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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적십자병원, 누적 적자 838억원 … 공공병원 ‘착한 적자’ 해법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7-30 15:19:15
  • 수정 2015-07-31 18: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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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적십자병원 288억원 최다, 16곳 중 11곳 사라져 … 성과급 논란 등 방만경영 지적도

한국에서 공공의료의 미래는 암담하기만한 것일까. 1905년 설립 후 국내 공공의료를 선도해온 적십자병원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적십자병원을 비롯한 공공병원들은 급여 환자가 많고 비급여 진료가 적은 수익구조 상 ‘착한 적자’를 피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이들 병원이 공공성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로 방만경영을 일삼은 탓에 적자가 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전국 5개 적십자병원과 1개 재활센터의 누적 적자가 838억6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경영 악화 탓에 한 때 16개에 달했던 병원 중 11개가 폐쇄됐다.

병원별 적자금액은 서울 적십자병원이 287억9100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인천 적십자병원이 190억8800만원, 경북 상주 적십자병원 129억2500만원, 경남 통영 적십자병원 77억23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2010년 문을 닫은 대구 적십자병원의 경우 적자액이 154억원이었으며 5년 전 폐업하면서 빚이 대한적십자사 본부로 넘겨진 상태다.

적십자사는 1905년 서울 적십자병원을 처음 개원한 뒤 1974년 백령병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개의 병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 중 11곳(68.8%)이 경영난 등을 이유로 문을 닫거나 통폐합됐다.

부산 적십자병원은 1986년, 강원도 춘천 적십자병원은 1987년 문을 닫았다. 광주 적십자병원의 경우 1996년 5월 서남대 부속병원으로 통합됐다. 또 백령 적십자병원은 1995년 2월에 가천대 길병원, 전남 목포 적십자병원은 1994년에 목포전문대 부속병원으로 각각 통폐합됐다.

적십자 측은 적십자병원의 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높은 비율의 의료급여 환자 비중, 낮은 비율의 비급여 수가 진료, 수익성 떨어지는 진료과 운영, 정부의 정책적 사업 수행 등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병원 측은 “적십자병원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를 통해 의료안전망 역할을 해왔지만 절반 이상이 경영 악화로 폐원됐다”며 “비용절감, 인력감축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공공의료 수행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착한 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착한 적자는 ‘공익적 의료의 제공, 사회적 안전망의 유지,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정책 수행, 지역사회의 공익적 활동을 위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손실’로 규정된다.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착한 적자는 정상적인 진료만으로는 병원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수가가 낮은 구조적인 문제를 반증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내에 위치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공공병원은 대부분 급여수준이 낮아 우수 의료인력의 수급이 어렵고 병원장의 경영권인사권에 제약이 많아 과감한 경영을 할 수 없다”며 “시설 및 의료장비가 낙후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직원 중 장기근속자가 많아 인건비 비중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민간병원에 비해 감독기관의 평가 및 감사가 지나치게 많고, 비급여 진료나 의료외 사업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공공병원이 수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이 빗발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 공공병원의 적자를 공익적 발생분으로 인정하고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전해주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국공립대병원, 지방의료원, 시도립병원, 적십자병원 등 전국 200여곳의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동안 국가와 지자체가 공공병원에 시설·장비 등은 지원해왔지만 적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전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공공병원 평가에 있어서도 취약계층진료 등 공익적 활동에 따라 발생한 착한 적자를 따로 구분하지 않아 공익적 활동비용까지 모두 적자로 계상해 결과적으로 공공병원의 수익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오도되는 일이 잦았다”며 “이번 법 개정은 공공병원의 적자를 해소하고 착한 적자를 명확히 구분해 공공의료기관의 이미지 상승에 도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적십자병원이 적자를 줄이려면 정부 지원에만 기대하지 말고 내부적인 체질 개선에 먼저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일부 공공병원들이 공익성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로 방만경영을 일삼고, 이로 인해 발생한 적자를 의료계의 구조적인 모순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적십자병원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매년 성과급 잔치를 벌여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국감 때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총 9억7900만원의 성과급이 지급됐고 1인당 지급한 성과급은 2010년 900만원, 2011년과 2012년 1700만원, 지난해 1000만원으로 확인됐다. 
적십자병원의 성과급 논란은 지난해뿐만 아니라 최근 몇년 간 국감에서 꾸준히 지적됐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병원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적자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전체 누적 적자의 43%를 차지하는 서울적십자병원의 경우 100병상 당 의사수가 14.2명으로 다른 적십자병원의 7.8명 대비 1.8배 많았다. 의사의 총 근무시간 중 환자진료시간의 비중은 서울적십자병원 내과의 경우 68%로 다른 지역의 적십자병원 평균인 81%보다 낮았다. 특히 이 병원의 총 19개 진료과 중 약 42%에 달하는 8개과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의료효율이 낮을뿐만 아니라 재료비 및 관리비의 약 65.3%를 차지하는 구매 업무도 신규업체 참여가 부진하다. 형식적 경쟁입찰 위주로 기존 업체가 지속적으로 낙점받는 바람에 연간 3억원의 기회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재정난 심화에도 불구하고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만성적인 누적 적자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공공병원이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막연히 정부지원만 바랄 게 아니라 병원 자체적으로 체질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감염병특성화병원 등 기존 병원과 차별화되는 적십자병원의 새로운 생존전략과 재정 안정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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