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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제모와의 전쟁 … 여성 제모, 언제부터 시작된걸까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5-07-27 00:41:16
  • 수정 2020-09-14 12: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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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로마·이집트부터 성행 …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여성 대상,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체모 면도 강제
20세기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가 현대적 면도기를 발명하면서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아름답지 않다”는 광고 문구로 여성들의 제모를 부채질했다. 요즘 ‘털 관리’는 에티켓이 된 시대다. 흔히 제모는 현대에 들어와서 생긴 뷰티습관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근대 이전 고대 그리스 여인조각상부터 중세시대 누드화까지 여성을 그린 작품에는 털이 한 올도 없이 매끄럽다. 

역사학자 다니엘라 마이어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체모 면도가 이뤄졌고 이를 시행하는 쪽은 오로지 여성들”이었다며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여성도 제모라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털·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란 책에는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는 제식의 한 부분으로 털뽑기가 행해졌고 신들 몸에는 털이 없다고 믿었다고 기술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용 목적으로 제모가 이뤄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녀 모두 몸에 난 털을 말끔하게 다듬었다. 제모하지 않은 사람은 노예, 이방인 정도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머리, 턱수염, 눈썹, 전신을 제모했던 것이다. 여성도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제모했다.

고대이집트 시대에 쓰이던 제모 재료는 현대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밀랍’과 ‘슈거링’이다. 흔히 왁싱에 쓰이는 재료들이다. 제모를 위한 면도칼은 돌,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다. 족집게도 사용됐다. 부장품에 제모 관련 재료나 도구등을 넣었을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

그리스·로마시대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시 로마 상류층 여성들은 바닷조개를 족집게처럼 써서 종아리 등에 난 털을 뽑았고, 그리스에서는 등잔불로 털을 지져 없앴다.

‘치장의 역사’에서는 로마 귀부인의 제모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은 온몸과 얼굴에 난 털은 물론 콧구멍 속 털까지도 모조리 뽑았다. 

당시에는 잔털을 제거할 때 탈모제인 ‘석황’을 주로 사용했다. 석황의 성분은 비소화합물이기 때문에 피부를 상하게 할 위험성이 매우 컸지만 매끄러운 살결을 위해 여성들은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불셀라’ 라는 집게를 사용해 체모를 하나하나 다 뽑아 제거했다. 마무리로 불을 사용해 털을 태워 몸에 잔털이 없도록 유지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부인들은 고귀함의 상징이었던 ‘넓은 이마’를 만들기 위해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을 뽑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인 ‘모나리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에게는 왜 눈썹이 없을까?’ 아직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렇듯 유럽 중세 때는 여성의 몸에 털을 제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과 속 눈썹 또한 포함됐다.

이렇게 벗겨진 머리 위에 모발이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박쥐나 개구리의 피, 당근즙, 양배추를 태운 재를 식초에 담은 에센스 같은 이물질을 발랐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이같은 제모 문화는 식민지시대와 빅토리아시대까지 이어진다. 

이슬람권에서도 여성의 제모는 필수였다. 이는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제모 문화를 받아들인 비잔틴제국을 통해 소아시아 지방까지 세를 뻗치고 있던 이슬람권으로 이어진다. 9~20세기 이슬람 압바스 왕조 시대의 상류사회 여인들은 얼굴에 나는 잔털을 족집게로 전부 뽑아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온몸에 아르메니아산 황토를 발라 문질러 몸의 잔털을 정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황토를 바르고 시간이 지나면 흙이 마르면서 이를 때어낼 때 잔털이 함께 뽑히도로 하는 방법이다.
  
이밖에 중동에서도 특이한 제모 풍습이 있다.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 제모하지 않고, 결혼 후에 머리털을 제외한 몸의 모든 털을 뽑아 신랑에게 선물했다. 이는 신랑을 존경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여성의 체모(體毛)가 자연스러워진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19세기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난 시점을 꼽는다. 이때 제모를 거부하는 여성들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같은 상황은 미술작품에 그대로 반영됐다. 

대표적인 게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다. 이 작품은 ‘인간’을 그린 최초의 누드화로 여성 음부를 부드러운 그늘로 처리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 당시 누드화는 모두 신화나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여신만 허용했지만 고야는 신이 아닌 인간을 그려 스페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는 결국 현실 여인의 누드를 그렸다는 이유로 종교재판까지 선다. 
 
20세기 초 아르누보(신예술) 양식이 떠오르면서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의 누드화는 이전과 다른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털 한 올 없이 매끄럽게 표현됐던 이전의 조각·회화와 달리 겨드랑이털과 음모를 세부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모는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이는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 없는 드레스가 유행하면서부터다. 1915년 미국의 패션지 ‘하퍼’는 반라나 다름없는 여성의 사진과 그 옷의 제단견본을 부록으로 실었다. 

그러자 여성지 칼럼니스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겨드랑이와 팔뚝의 털을 면도할 것을 권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미국 화장품 회사들도 제모제를 내놓았다. 20세기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가 현대적 면도기를 발명하면서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아름답지 않다”는 광고 문구로 여성들의 제모를 부채질했다. 

사실 털은 뽑거나 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게 가장 좋다. 데스 토빈 브래드포드대 세포생물학 교수는 “몸의 털은 살갗이 서로 맞닿는 부위의 마찰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며 “아무리 적은 털이라도 모든 털은 피부의 ‘완충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겨드랑이나 비키니라인 등도 마찬가지다.

토빈 교수는 “겨드랑이털을 제거할 경우 팔을 움직일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며 “가령 살갗이 데이는 것과 같은 ‘카펫 번’ 증상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중 제모크림을 이용해 비키니라인의 털을 제거할 경우 질염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경우 가려움증, 통증, 분비물 증가 등과 같은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오스틴 어그마두 런던 세인트조지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어떤 사람들은 제모 크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염증이 발생해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반복적으로 음모를 제거하면 모낭염이 발생하기 쉽다. 어그마두 전문의는 “비키니라인 부위에는 모공이 밀집돼 있다”며 “또 땀이 잘 나는 부위로 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어 자주 제모하면 질염 등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원시 시절처럼 털이 몸을 보호하는 시대가 아닌 만큼 털이 싫은 사람은 제모를 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한마디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신경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털을 뽑지 않은 여성은 놀림의 대상이 된 분위기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과거 제모는 가부장적인 억압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현재는 기업의 상술로 이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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