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가 함께 제정한 ‘치매 극복의 날’이다. 치매는 흔히 암보다 두려운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치매 사망률은 10만명당 11.9명으로 유방암(8.8명), 자궁암(4.9명) 등 대표적인 여성암보다 높다. 치매에 걸리면 사회 및 경제활동이 제한돼 환자 본인은 물론 부양가족의 삶도 궁핍하게 만든다.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2.7%로 현재 한국은 고령화사회에 속한다. 2024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19.0%, 2034년에는 27.6%로 지속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고령인구의 증가와 함께 치매 환자도 많아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치매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21만7000명에서 2013년 약 40만5000여명으로 5년 새 87.2% 증가했다. 전체 진료 인원 중 70대 이상 여성 환자가 약 64.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상태다. 단순한 건망증과 달리 기억력뿐만 아니라 언어능력, 시공간 판단능력, 판단력 및 추상적 사고력 등 여러 지적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

80~90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원인 질환에 의해 발생하는데 알츠하이머병, 혈관성치매, 루이체치매가 대표적이다. 알츠하이머병은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에 쌓여 발생하는 것으로 치매 전체 원인의 50~70%를 차지한다. 뇌졸중 후에 발생하는 혈관성치매는 약 10~15%,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는 약 15%다.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 수두증, 뇌종양, 대사성질환, 중독성질환 등이 원인이 돼 치매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경규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에 있는 1000억여개의 신경세포는 재생능력이 없다”며 “이로 인해 치매가 한 번 진행되고 나면 원래 상태로 호전되기 렵고 환자는 물론 가족의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치므로 조기발견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억력 감퇴는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최근의 대화 내용을 반복적으로 묻거나, 최근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밥을 찾기도 한다.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기억나지 않았던 부분이 떠오를 때가 많지만 치매는 힌트를 줘도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치매 초기에는 말할 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것, 저것’ 등 대명사로 표현하거나 말문이 막히는 ‘단어 찾기 곤란’ 증상이 나타난다. 이 시기엔 말을 비교적 유창하게 해 주변에서 언어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 증세가 악화되면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워지고, 말수도 줄며,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원래 성격과 달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집에만 있거나 반대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나 화를 내는 등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물건을 훔치거나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거나, 헛것을 보고 듣기도 한다.

또다른 치매의 주요 증상으로는 지남력 장애가 있다. 시간, 장소,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남력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시간 지남력이 먼저 저하돼 날짜와 요일을 시작으로 연도, 계절, 낮과 밤을 혼동해 갑자기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장소에 대한 지남력이 저하되면 늘 다니던 곳에서 길을 잃어 헤매게 된다. 사람에 대한 지남력 장애는 가장 늦게 나타나는데 먼 친지부터 시작해서 늘 함께 지내는 자녀나 배우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병이 진행되면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적절한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저하된다.

최경규 교수는 “과거에는 치매를 망령 또는 노망이라 부르며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치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하지만 치매는 장기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고 원인질환에 따라 치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력 감퇴, 언어장애, 시공간파악능력이 저하된 것을 깨달으면 즉시 전문 의료진을 찾아 진단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와 함께 뇌 활동이 둔화되기 시작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태권도나 검도, 춤 등 동작을 외워야 하는 운동을 한다면 운동 및 학습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1주일에 3회 한 시간 이상 걸으면 뇌 활성화에 도움된다.

최근 인간관계에 근거한 활동이 운동이나 금연보다 항치매효과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가족을 비롯해 친한 지인과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것은 치매예방에 도움된다. 봉사활동처럼 인간관계도 형성하고 심리적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활동도 권장한다.

주기적으로 일기·신문·책의 한 단락을 읽고 쓰거나 여행을 다녀와서 보고 들은 것을 떠올리며 기행문을 작성하는 습관도 기억력 감퇴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악기연주나 외국어공부 등 새로운 취미를 가지면 치매 예방은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또 50대 이후에는 대장내시경검사처럼 5년 주기로 건강검진 시 뇌 사진을 찍어 치매 진행 여부를 확인해보는 게 좋다. 간혹 비타민B나 비타민D의 결핍으로 인해 가벼운 치매 증세를 보이는 환자도 있다. 이럴 땐 비타민을 충분히 보충해주면 3개월 이내에 호전된다. 이와 함께 자두나 건포도, 블루베리, 딸기, 시금치, 케일, 브로콜리, 근대 등 색이 짙은 과일과 채소도 치매 예방에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