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 후 음주나 흡연을 지속하는 사람이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 암예방센터는 지난해 4~11월 위암, 대장암 진단을 받고 5년 이상 생존한 628명을 조사한 결과 암 진단 전 흡연자 298명 중 44명(14.8%)이 담배를 끊지 못했거나, 한동안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9일 밝혔다.
암 진단을 받고 5년 이상 생존한 사람을 ‘암 생존자’ 또는 ‘암 경험자’라고 한다. 국내 암 생존자는 2012년 49만여명이었으며, 현재 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조사결과 위암 생존자의 32.6%(21.1% 가벼운 음주, 11.5% 폭음), 대장암 생존자의 28.2%(19.7%는 가벼운 음주, 8.5% 폭음)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벼운 음주의 기준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건강증진재단이 발표한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에 따라 1주일에 1회 이하, 남성은 소주 5잔, 여성은 소주2.5잔 이하다.
암 생존자 중 담배를 계속 피우는 사람의 특징은 술을 마시고, 상대적으로 젊으며, 운동을 적게 하고, 생업에 종사한다는 점이다. 암 생존자 중 계속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73.9%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금연한 사람의 음주 비율(46.6%)보다 훨씬 많았다.
연령별로20~50대 암 생존자의 금연 비율은 82.3%에 그쳐 60대 이상의 90.2%보다 낮았다. 또 흡연 중인 암 생존자는 59.1%만 따로 운동을 한다고 답해 금연한 암 생존자의 운동 비율(74.8%)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생활을 하는 암 생존자의 흡연율은 16.7%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은 암 생존자의 흡연율 11.1%보다 높았다. 담배를 피우는 암 생존자의 직업은 노동(18.6%)로 가장 많았고, 서비스직(16.3%), 사무직(11.6%) 등 순이었다.
암 생존자 중 술과 담배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등 건강관리에 허점이 많았다. 암 생존자의 필수 행동수칙은 금연, 금주, 운동, 정기검진 등이 꼽힌다.
외국의 연구결과를 봐도 암 생존자의 음주와 흡연율은 예상보다 높다. 올해 초 영국암저널(British Journal of Cancer)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암 생존자(922명)의 21.4%가 흡연 중이며, 16.4%는 권장섭취량보다 많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미국 암연구회(AACR)가 작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암 생존자 293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암 진단 때 흡연 중이던 암 생존자(409명) 중 67.5%가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담배를 피우는 암 생존자(272명)의 53.4%는 금연할 생각이 없거나, 확실치 않다고 답했다.
술, 담배는 일반인은 물론 암 생존자들의 재발암이나 2차암(다른 암) 발생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 담배는 폐암, 후두암, 구강암, 위암, 식도암, 췌장암, 자궁경부암, 방광암, 신장암, 대장암, 백혈병 등 여러 암 원인의 20~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담배를 피우는 암 생존자는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암 재발률이 3.5배 높다는 보고도 있다. 2011년에는 5366명의 미국인 전립선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40갑년(1갑년:하루 1갑씩 1년을 피웠을 경우) 이상의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암 재발률이 약 48%, 전립선암으로 인한 사망률도 82%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2차암의 발생 가능성 역시 4~8배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성훈 연세암병원장은 “암 생존자가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의지가 약하거나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한다”며 “암 생존자의 금연·금주를 도와주는 의학적·사회적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암을 가볍게 생각하고 술, 담배를 지속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암 생존자 중에는 막걸리 등에 항암성분이 들어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막걸리를 마신 사례도 있었다.
노 원장은 또 “암이 발생한 사람은 유전적·환경적 소인으로 암의 재발이나 2차 암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금연·금주해야 하며 검증되지 않은 항암 성분도 함부로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