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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신약, 안 먹으면 사망 … 먹으면 파산
  • 현정석 기자
  • 등록 2015-10-16 10:58:30
  • 수정 2020-09-13 20: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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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격이 비싸 처음부터 복용 어려워 … 리스크셰어링 제도 확산해야, 무용한 약 급여주기도 견제해야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급여 신청이 통과되기까지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것은 조기에 약가를 부여받으려면 낮은 가격에 들어오든지, 제값을 받으려면 더 기다리든지 하는 정부와 다국적제약사의 신경전이 벌어진 결과다. 4대 중증질환 환자의 치료는 고가의 검사와 약제를 필요로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검토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만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보험적용을 받게 되면 약가의 5%만 부담하면 되지만 적용이 되지 않으면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4대 중증질환은 암, 심장병, 뇌질환,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이에 대한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것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의 핵심 공약이었다. 건강보험 재원은 한정된 상태에서 특정질환에 부담을 낮춰주면 다른 질환의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보건당국은 약가 협상 기한을 연장해 최대한 약가를 삭감하려 하고, 다국적제약사는 목표한 제값을 받기 위해 당국에 사정하고 의료진이나 환자단체, 언론을 동원해 보험약가 산정 및 급여화가 시급하다는 견해를 확산시키는 게 일상화돼 있다.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급여 신청이 통과되기까지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것은 조기에 약가를 부여받으려면 낮은 가격에 들어오든지, 제값을 받으려면 더 기다리든지 하는 정부와 다국적제약사의 신경전이 벌어진 결과다. 

고가약의 건강보험급여 등재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노바티스의 항암제(급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성분명 이마티닙, imatinib)의 약가 산정 때부터다. 이 약은 정당 가격이 당시 2만5000원(하루 6정 복용)으로 한 달 약값만 450만원에 달했다. 정부는 해당 약값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보전해주면서 개당 가격을 1만7862원으로 조정하려 했지만, 제조사 노바티스는 약품 공급을 거부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로슈도 제시한 목표대로 약가급여를 받지 못하자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성분명 엔푸버타이드, enfuvirtide)의 약품 공급을 거부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약품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일본계 제약사인 아스텔라스제약의 전립선암치료제 ‘엑스탄디캡슐’(성분명 엔잘루타마이드, Enzalutamide)은 캡슐당 2만9000원(하루 4캡슐 복용)으로 한달 약값은 300만원이 넘는다. 이 약이 급여화되면서 환자는 약값의 5%만 부담하게 돼, 한달에 15만원 정도면 치료적 대안이 없는 전립선암 환자도 투여받을 수 있게 됐다. 전체 처방액이 연간 3000만원 가량이던 이 약은 급여화되면서 작년 매출이 25억원으로 늘었다. 이는 고가약제란 이유로 가난한 환자의 경우 처방을 받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화이자의 비소세포폐암치료제 ‘젤코리캡슐’(성분명 크리조티닙, crizotinib)의 경우 캡슐당 12만4000원(하루 2캡슐 복용)으로 한달 약값이 750만원에 달한다. 보험적용될 경우 환자들은 5%인 37만원대에 복용이 가능하지만 약을 사용하기 위해 세포독성이 있는 항암요법을 먼저 거쳐야만 한다. 2차 치료제로 쓰는 경우에 한해서만 보험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복용한 환자들은 1년에 억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험분담계약제(리스크셰어링)는 희귀난치질환에서 건보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주로 혁신적인 항암제에 적용되고 있으며, 개발의 어려움을 감안해 약가를 높게 인정해 고시해주는 대신에 매년 매출(처방액) 대비 일정 비율의 금액을 제약사가 건보공단에 납부함으로써 다시금 보험재정을 늘리게 하는 제도다.

대다수 리스크셰어링 신약들은 기존 세포독성이 있는 항암요법 대신 주로 표적치료제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차세대 희소 항암제들이다. 일반 항암제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건드려 몸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반면 표적항암제들은 목표로 하는 암세포를 주로 괴사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분담계약제 적용 약제로는 머크의 항악성종양제인 ‘얼비툭스주’(성분명 세툭시맙, cetuximab)를 비롯해 세엘진의 항악성종양제 ‘레블리미드캡슐’(성분명 레날리도마이드, lenalidomide), 한국아스텔라스의 항악성종양제 엑스탄디연질캡슐, 한국화이자의 항악성종양제 잴코리캡슐, 젠자임코리아의 백혈병치료제 ‘에볼트라’(성분명 클로파라빈, clofarabine) 등이 있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행되면 해당 치료에 꼭 필요한 의료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높은 비용의 최신 의료서비스는 일부만 보험 적용되고 일부 보험 적용된 항목에 대해서는 3년마다 진단·치료 효과와 가격을 재평가한다. 비급여로 환자가 전액 부담했던 항목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환자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료 이용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게 심평원의 말이다.

하지만 제약사의 로비로 단지 환자의 수명을 몇 개월 연장하다든지, 추상적으로 계량된 삶의 질을 개선했다든지 등의 명분을 내세워 불필요한 신약에 건강보험급여가 헛되이 적용되지 않는지 전문가집단과 시민단체가 공조한 면밀한 감시가 필요하다. 전문가집단이 갖는 폐쇄성과 사당화나 온정주의 등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정부는 제약사와 약값 협상을 통해 좋은 약품을 저렴하게 공급받아야 한다. 이에 반해 다국적제약사는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간 개발비를 보전받아야 하기 때문에 약가를 무한정 낮출 수만은 없다. 다국적제약사의 본사가 있는 국가에서 협상을 도와주거나 할 경우 정부의 협상은 한계에 봉착한다.

다국적제약사의 한 대정부 담당자는 “본사에서 약가를 결정할 때 그 나라의 경제수준과 보험상황 등을 살핀다”며 “저렴한 약가로 공급하고 싶어도 본사의 규칙이 있는 데다 개발비 등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한국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싼 가격에 공급되고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는 비싼 가격에 공급된다”며 “가격을 너무 싸게 요구할 경우 손해를 보면서까지 판매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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