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가 나도 가발을 선택하겠다.” 대다수 탈모 환자들은 자신의 민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렇다보니 편하게 구할 수 있는 가발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오히려 가발이 두피 건강을 악화시켜 탈모를 부추기거나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비상 대책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전에는 취약하다는 의미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씨(38·여)는 지난해부터 하나둘 빠지는 머리카락에 어느새 정수리가 눈에 띄게 훤해졌다. 잘 관리된 외모와 사업 수완으로 ‘골드미스’로 불리던 그녀지만 탈모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홈쇼핑에서 여성용 가발을 구입했다.
거의 매일같이 가발을 착용하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두피가 가렵고 비듬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정도가 심해져 피부과를 찾았더니 ‘접촉성 피부염’으로 진단받았다. 원인은 다름 아닌 모발 볼륨감을 위한 ‘가발’이었다.
가발이나 모자 등 머리에 뭔가 덮여 있으면 두피 공기순환이 원활치 못해 두피 온도를 높이고 땀을 내 두피를 짓무르게 만들기 쉽다. 이런 경우 모낭충이나 비듬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된다. 또 모공이 막혀 피지가 쌓이고 세균이 번식돼 여드름이나 모낭염 등이 유발될 수 있다. 두피나 모낭에 염증이 생긴 채로 장시간 방치되면 탈모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자극적인 가발 소재나 부착물은 두피에 상처를 내거나 접촉성 피부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탈모 환자는 대개 지성 또는 지루성 또는 민감성 두피를 갖고 있어 깨끗하게 관리하고 샴푸 후 잘 말리는 게 중요하다. 이런 여건에서 두피를 답답하게 만드는 가발까지 착용하다보면 두피 염증이나 접촉성 피부염이 유발되기 쉽다.
박병순 셀파크피부과 원장은 “가발 자체가 탈모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탈모를 부추기고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가발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된 환경을 만들어 오래 착용 시 두피에 염증을 유발하고 노폐물 배출을 어렵게 만들어 탈모를 악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발을 고를 때에는 통기성이 좋은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발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12~18개월 안팎이다. 자주 착용할수록 수명이 줄어든다. 정도에 따라 매년 관리(애프터서비스)를 맡겨야 하는 등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가발의 종류는 크게 인모와 인조모 두가지로 나뉜다. 착용 형태에 따라 접착제·클립 형식 등으로 분류된다. 인모가발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 자연스럽고 염색·드라이·펌 등으로 변형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가 어렵고 대체로 수명이 짧은 편이다. 반면 인조모가발은 수명이 길지만 스타일링 변화가 어렵고 무엇보다 부자연스럽다.
핀이나 버튼 형식으로 된 가발은 벗겨질 염려가 있어 최근엔 이를 보완한 접착식 가발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두발을 짧게 깎고 두피와 가발을 접착제로 붙이는 방식으로 두피를 청결히 관리하는 게 어려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평소처럼 샴푸하기가 어렵고 세밀한 부분까지 세척하려면 칫솔을 사용해야 하는 등 불편하다. 가발 업체에서는 본드의 접착성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자주 머리를 감는 것을 자제시킨다. 하지만 이럴 경우 두피에 비듬이나 지방 등 이물질을 남아 청결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물론 가발을 떼어내고 다시 붙이면 되지만 가발업체에서 재부착을 받으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충 씻고 넘기는 사람이 대다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최근 5년간 탈모증으로 진료받은 여성이 47만명을 넘어섰다. 여성 환자가 절반을 넘어섰고 이 중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다. 여성 탈모 환자가 늘면서 최근에는 여성 가발 사용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방송인 전원주 씨는 “잘 나가는 예쁜 또래 여자 연예인들은 대게 다 가발을 뒤집어쓴다”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가발 선호도는 젊은층보다 중장년층 이상 여성에서 더 높은 편이다. 여성형 탈모는 이마부터 벗겨지는 남성 탈모와는 달리 정수리나 가르마 부분부터 숱이 줄어든다. 굳이 병적 탈모가 아니어도 여성도 노화로 나이들수록 머리 숱이 준다. 중년 이상 여성들은 정수리와 뒷머리의 볼륨을 키우는 것을 중시하다보니 아무래도 부분가발이나 패션가발 등을 활용해 보완한다.
실제로 한 온라인 마켓은 올해 여성용 가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부분가발이라도 두피를 덮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자칫 고정핀에 두피가 상처를 입기도 해 주의해야 한다.
박병순 원장은 “과도한 다이어트, 임신, 출산 등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가 여성 탈모의 주범”이라며 “특히 지나친 다이어트는 윤기 흐르고 풍성한 모발을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균형잡힌 영양섭취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모발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줄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에 나서는 여성은 대개 단백질 섭취량이 현저히 부족한 경우가 많다.
탈모가 생길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가발로 덮는 것보다 전문의를 찾아 자신의 상황에 맞는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