이가 지긋한 C약사는 “굳이?”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손녀가 있어 못된 회사의 제품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밖에 기자의 근무지인 용산구의 D약국은 굳이 약국의 제품진열을 바꾸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 이후로 스트렙실과 개비스콘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옥시래킷벤키저의 엉성한 사과 기자회견 이후 제품불매운동이 더 거세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위한 사과와 보상계획을 밝히는 자리였지만 구체적인 보상방안이나 사과 없이 정작 피해자 가족 참석은 요청하지 않은 데다가, 기자회견장에 찾아온 피해자와 가족들을 제지하는 모습까지 보여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구체적인 보상계획 없는 ‘면피성 사과’에 비판여론이 커지며 불매운동 참여 움직임은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다. 급기야 가장 비중이 큰 유통망인 대형마트에서도 ‘판매중단’이나 ‘진열대 일선 후퇴’ 등을 선언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게 약사들의 불매운동 동참이다. 옥시의 대표 헬스케어 제품은 방송광고로 유명세를 누리던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개비스콘’, 인후염치료제 ‘스트렙실’ 등이다.
해당 제품들은 옥시래킷벤키저의 영문이니셜을 딴 ‘RB코리아’로 출시, 소비자가 제약사를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의약품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지만 약국들이 앞장서 “먼저 찾지 않는 고객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며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어 당분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한약사회는 사실상 옥시레킷벤키저의 의약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법적 문제를 고려해 단체 차원의 공식적인 불매운동 및 판매거부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불매운동에 공감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16개 시도약사회장들도 ‘옥시 제품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약사회는 “옥시래킷벤키저는 치명진 결함이 있다고 밝혀진 후에도 결과를 은폐하고 피해 가족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약사회 차원에서 옥시에서 판매하는 개비스콘과 스트렙실의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광고를 많이 하는 유명 브랜드일수록 약국 마진이 박한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옥시는 개비스콘과 스트렙실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일반약인 이들 제품으로 옥시는 연간 2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간 4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세제 ‘옥시크린’ 매출의 절반에 이를 만큼 의약품 비중 또한 상당하다는 의미다.
2009년 출시된 개비스콘(주성분 알긴산나트륨·탄산칼슘·탄산수소나트륨)은 국내서 다소 생소했던 ‘역류성식도염’을 대중에게 알린 약품이다. 친근한 소방관 캐릭터로 불난 듯한 위장을 식혀주는 이미지를 통해 위산 역류와 가슴쓰림 현상을 5분 안에 진정시키는 효과를 강조하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임신부, 영유아도 복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정 상비약으로 꼽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탄산칼슘이나 탄산수소나트륨(일명 중조, 속칭 소다)은 자주 복용할 경우 산반동(알칼리제로 위산을 중화시키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오히려 산이 과다분비)이 초래될 수 있다. 비록 알긴산나트륨이 이를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게 약사들의 설명이다.
스트렙실도 사탕(트로키) 제형으로 인후두에 발생한 염증에 직접 약성분을 닿게 해 염증을 가라앉힌다. 슈퍼스타K 등 대국민 오디션프로에 참가한 가수들을 내세워 노래를 부른 뒤 아픈 목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이미지를 형성해 사랑받은 제품이다. 레몬맛, 오렌지맛 등 사탕과 비슷하게 달콤한 맛도 한몫했다. 인후두염이나 감기에 쓰이는 트로키제가 대부분 항균제·항히스타민제·구강청결제·국소마취제 등인데 비해 스트렙실은 거의 유일한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NSAIDs)여서 인기를 누리다가 이번에 싸늘한 여론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은근히 인기를 끌던 이들 제품은 팬층이 두터웠던 만큼 ‘옥시 것’으로 밝혀지자 멘붕에 빠지는 사람도 적잖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들 제품을 대체할 것들은 충분하다.
국내 제약사들은 2013년부터 개비스콘과 성분이 같은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은 게스벡터(sk케미칼), 개비트론액(국제약품), 위스콘(동국제약), 애시논액(동아제약), 알지스콘 과립(조아제약), 윌로겔(유한양행), 유실드(유유제약), 지아이스피드(부광약품), 디제스콘(태극제약) 등으로 국내 허가된 대체품만 23개나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보령제약이 ‘겔포스엠’으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국내 위장약 시장(650억원 규모)에서 옥시의 개비스콘과 보령제약의 겔포스엠은 각 120억원씩 양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스트렙실의 주성분인 플루르비프로펜은 주로 파스에 쓰이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다. 사탕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덱시부프로펜, 이부프로펜 등 기존 진통제로 대체할 수 있다.
굳이 사탕 같은 제형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다른 트로키제제를 택하면 된다. 트로키제제는 국소적으로 약효를 작용시키기 위해 입안에서 녹여먹는 형태의 약물이다. 스트렙실 말고도 미놀트로키(경남제약), 뮤코안진트로키(한국베링거인겔하임), 레모신에프트로키(일동제약) 등이 있으나 약리기전은 사뭇 다르다.
약국에서 파는 콘돔 브랜드의 인기 순위도 다시 매겨질 것으로 보인다. 톡톡 튀는 SNS 소통, 제대로 된 성교육을 강조하던 콘돔제조업체 ‘듀렉스코리아’가 옥시 계열사로 드러나자 듀렉스 역시 불매운동의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듀렉스는 국내서 가장 잘 나가는 콘돔 브랜드로 시장점유율 30.3%(2013년 12월)를 차지한 바 있다.
최근 편의점, 드럭스토어 등에서 듀렉스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부지리로 경쟁사인 유니더스의 상승세가 전망된다. 유니더스 주가는 옥시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이후 나흘간 반짝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