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젊게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피부나 눈가에 주름이 생긴 곳은 없는지 체크한다. 40대 이후에도 외모나 패션에 신경쓰는 ‘꽃중년’들이 늘면서 안티에이징 업계와 성형외과, 피부과 등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외적인 부분에만 신경 쓸 뿐 신체 내적 건강에는 소홀하다. 특히 혈관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노화될 수 있으며 각종 심혈관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도 퇴행성 변화를 겪게 된다. 혈관은 심장에서 피가 나가는 통로인 동맥과 심장으로 들어오는 통로인 정맥, 모세혈관으로 구분된다. 길이는 5대5 비율로 동맥과 정맥이 같다. 동맥은 대동맥·세동맥으로, 정맥은 대정맥·세정맥으로 세분할 수 있다. 혈액량은 길이와 달리 동맥 20%, 정맥 80% 비율로 흐른다.
각각의 혈관은 내막, 중막, 외막으로 구분된다. 나이가 들수록 대동맥 중막의 탄력섬유층이 증가하고, 중막과 내막의 섬유화가 진행되면서 석회화가 올 수 있다. 석회화로 인해 혈관의 탄력성이 감소하고 딱딱해지면 동맥의 팽창성이 감소하고 맥파혈류속도(pulse wave velocity)가 증가한다. 맥파혈류속도는 심장에서 나간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속도로 혈관 탄력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딱딱한 물질일수록 진동이 빠르게 전달된다는 물리법칙을 따른다. 즉 심장에서 밀어낸 혈액의 맥파전달속도가 느리면 혈관이 건강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속도가 빠르면 혈관이 딱딱해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보통 80세가 되면 맥파혈류속도가 18세 때에 비해 2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 수축기 혈압이 상승하면서 고혈압이나 심뇌혈관질환의 발병위험이 높아진다.
이처럼 노화나 다른 원인으로 혈관이 경화돼 발생하는 질환을 죽상경화증(atherosclerosis)이라고 한다. 이 질환은 혈관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내막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되고 염증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이 침투해 죽상경화반이라는 비정상적인 병변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된 수도관이 녹이 슬고 이물질이 침착돼 지름이 좁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죽상경화반은 혈관에 침착돼 협착을 일으키는 병변이 현미경으로 볼 때 얇은 막 안에 생긴 거품 형태를 이루고, 이 모양이 끓여 먹는 죽 형태와 비슷하다고 해서 명명됐다. 죽상경화반이 커져 혈관 내경이 좁아지고 혈류에 문제가 생기면 심장 및 뇌에 산소·영양분 공급이 줄고 협심증·심근경색·뇌졸중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이상언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죽상경화증 자체는 증상이 없지만 이 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협심증은 운동 중 가슴통증이나 호흡곤란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죽상경화증은 고령일수록, 여성보다는 남성이, 흡연할수록, 고혈압·이상지질혈증(고콜레스테롤혈증)·당뇨병·비만 등 지병을 가진 사람일수록, 운동이 부족할수록 발병하기 쉽다. 유전적 요인도 질환 유발요소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고령인구가 늘고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죽상경화증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결과 2008~2013년 ‘죽상경화증’ 진료인원은 2008년 10만2000명에서 2013년 15만9000명으로 연평균 9.2% 급증했다고 19일 밝혔다. 총진료비는 2008년 1128억원에서 2013년 1442억원으로 연평균 5% 늘었다. 연령대별 환자 수는 2013년 기준 60대 이상 고령층이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이는 동맥이 좁아지거나 경화되는 데 노화가 상당향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언 교수는 “죽상경화증으로 인한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은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사망원인으로 꼽혀 예방이 중요하다”며 “교정 가능한 위험요인으로는 흡연,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비만, 운동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흡연은 죽상경화증에 의한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을 2~3배 정도 증가시키고, 금연하면 3년 내에 위험도가 60% 정도 감소하므로 금연이 필수”고 강조했다.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등 죽상경화증 증상을 관리하려면 체중관리에 힘써야 한다. 이 교수는 “칼로리 섭취를 제한하고 신체운동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매주 4~5일 고르게, 주당 2.5~5시간 중등도의 유산소운동 또는 주당 1~2.5시간의 고강도운동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오전 6시부터 정오까지는 운동을 피하는 게 좋다. 이 시간대에는 휴식신경인 부교감신경에서 활동신경인 교감신경으로 바뀌면서 신체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혈관사고가 쉽게 일어난다.
이 교수는 또 “이상지질혈증의 경우 특히 LDL(저밀도지단백) 결합 콜레스테롤의 혈중농도가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을 알려져 있다”며 “증상이 의심되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의사와 상의해 약물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 꾸준한 운동과 함께 혈액순환에 도움되는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늘에 함유된 알리신 성분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양파는 혈관을 깨끗하게 하고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피를 붉게 하는 효능이 있어 혈액순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부추와 생강도 혈액순환에 도움된다.
녹황색 채소에 들어 있는 카로티노이드라는 항산화물질은 혈관을 깨끗이 하고 피를 맑게 한다. 당근, 토마토, 가지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으며, 샐러드로 먹거나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 견과류, 올리브오일, 참기름, 들기름 등도 혈액순환을 돕고 혈관의 염증을 완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