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거나 가벼운 운동을 할 때 갑자기 숨이 차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면 비후성심근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이 질환은 증상이 협심증과 비슷하지만 심장 자체가 두꺼워져 심장 밖으로 피가 나가는 통로가 좁아져 발생하는 점에서 차이난다. 반면 협심증은 심장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발병한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 인구 1000명당 2명꼴로 비후성심근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에는 증상이 없을 때가 많고 잠시 안정을 취하면 금방 회복되기 때문에 진단이 쉽지 않다. 심장질환을 의심해 병원에서 심초음파검사를 받아도 정상인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이상철 삼성서울병원 비후성심근증클리닉 순환기내과 교수는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아 환자가 병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진단도 까다로운 탓에 경험 많은 의사가 꼼꼼이 살펴야 병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질환은 돌연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선행 연구결과 2007~2010년 광주·전남 지역 심혈관질환 사망자의 약 7%가 비후성심근증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선수는 이 질환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더 높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 심장은 평소보다 많은 피를 뿜어내야 한다. 비후성심근증 환자는 피가 나가는 통로가 좁다보니 심장이 더 많이 움직이면서 심장근육이 두꺼워지고 이로 인해 혈액 통로가 좁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에서 경기 도중 쓰러져 사망한 카메룬 출신의 마크 비비앙 푀도 이 질환을 앓았다.
비후성심근증 환자는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격렬한 운동과 폭음, 사우나도 피하는 게 좋다.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히 치료받으면 급격한 심장기능 이상으로 인한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다. 숨이 차고 심장이 심하게 두꺼워진 상태면 심장을 안정시키는 약물치료를 실시한다. 돌연사 위험이 높다고 판단될 땐 제세동기를 삽입한다.
환자에 따라 거대해진 심장의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도 가능하다. 수술은 대동맥을 통해 수술기구를 집어넣어 피가 흐르는 통로를 막고 있는 심장근육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국심장학회도 수술이 가능한 환자에 한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추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최신 수술법이 도입돼 일부 대학병원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김욱성 심장외과 교수팀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수련받은 뒤 2013년 하반기부터 수술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까지 수술받은 환자 17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사망은 물론 합병증 발생도 없었으며 모든 환자가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욱성 교수는 “비후성심근증은 병을 인지하는 게 치료의 첫걸음”이라며 “내·외과적 치료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만큼 심장이 보내는 이상신호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 병원 비후성심근증클리닉은 순환기내과, 심장외과,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의 다학제협진과 유전자검사 및 치료를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