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삐어도 통증 없다면 ‘만성 족관절 불안정증’ 의심 … 1주일 4~5시간만 신으면 바깥 발목근력 향상되기도
여성들의 긴 다리에 대한 열망은 하이힐 열풍으로 이어지곤 했다. 운동화를 신으면 어쩐지 다리라인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 차이가 너무나 확연하다보니 매일 구두를 선택하게 된다. 높은 하이힐을 신다 삐끗하는 건 일상이고, 웬만큼 접질려서는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지속적으로 높은 구두를 신는 습관에 단련된 여자들은 킬힐을 신고도 잘 달리고, 경사진 곳도 부담 없이 걸어 다닌다.
문제는 하이힐을 신고 접질려 힘줄이나 인대가 늘어나거나 파열돼도 별 문제로 여기지 않고 다시 힐을 신고 다닌다는 것.
조준 강동 연세사랑병원 족부센터 소장은 “접질렸을 때 발목이 아픈 것은 힘줄, 인대나 주변 근육에 손상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삐어도 통증 없이 걸어 다니게 되는데 이는 좋아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은 더 이상 터질 힘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발목이 휘청거리는 ‘만성 족관절 불안정증’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성 족관절 불안정증을 진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흔히 ‘마지막으로 발목을 삔 게 언제입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기억을 못하는 게 정상이나, 기억을 잘 할 정도로,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접질린다면 100% 이 질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더 심하게 다치면 인대 손상으로 악화된다. 관절을 고정해주는 인대는 뼈에 단단히 붙어 있어 인대가 늘어나면서 뼈까지 갈라지게 할 정도로 강하다. 발목뼈가 부러져서 인대 손상이 오는 경우보다 인대가 뼈를 물고 뜯어지면서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골절과 인대 파열이란 대형 참사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골절되지 않더라도 힘줄이 손상되면 근육의 힘을 뼈에 전달할 수 없어 움직이기 어렵다. 인대가 손상되면 움직이긴 하지만 고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휘청거린다. 이같은 증상은 만성 족관절 불안정증의 원인이 된다. 가볍게 여기고 장기간 방치하면 ‘발목 관절염’ 발생까지 높인다.
조준 소장은 “발목은 죽을 때까지 유일하게 퇴행성 관절염이 생기지 않는 부위”라며 “발목에 관절염이 한번 생기면 우리 몸 중에서 제일 아프고, 무엇보다 걸을 수 없어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힐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이같은 상황에 최근에는 하이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2013년 윤범철 고려대 보건과학대 물리치료학과 교수팀은 ‘하이힐을 하루에 1시간 이하로만 신으면 발목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팀이 하이힐을 6일 동안 5시간 정도 착용한 그룹의 발목관절 움직임을 관찰했더니 하이힐을 착용하지 않은 그룹보다 발목관절이 발목 안쪽과 발바닥 쪽으로 더 많이 움직였다. 특히 하이힐을 신으면 발목 바깥쪽 근력이 크게 증가했다. 몸이 좌우로 많이 흔들리니 균형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근력이 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힐을 신고도 잘 달리는 여자들의 비결이다.
윤범철 교수는 “발목 바깥쪽의 근력은 발목 안정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며 “하이힐 착용이 근력을 강화시켜 발목의 안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이 연구결과만 보고 마음 놓고 하이힐을 신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하이힐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면 발 건강에 단점이 많은 신발”이라며 “형태학적 특성상 보행시 관절에 부분적이고 집중적인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엉덩이관절(고관절), 무릎관절, 발목관절 등 다리 안쪽과 바깥쪽 근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퇴행성 관절염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이힐을 일주일에 7~8시간 이상 신고 걸으면 혈액순환에 좋지 않고 관절에 무리가 온다”며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착용시간이 1주일 기준 4~5시간 안팎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면 평소 다리 안쪽과 바깥쪽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다. 하이힐을 신으면 발목 뒤쪽과 안쪽 근육과 인대가 짧아지기 쉬우므로 수건 등을 활용해 짧아진 발목 뒤쪽과 안쪽을 스트레칭하는 게 도움이 된다. 제자리에서 뒤꿈치 올리기 같은 반복적인 운동을 시행해 약해진 발목 뒤쪽 종아리 근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하이힐을 신는 여성이라면 체중관리에도 신경써야 한다. 비만은 발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다. 신발이 발 건강에 40%정도 영향을 미친다면 비만의 원인인 과체중은 약 60%정도의 영향을 준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몸무게가 4~5㎏ 늘거나 줄어도 발에 문제되는 경우의 수가 늘거나 줄 수 있을 정도로 체중과 발·발목의 상관관계는 큰 편이다. 비만한 상태에서 가느다란 굽이 달린 하이힐에 의존하다보면 발목이 받는 압박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이힐과 대척점에 서 있는 플랫슈즈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장기간 플랫슈즈를 신으면 족저근막염이 올 수 있다. 신발 밑창이 1㎝ 이하로 얇아 발바닥 가운데 부분의 아치를 받쳐주지 못한다. 이럴 경우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충격을 완충하지 못해 조금만 걸어도 피곤하고 심한 경우 족저근막염이 유발될 우려가 있다. 족저근막염은 발바닥의 두껍고 넓은 힘줄에 무리가 가해져 생기는 염증질환이다. 족저근막염을 앓게 되면 발바닥 통증 때문에 걸을 때 불편함을 호소하며, 주로 아침에 일어나 첫 발을 디디자 마자 발뒤꿈치에 심한 증상이 나타난다.
발목건강은 간 질환을 다스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참지 못할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오면 이미 대부분 망가진 상태는 것. 조준 소장은 “정형외과는 치료가 아니라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며 “문제가 생기면 병원을 찾아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초음파검사,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정확히 진단받고, 올바른 대처법을 따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