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Vaccine)은 병원체인 바이러스나 미생물 등 항원에 의해 감염되기 전에 인체 내에 인위적으로 병원성을 제거하거나 혹은 병원성을 약하게 만들거나 사멸시킨 병원체 등을 주입해 특정 질병에 감염되더라도 이를 막아주는 예방의약품이다. 주로 세포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를 활성화시켜 항체를 형성하도록 유도, 신속한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깨끗한 물을 제외하고 백신만큼 사망률 감소와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는 견해가 있을 정도로 인류의 생명연장에 기여한 항생제보다도 공로가 지대하다.
백신의 어원은 ‘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다.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자신의 천연두 예방법(우두법)을 ‘vaccination’이라고 불렀고,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치료법을 ‘백신(vaccine)’이라고 명명하면서 이름이 굳어졌다.
백신은 1796년 영국의 제너가 당시 사망률이 40%에 달했던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해 처음 개발했다. 제너는 “우두에 걸린 일이 있는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1796년 우두에 걸린 여인의 종기로부터 고름을 채취해 한 소년의 팔에 주사했다. 그 소년은 천연두 고름을 주사해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이 개념을 더 넓혀 여러 가지 백신을 개발했다.
19세기에는 장티푸스, 콜레라, 페스트 백신이 선보였다. 1909년에는 오늘날 백신(왁진)의 대명사격인 결핵예방백신(BCG)까지 개발됐다. 백신의 독일어 발음은 바크진(Vakzin)인데, 주로 독일의학을 모범으로 삼은 일본의학은 이 발음을 제대로 못해 ‘와쿠진’이라 부르게 됐고, 그 영향으로 백신을 지금은 왁진으로 잘못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도 백신 대신 왁진이라 명명하고 있다.
이후 1949년 세포배양법으로 바이러스의 증식이 가능해지면서 조너스 소크 박사(Jonas Edward Salk, 1914~1995)가 소아마비백신을 개발한 것을 비롯, 홍역·간염백신 등 수많은 백신이 잇따라 세상에 나왔다.
천연두는 백신접종으로 인해 소멸된 것으로 알려진 지 오래다. 장티푸스, 콜레라, 페스트, 결핵, 파상풍, 독감, 광견병 등 다양한 감염증을 백신이 효과적으로 방어해주고 있다.
백신은 만드는 방법이나 작용하는 기전에 다양해 일반인이 알기 어렵다. 우선 크게 생균백신과 사균백신으로 나뉜다.
사균백신은 병원체를 죽이고, 항원은 그대로 남겨 만든다. 인플루엔자, 콜레라, 소아마비, 일본뇌염, 홍역, 백일해 백신 등이 이에 속한다. 미생물을 가열하거나, 포르말린·페놀 등 화학약품을 첨가하거나, 자외선을 쬐는 방법으로 미생물을 죽이거나 불활성화시킨다. 증식 위험이 없고, 개발 기간이 짧으며, 보관이 용이하다. 유효한 항원만을 정제 추출하므로 부작용이 적지만 면역 지속기간이 짧아 추가접종을 해야한다.
생균백신은 인체에 해가 없을 정도로 병원균의 독성을 약화시켜 만들어진다. 약독화백신이 주로 생백신이다. 결핵, 홍역, 풍진, 볼거리, 황열, 소아마비 백신 등이 이에 속한다. 제조비용이 사독백신에 비하여 저렴하며,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에게 면역능력을 형성시켜줄 수 있으며, 면역 지속기간이 긴 게 장점이다.
백신의 최신 개발 추세는 다가백신이다. 두 종류 이상의 병원체를 배양해 한번 접종으로 여러 감염증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같은 종류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도 몇 가지 종류가 존재해 그 항원성이 다를 경우에는 한가지 항원만으로 만든 백신을 사용했을 때 충분한 면역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인플루엔자, 폐렴, 자궁경부암 백신 등이 이같은 다가백신의 대표적 사례다.
여러 종류의 질환을 동시에 예방하면서 접종횟수도 크게 줄인 다가백신도 있다. A형·B형 간염혼합백신을 비롯해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TaP, Td/Tdap), 홍역, 볼거리, 풍진(MMR, measles, mumps, rubella)백신 등이 있다.
파상풍(tetanus), 디프테리아(diphtheria) 백일해(acellular pertussis, 함유량에 따라 ap 또는 aP로 표시) 백신은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접종한다. DTaP와 Tdap(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의 차이는 항원량의 함량 여부로 표기가 나뉜다. DTaP 백신은 7세 미만에 주로 접종되는데 대문자는 항원량이 많다는 의미로 소문자로 표기한 백신에 비해 3~4배 함량이 높다. 이에 비해 항원량이 소량 들어간 경우에는 소문자로 표시한 것이다. 성인용은 Tdap로 표기하는데 파상풍은 항원량이 높지만 디프테리아나 백일해는 항원량이 적게 들어 있다. 성인이 돼도 파상풍 예방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디프테리아나 백일해 감염위험은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성인용 Td백신의 경우 아예 백일해 항원이 없다.
톡소이드 백신은 병원체가 아닌 질병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을 비활성화시켜 만든 백신으로 파상풍과 디프테리아 백신이 있다. 쉽게 말해 균체보다 균 껍데기만을 이용한 것이다.
생균백신 제조시 약독화를 위해 약 40번 가량의 배양을 거쳐야 한다. 이를 계대배양이라고 하는데 항원을 배양하는 과정에서 달걀 성분이 배양액에 들어가기 때문에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백신을 맞을 수 없다. 세포배양 방식으로 생균백신을 생산하기도 하나 제조기간은 단축되지만 비용이 더 올라가는 게 단점이다.
최근엔 치료와 예방을 동시에 하는 백신이 개발중이다. 이를 ‘파맥신(pharmaccine)’이라고 하는데, 제약을 뜻하는 파마세우티칼스(Pharmaceuticals)와 백신(vaccine)의 합성어로 치료와 예방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에이즈뿐만 아니라 만성 B형간염, C형간염 등 만성질환,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HPV), 폐암, 유방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파맥신은 암 등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특정 단백질을 항원으로 본다. 파맥신을 접종받으면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작용을 이겨내는 면역력이 생긴다는 점이 중요하다.
백신을 주사하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는데 최근 충진주사(프리필드 시린지)라고 불리는 제품들이 나와 바이알이나 앰플을 깨지 않고 손쉽게 백신 접종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하면 앰플을 깰 때 나오는 미세유리가루의 위험이 적고, 바이알의 고무마개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을 경우 끝이 휘어 인체에 바로 주사하면 고통이 더 심해진다. 앰플과 바이알의 경우 주사액을 30% 이상 더 충진해야 하기 때문에 고가백신일수록 주사기에 직접 넣어 판매한다. 주사바늘도 주사시 조직이 덜 찢어지게 하기 위해 6회의 절삭으로 더 날카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