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보통 노인들이 잠자리에 일찍 들고, 동이 트기 전에 깨어나기 때문에 사용된다. 다만, 이 같은 습관이 있는 노인이 수면을 충분히 취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충분한 수면은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성인은 하루 평균 7~9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수면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단 1시간을 자더라도 질 좋은 수면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회원국 중 최하위였고, 평균 7시간 49분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1시간가량 적었다.
수면장애는 노인, 특히 퇴행성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는 기존 질병을 악화시키거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쳐 주의가 필요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야간에 충분히 수면을 취한다면 인지 및 행동 장애가 개선될 수 있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박기형 교수가 환자 117명(알츠하이머병 환자 63명, 연령과 성별 대응 비치매 노인 54명)을 대상으로 야간 수면 특성을 평가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박 교수는 이 같은 연구논문을 2014년 Journal of Clinical Neurology에 발표했다.
수면 특성은 피츠버그 수면의 질 평가 설문(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을 이용했고, 인지기능 평가를 위해 자세한 신경인지기능검사(SNSB)와 한국판 치매행동평가척도(NPI-K)를 통해 이상행동을 평가했다.
연구 결과,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수면의 양과 질이 낮으면 공간 기억력이 저하돼 길찾기 등의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 또 전두엽기능이 떨어져 인지저하와 이상행동이 악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알츠하이머병 환자군에게 수면잠복기는 공간지각력과 공간기억을 평가하는 Rey-Osterrieth complex figure test (RCFT) 평가 중 ‘즉각회상’, ‘장기회상’, ‘재인식’ 항목과 실행능력을 보는 항목에서 음의 상관관계에 있었다.
반면 치매가 없는 정상 노인군에서는 ‘즉각회상’, ‘장기회상’ ‘재인식’ 항목에서 수면과 통계적 의미가 없었다. 즉 수면잠복기가 길어져서 잠이 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 알츠하이머 환자의 전두엽 기능이나 시공간기능이 현저히 떨어져서, 이상행동이 악화될 수 있고, 길찾기 기능 등의 인지기능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 자주 깨지 않고 잠을 잘 자는 수면효율이 좋은 환자들은 공간기억평가(RCFT) 중 ‘즉각회상’ 및 ‘장기회상’은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지만, 정상노인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즉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야간 수면 시, 자주 깨지 않고 수면을 잘 취하는 경우도 공간기억을 향상시킨다는 의미다.
알츠하이머병 노인의 수면장애는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주간, 야간 수면장애가 있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우울증이 잘 나타난다. 우울증의 증상 중에서 무감동이 많이 동반되는데, 무감동은 목적지향적인 행동이 사라지고 지적인 흥미가 없으며 감정과 정서상의 무관심이 커지는 증후군이다.
무감동을 겪는 노인은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기능적·인지적 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아 예후가 나쁘다. 무엇보다 우울증 치료를 방해한다.
박기형 교수팀의 연구결과 수면효율이 좋지 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무감동이 더 잘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수면장애가 있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공격성이 두드러질 수 있다.
박기형 교수는 “결국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수면장애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인지기능을 호전시키는 효과 뿐 아니라 우울증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여 환자의 상태 호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라며 “노인 수면장애 치료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의의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은 다양한 수면질환에 시달린다. 불면증은 가장 흔한 수면질환으로 전체 노인의 1/5~1/3이 경험한다. 노인 불면증은 다른 연령층과 달리 대부분 내과적 문제나 만성질환과 동반돼 일어난다. 고령 자체가 불면증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미약하다. 심장질환, 뇌졸중, 고관절 골절, 우울증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 외에도 야간 다뇨, 폐경, 수면구조의 변화, 일주기 리듬의 변화, 일조량 감소, 신체적 활동의 감소 등 수면 자체와 관련된 요인이 작용한다.
박기형 교수는 “노인 수면장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질환에 대한 동반 치료가 수반돼야 한다”며 “노인은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혼자 수면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 진단에 있어서 성인에 비해 어려운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