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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삶에 지친 현대인이여, 침대로 가라 … 수면이 삶에 미치는 영향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7-27 05:58:42
  • 수정 2020-09-14 12: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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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감신경 활성화, 자율신경계 균형 붕괴로 심장병·불안증 유발 … 공복호르몬 분비 늘어 비만 위험
수면욕은 식욕, 성욕과 함께 인간의 3대 욕구로 꼽힌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면 면역력이 높아지고 체온조절의 항상성이 유지돼 몸이 근본적으로 건강해진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인간의 수면시간은 점차 감소해 수면부족 현상이 마치 전염병처럼 사회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기기의 발달은 컴퓨터와 TV를 끄고 침대에 누운 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다. 경쟁 일변도의 현대사회는 야근을 일상으로 만들었고 도심 빌딩의 불은 밤새 꺼질 줄을 모른다. 최근엔 해가 진 뒤에도 날씨가 푹푹 찌는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14분으로 가장 짧았고 한국은 7시간 50분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반대로 중국은 평균 9시간으로 수면시간이 가장 길었고 프랑스, 인도, 뉴질랜드 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잠이 부족하면 단순히 다음날 피곤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으로 각종 문제가 발생해 삶의 질을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로 수면부족을 ‘공중보건 전염병(public health epidemic)’으로 분류했다. 미국수면의학회는 성인이 하룻밤에 7시간 이상 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수면의학 권위자인 미국의 윌리엄 디멘트 박사는 저서 ‘수면의 약속’에서 수면부족이 축적되면 사고나 건강 상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로 ‘수면 빚(sleep deb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졸음은 단순히 ‘졸음 운전’ 이상의 위험을 초래한다. 1989년 수백만 갤런의 원유를 바다로 쏟아낸 유조선 엑손발데스호 좌초 사건은 이틀간 6시간밖에 자지 못한 3등 항해사의 수면부족이 원인이었다. 우주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책임자들의 심각한 수면부족으로 발생했다.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도 마찬가지다. 디멘트 박사는 “졸음은 경쟁력을 갉아먹고 집중력 저하, 의사 결정의 지연과 오류, 무관심, 동기 상실 등을 유발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면부족은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자는 동안에는 부교감신경이 교감신경보다 활발히 작용한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교감신경이 긴장해 활성화되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런 경우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불안과 분노가 반복되고,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혈당 수치가 올라 당뇨병에도 영향을 준다.

또 심장박동수와 혈압을 올리는 교감신경이 긴장하면 고혈압, 심장병, 뇌혈관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신철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교수는 “최근 국제학회에서 수면부족이 수명을 60% 이상 단축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며 “수면시간이 5시간 미만이거나 8시간 이상인 경우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하루 ‘4시간 수면’에 ‘절대 잠들지 않는 총리’로 유명한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은 말년에 뇌졸중과 치매로 고통받았다. 

수면시간은 면역력과도 깊게 연관된다. 백혈구와 림프구는 인체 면역시스템을 담당하며, 자율신경은 이들의 숫자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충분한 수면과 편안한 휴식을 취할 경우 부교감신경이 림프구의 수를 늘린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아플 때 잘 먹고 잘 쉬면 피로가 풀리고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수면 중 분비되는 성장호르몬도 면역력 향상에 영향을 준다. 반면 정상적인 잠을 자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교감신경이 흥분돼 림프구 숫자가 감소한다. 
실제 한 연구에서 잠을 7시간 미만으로 자는 그룹과 8시간 이상 자는 그룹에게 감기 바이러스를 투여한 결과 잠을 충분히 자는 사람, 그중에서도 잠자리에서 뒤척이지 않고 질이 높은 수면을 취한 사람이 감기에 덜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의 경우 잠을 충분히 자야 낮에 공부한 내용이 뇌의 장기 기억장치로 옮겨져 지식이 된다. 이 때문에 잠이 부족하면 성적이 오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음식 섭취 및 운동과 함께 숙면을 취하는 데에도 신경써야 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졸음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아데노신’이 분비돼 원활한 신체대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호르몬의 분비가 저하되는 동시에 식욕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의 분비가 활성화돼 비만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렐린은 위에서 분비되는 내분비물로 공복호르몬(hunger hormone)으로도 불린다. 식사 전에 수치가 올라가고 식사 후에는 내려가는 성질이 있어 최근에는 식욕과 섭취하는 음식의 양을 조절한다.

수면과 건강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에디슨을 수면부족의 전세계적 확산을 유발한 장본인으로 본다. 약 10시간에 달했던 하루 수면시간이 전구 발명 후 급격히 짧아졌기 때문이다. 잠을 시간 낭비라고 여겼던 에디슨은 하루에 3~4시간만 잤다. 주민경 한림대 성심병원 뇌신경센터 교수는 “에디슨은 짜증을 달고 살았고 가족과의 관계도 파경에 이를 정도로 좋지 않았다”며 “수면이 부족하면 화를 잘 내는 등 몸과 정신에 이상 증상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면시간이 부족하거나 잠을 자는 습관이 잘못되면 ‘자기조절’(self-control) 능력이 떨어져 욱하는 경우가 늘 수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미국 클렘슨(Clemson)대의 필처 심리학 교수는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낮 시간 활동에 필요한 예비 에너지가 부족해지고 이는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표적 충동 증상으로는 도박, 마약 중독, 과소비 등이 있었으며 만성 수면부족에 이를 경우에는 직장이나 가정에서까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필처 교수는 “수면시간뿐만 아니라 수면 습관이 잘못된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고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졌다”며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해 주는 자기통제 능력이 손상되면 개인적인 출세와 삶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유근영 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팀이 정상인 1만3164명을 하루 수면시간 5시간 이하군, 7~8시간군, 10시간 이상군으로 나눈 뒤 15년 간 추적 관찰한 결과 7~8시간 수면군의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 반면 5시간 이하 수면군은 7시간 군보다 21%, 10시간 이상 수면군은 36% 사망률이 높았다. 

심혈관계질환의 경우 5시간  이하 수면군은 7시간 수면군보다 사망률이 40%, 10시간 이상 수면군은 37% 증가했다. 호흡기계 질환의 사망률은 5시간 이하 수면군이 85%, 10시간 이상 수면군은 98% 높아졌다.

유 교수는 “7~8시간에 비해 수면시간이 짧거나 길수록 사망률이 증가해 수면시간에 따라 U자형 위험도를 보였다”며 “수면시간과 관련된 신체 내 영향으로는 코티졸 분비 변화로 인한 성장호르몬 대사 변화, 그렐린(ghrelin) 등 식욕관련 호르몬 분비 변화로 인한 에너지대사 변화, 만성염증의 지속적인 증가 등이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서적인 불안감과 사회경제적 지위 등은 수면부족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강대희 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의 경우 하루 6시간을 채 못 자는 비율이 적정 시간을 자는 사람보다 남성은 1.8배, 여성은 1.6배 가량 높다”며 “이밖에 흡연, 불규칙한 식사습관, 주관적인 건강상태,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나쁜 생활습관, 좋지 않은 심리상태 등이 수면부족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요즘처럼 열대야가 심할 땐 수면부족이 더 심해진다. 신현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적당한 온도는 20도 전후”라며 “열대야로 밤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면 인체 체온조절 중추가 각성상태가 돼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우 잠을 자도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며 낮에도 졸림 현상을 느끼면서 무기력, 두통, 소화불량 등에 시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열대야를 이기고 숙면하려면 온도는 물론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외부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몸속 체온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아 중추가 흥분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잠들기 2시간 전부터 에어컨을 틀어 방 벽을 차갑게 식히고 습도를 조절하는 것도 여름철 숙면의 비결이다. 

흔히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면 잠이 빨리 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면 중에는 체온이 낮아지는 반면 목욕을 하면 올라간다. 목욕으로 올라간 체온이 원상태로 돌아오려면 1시간은 걸린다. 이로 인해 자기 직전에 욕조에 들어가면 잠드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목욕을 하고 싶다면 잠들기 2시간 전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

간단한 스트레칭은 심신의 긴장이 풀리게 해 숙면을 도와준다. 반면 격렬한 운동은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잠을 못 이루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햇볕을 쬐면 기분이 상쾌해질 뿐만 아니라 잠을 제 시간에 자는 데 도움된다. 우리 몸은 아침에 일어나 햇빛을 쬔 후 15시간 전후로 졸리게 돼있다. 빛을 쬐었을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밤이 되면 멜라토닌으로 변해 숙면을 취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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