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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웰니스제품 의료기기 제외되나 … 식약처·의료계 기싸움 팽팽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6-30 13:00:29
  • 수정 2015-07-03 11: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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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증 없이 공산품 되면 안전사고 우려 … 리베이트 감소에 대한 불만 표출

구글이 개발한 환자용 심장박동기 측정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밴드형 체지방측정기 등 ‘웰니스 제품’을 의료기기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의료계가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가 일부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규제를 무분별하게 풀어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병·의원과 의료기기업체 간 리베이트가 관례적으로 이뤄져왔던 점에서 의사들이 자신들의 ‘파이’가 줄어드는 것에 분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는 29일 “식약처가 추진하는 ‘건강관리용 웰니스 제품 구분관리 기준 제정’은 이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규제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국민의 건강보다 의료기기산업에 새로운 먹거리를 주겠다는 근시안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웰니스제품은 사람을 대상으로 단독 또는 조합해 사용하는 기구·기계·장치·재료·소프트웨어·앱 등을 통칭한다. 일반적인 건강한 활동 유지·향상, 건강한 생활방식·습관 유도를 통한 만성질환 위험 감소 목적으로 사용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이달부터 인체위해도가 낮은 웰니스제품은 의료기기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경우 의료기기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면 사전 허가심사,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등 의료기기에 적용하는 의무규정을 준수할 필요가 없어진다.

의료와 관련된 제품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해 생명을 보존하기도 하지만 오남용·해석의 다양성·결과와 효과의 신빙성·상업적 이용 등으로 인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총기처럼 위험성이 상존한다.
특히 이번 기준안엔 심전도계, 폐활량계, 혈압계, 콜레스테롤분석기 등 만성질환의 진단 및 치료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기들이 다수 포함돼 의사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내과 전문의는 “의료기기법에서 의료기기를 질병의 진단, 치료, 경감, 처치 또는 보정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기기로 정의하고 있어 두 개념은 매우 유사하고 실제로 두 제품을 이분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심전도계의 경우 신체 상태에 맞는 음식 레시피 제공에 도움주기 위해 심전도를 측정하면 웰니스제품, 질병 진단 및 치료 등을 목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심전도를 측정하면 의료기기로 구분하겠다는 식약처의 발표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식약처가 발표한 ‘웰니스 제품’과 ‘의료기기’ 구분 사례는 표현이 두루뭉술하고 기준이 모호해 혼란을 주기 쉽다. 예컨대 혈압계의 경우 만성질환인 고혈압 관리를 목적으로 자가 사용하면 웰니스제품, 고혈압 진단 및 치료 등 의료 목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혈압계는 의료기기로 구분된다.
저주파자극기도 운동효과를 높이기 위해 운동시 근육에 저주파 자극을 주는 제품은 웰니스, 근육통 완화 등 치료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의료기기다.
즉 사용주체가 의료인이고 질환 치료용으로 쓰이면 의료기기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규제가 풀리면 웰니스제품과 의료기기 간  구분이 더 어려워지고, 각종 안전사고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입안예고 절차상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의료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웰니스 기준안을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보건산업진흥원 홈페이지를 통해 숨기듯 입안 예고하고, 의견조회 기간을 단 이틀로 도망치듯 서둘러 마감했다. 공청회 개최 과정에서도 웰니스제품은 공산품이라는 이유로 의료전문가 몰래 진행했다.

내과의사회는 “기준안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고 지난 6월 2~3일 단 이틀간의 의견조회 기간을 주고 개선안을 추진한 것은 의료계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처사”며 “이같은 졸속 추진에 대해 의료계가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시하자 식약처 관계자는 ‘웰니스 기기는 공산품이기 때문에 의협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는 궁색한 해명만 내놨다”고 꼬집었다. 

의사회 관계자는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전문가인 의료인을 배제하고,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박탈한 채 공산품으로 포장한 점은 순전히 의도적이었으며, 배후에 순수하지 못한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의료기기와 구분이 모호한 웰니스제품에 대해 의료기기 법령에서 정하는 허가·승인·인증·신고, 시설 및 품질관리체계(GMP)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면 유사의료행위와 무면허의료행위를 합법화하거나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와 공산품의 경계영역에 있는 웰니스제품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고령화 및 웰빙시대에 맞물려 관련 헬스케어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식약처가 건강관리용 웰니스제품 구분관리기준안 관련 공청회에서 공개한 삼성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헬스케어 시장은 국내 5조2000억원, 해외 664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2018년 국내시장 규모는 9조7000억원으로 거의 두배 가량 급성장하고, 해외시장도 89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이날 발표된 전문리서치업체인 SRI인터네셔널의 조사결과 식약처 개선안에 따라 의료기기에 포함되지 않는 웰니스제품의 해외시장 규모는 2010년 기준 1조9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웰니스제품도 건강관리 분야에서 28조4824억원, 여가활동관리 분야에서 14조9155억원, 생활환경관리 분야에서 32조5819억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뿐만 아니라 웰니스는 신산업 창출을 이끌어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2014년 12만명이었던 관련 일자리는 2020년 19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이번 활성화 대책을 토대로 웰니스 신산업 창출을 통해 글로벌시장 선점이 가능해 질 것”이라며 “안전과 관계없는 불필요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헬스케어 분야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 힘쓰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웰니스제품 시장에 진출하려는 의료기기업체들의 전방위적 로비활동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 개원의는 “웰니스제품의 규제가 완화돼 의료기기에서 공산품으로 분류되면 의료기기업체들의 영업활동이 이전보다 한결 수월해지고 매출도 급증할 것”이라며 “식약처가 멀쩡히 있는 의료기기를 갑자기 공산품화하겠다고 나선 데에는 관련 업체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의료기기업체들의 반응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중소업체들은 이번 조치가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뒤를 봐주기 위한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식약처 공청회에서 발표된 웰니스제품의 상당수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업계에선 기존 제조사들이 규제완화를 요구할 땐 안전성·유효성을 내세워 꼼짝 않던 식약처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심박측정 기능이 탑재된 이후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식약처 개정안에 대한 의사들의 반대가 국민건강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동안 의료기기업체는 일선 병·의원에 현금, 컴퓨터, 항공권 등 다양한 방법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왔다. 이달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의료기기 수입유통업체인 신우메디컬이 경상도지역 11개 병원에 1000여만원 상당의 부당한 리베이트를 제공한 행위를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 회사는 또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부산 모 병원 등 8개 병원의 의료기기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의사 회식비 명목으로 761만원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2년 11월에는 경북 지역 모 병원 의사를 대상으로 일본 학회 참석에 필요한 항공권 구입비용 85만원을 직접 대주기도 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기기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웰니스제품이 공산품으로 분류되면 업체는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고, 슈퍼 갑으로 행세했던 일부 의사들의 위치도 흔들릴 것”이라며 “안전사고 및 국민건강 위해를 우려해 이번 조치를 반대하는 의사들도 많지만 일부는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적어지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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