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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품위 있는 죽음’, 시기상조일까 … 유산 상속 문제로 악용될수도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8-24 09:26:26
  • 수정 2015-08-25 15: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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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사법’ 발의, 환자 의식불명시 가족 동의 필요 … 적극적 죽음 유도 안락사와 달라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아직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얼마전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법’이 발의되면서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환자 및 가족 10명 중 7명이 연명치료 중단에 찬성하는 등 사회적 공감대도 일정 부분 형성됐지만 종교계와 일부 의료계의 반발 탓에 입법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상속문제 등에 악용될 소지도 있어 관련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올해 들어 새누리당이 존엄사 관련 토론회를 열어 법률안을 논의한 데 이어 지난 6월엔 의사 출신인 신상진 새누리당 의원이 ‘존엄사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존엄사법은 말기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스스로 중단할 수 있는 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존엄사의 개념과 요건,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존엄사 대상은 ‘2명 이상의 의사가 말기로 진단해 의학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로 명시했다. 또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하려면 주치의를 비롯한 의료진의 판단이 기록된 자료를 국가의료윤리심의위원회가 먼저 심의해야 한다. 환자가 언제든 존엄사에 대한 의사 표시를 철회하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의사가 말기 환자의 생각과 상관없이 연명치료를 중단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고, 반대로 존엄사를 원하는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한 의사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말기 환자가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경우 환자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전원의 동의 아래 연명치료 실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신 의원은 18대 국회에서도 존엄사법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 가족이 대리로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하는 문제를 놓고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이어지다 국회 임기 종료로 법안 자체가 폐기됐다.
이 법안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말기 환자의 생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나름의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존엄사가 화두가 됐고 당시 신 의원이 수 차례 공청회를 통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제정법을 낸 것”이라며 “실제 말기 환자 중 이 법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존엄사와 안락사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존엄사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죽음에 가까운 반면, 안락사는 적극적으로 의도적인 죽음을 유도한다. 안락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회복 불능의 질병을 앓고 있는 의식이 있는 환자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 방법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주사하는 등 직접적인 행위를 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프랑스 하원을 통과한 ‘깊은 잠’ 법안도 의사가 환자에게 수면 상태에서 숨질 수 있도록 진정제를 놓고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진정제를 투여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방법의 안락사로 볼 수 있다.

존엄사는 현대의학으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를 보류하거나 중단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행위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사망 직전의 극심한 고통을 적극적으로 없애는 차원의 안락사와 달리 의식이 없는 말기환자에게도 적용된다. 환자가 평소에 죽음과 관련해 해 왔던 말 혹은 추정적 의사를 확인해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연명치료를 중단·보류하는 방안도 존엄사로 인정한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로 불리기도 한다.
안락사의 경우 적극적·직접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유도하기 때문에 세계 어느곳에서든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존엄사를 법제화한 프랑스조차 사회적 합의를 거쳐 안락사를 도입하는 데에는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국내에서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존엄사 관련 논의가 처음 제기됐다. 이 사건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부인의 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뒤 사망한 것으로 당시 환자의 동생은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대법원은 부인에게는 살인죄, 환자를 퇴원시켰던 보라매병원 의사들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해도 의사들이 이 사건을 들먹이며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식물인간 상태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인공호흡기와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 공급 등의 치료를 받아오던 김모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좋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이른마 ‘김모 할머니 사건’으로 국내에서도 존엄사의 법제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늘었다.

대한병원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3년 수가협상을 타결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합의했다가 종교계와 학계 등의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이를 철회했다. 사실 대형병원들의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내심 반기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말기 환자의 연명치료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돼 재정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라며 “냉정하게 이야기했을 때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병상 및 인력 활용도를 높일 수 있지만 사람의 목숨을 단순히 수익적인 면에서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밝혔다.

종교계에선 가족의 동의만으로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경우 존엄사가 남용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관계자는 “생명은 어느 단계에 있든 존엄과 가치를 가진 존재”라며 “절대적으로 회복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면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상속이나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가족이 입원료가 비싼 중환자실에 한 달 이상 입원해 있다면 경제적 부담 탓에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또 유산이나 치료비 등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환자의 의사는 배제한 채 가족들끼리 연명치료 중단을 합의하는 사례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본인과 의사가 직접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3의 공식기관에서 이를 심의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최소 3만명 이상의 만성질환자들이 세계 최악의 임종기를 보내는 데도 연명의료로 인한 고통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만큼 법제화가 시급하다”며 “하지만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히는 시기가 임종을 불과 며칠 앞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3의 기관이 이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존엄사법은 뜨거운 감자다. 현재 존엄사법을 시행하는 주는 오리건·몬태나·뉴멕시코·버몬트·워싱턴주 등 5곳이며 캘리포니아·뉴욕·펜실베이니아·네바다·뉴저지 등 상당수 주에서 존엄사법 제정 논의가 의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존엄사법 논의가 확산되는 것은 지난해 존엄사를 택한 브리트니 메이나드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부터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그는 악성 뇌종양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6개월 시한부 선고까지 받자 가족들 앞에서 담담한 최후를 맞고 싶다는 바람에서 남편의 생일 이틀 뒤인 11월1일을 자신의 죽음 예정일로 삼았다.
메이나드는 존엄사를 위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리건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결국 11월1일 예정일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고, 110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법으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로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3국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는 존엄사를 가장 먼저 허용했다. 1973년부터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운동이 전개됐으며, 2000년 불치병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이 통과된 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도 불치병 환자에 준하는 엄격한 상황에 한해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판례를 바탕으로 존엄사를 인정한다. 독일의 한 병원이 뇌손상으로 의식불명인 72세의 환자에 대해 영양액 공급을 끊는 결정을 내리며 논란이 됐다. 이에 1993년 독일 법원은 병원이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은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극적 안락사가 아닌 ‘죽음에로의 도움’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며 살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이 판례를 바탕으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제한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다. 프랑스의 경우 의학적인 치료를 하더라도 더 이상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에 대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한다. 이런 환자는 치료를 계속하더라도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하는 효과밖에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2008년 존엄사를 허용하는 첫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당시 16년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환자에 대해 급식튜브를 포함한 생명유지장치 제거를 허용했다.

일본은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존엄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산소호흡기 등 생명연장 수단을 제거하는 정도는 용인된다. 일본 정부는 2006년 4월 회복의 기미가 없는 환자에 한해 사실상의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 대해서는 가족들의 동의를 받고, 가족이 없는 환자의 경우 의료팀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존엄사 여부를 결정한다.

이처럼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문서다.
지난 7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관계 당국에 제출하면 되고, 임종 과정에 있거나 예견되는 환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신청 및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담당의사의 확인을 거치면 된다.

하지만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활성화하는 방안의 경우 아직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게 하면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가 환자를 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망할 때만을 생각한다며 거부감이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관계자는 “연명의료가 시작되거나 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건강상태에서 법률안의 표현에 따르는 평소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를 포함시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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