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 분회(서울대병원 노조)와 서울대병원 측이 지난 12일 ‘전 직원 성과급제 도입 철회’ 등에 합의하면서 20일간 지속됐던 파업이 종료됐다. 이날 노조와 서울대병원 측은 △직원 성과급제 도입안 철폐 △임금피크제 도입안 철폐 △정부 방만경영 정상화 계획 일부 도입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노조의 핵심 요구 사항인 ‘의사 성과급제 폐지’와 ‘어린이병원 환자 급식 직영화’는 협의점을 찾지 못해 갈등의 씨앗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협상 과정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은 지난달 2일 단체교섭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공식적인 교섭에 나오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파업이 3년간 연례행사처럼 일어난 점을 감안하면 향후 노조가 재차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조는 “국립대병원에서 성과는 단순한 수입 증대뿐만 아니라 공공의료의 역할과 의료의 질도 고려해야 한다”며 “성과급제가 확대될 경우 환자의 의료비 증가, 의료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병원이면 수익성을 중시할 수 있지만 국립대병원에서 왜 수익을 중요시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병원 측이 제대로 된 협상안을 내놓지 않아 합의가 쉽지 않았다”며 “병원 측이 환자와 임직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민영화정책을 추진한다면 언제든 다시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파업은 의사들에게만 시행되던 성과급제를 전 직원에 확대 적용키로 하면서 촉발됐다. 또 논란이 됐던 취업규칙 개정안은 노조 단체협약 해지 조항이 포함돼 노조 측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단체협약 해지는 노조가 협상자대표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므로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협상은 타결됐지만 서울대병원은 ‘정부 주도 의료민영화의 첨병’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당분간 벗기 어려워보인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는 획일적인 방식의 수익성을 국립대병원에도 강조하면서 지금도 심각한 국립대병원의 상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서울대병원은 성과급제 도입을 위해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불법적인 취업규칙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시민단체는 “비정규직에게 계약 연장의 조건으로 개악에 동의할 것을 협박하고, 직원을 따로 불러 서명할 때까지 퇴근을 못하게 하면서 인격모독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과급제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의사들에게 신규 환자 및 타과 초진 선택진찰료의 1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재진 선택진찰료의 50%, 공휴일 및 토요일·야간근무에 따른 선택진료수입의 30%, 수술·처치·검사료의 9.5%에 대해서도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정치권이 서울대병원이 비상경영을 외치며 추진했던 일련의 정책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점도 향후 병원경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파업 당시 오병희 원장과 면담을 갖고 “취업규칙 변경은 위법이며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특별근로감독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과잉진료와 수익 중심 운영으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진료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며 “노조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이 성과급은 교육부 방침이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차관 답변은 달라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서울대병원 등 공공병원의 영리활동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병원 경영에 상당 부분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 기조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이 병원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 운영지침을 이행하지 않으면 인건비 등에 대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공공병원들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경영이 힘든 상황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립대병원들의 의료수익은 대부분 증가했지만 순이익에서는 적자를 기록했다. 서울대병의 경우 2013년 252억원이던 적자액이 2014년 262억원으로 확대됐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관계자는 “병원은 인건비, 재료비, 관리비 등 3가지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중 인건비 비중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적자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병원운영은 의료수익 증가보다 인건비 등 의료비용 지출이 큰 구조이지만 수익성 증대는 ‘공공성’을 이유로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