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주스나 채소수프 등은 음식을 씹기 어렵거나 소화능력이 떨어진 환자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건강한 사람은 채소나 과일을 씹어 먹는 게 가장 좋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뷰티·안티에이징 노하우를 밝힐 때 빠지지 않는 게 ‘주스’다. 여자 연예인들은 평소와 달리 청순한 민낯에 가까운 얼굴로 “아침마다 이렇게 주스를 갈아 마셔요”라며 부엌 앞에서 이런 저런 채소와 과일로 주스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로렌스, 기네스 팰트로, 사라 제시카 파커, 미란다 커, 제니퍼 애니스톤 등도 주스를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스는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사는 평범한 과립주스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설탕물’이라며 멀리한다. 채소·과일을 직접 착즙해 자연 고유의 맛을 살렸다는 ‘자연주의 주스’가 대세다. 착즙기·원액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하루에 5~6병씩 주스를 3일 동안 먹는 ‘주스 디톡스 프로그램은’은 10만~20만원대의 고가에도 주문 폭주다.
언제부터인가 웰빙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스는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온갖 독소에 찌든 현대인을 구원하는 ‘비밀병기’ 쯤으로 생각하는 추세다. 오피스촌이나 번화가에는 주스바가 하나둘 생겨나고,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스타벅스 커피 대신 주스병을 들고 다닌다. SNS에서도 ‘건강을 위해 주스를 마셨다’는 인증샷도 쏟아져 나온다. 주스를 마시는 내 자신이 건강에 한발짝 더 다가간 듯한 기분에 이를 찾는 사람도 적잖다.
온라인에서는 마법의 주스 레시피들이 줄을 잇는다. 마치 불로장생의 비밀을 공유한다는 태도다. 주스 한잔으로 변한 삶에 대해 설파한다. 인스턴트식품과 동물성 지방으로 더럽혀진 죄 많은 몸을 구제해준다는 게 주스다. 주스 열풍은 종교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주스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주스의 효능은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피로를 해소하고, 체내 독소를 제거하며, 섭취 후 풍부한 섬유질이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른 음식의 섭취량을 자연스럽게 줄여 건강하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만들어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부까지 맑아진다고 주장한다.
주스 열풍의 시작은 ‘해독주스’에서 비롯됐다. 몇 년 전 인터넷 여성커뮤니티에서 회자되던 ‘마법의 주스’ 레시피를 개그우먼 권미진이 다이어트 비법으로 소개하며 급부상했다. 개그콘서트 헬스걸에 출연해 50㎏을 감량하는 과정을 공개하면서 눈에 보이는 다이어트 효과 덕분인지 주스의 효과는 신빙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우선 브로콜리와 양배추, 당근, 토마토 등 채소를 삶는다. 이후 사과나 바나나 등 좋아하는 과일과 함께 갈아 마시면 된다. 주스라기보다 죽에 가까운 초록빛을 띠는 덩어리는 맛을 떠나 매일 먹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다. 죽도, 음료도 아닌 식감에 최근엔 갈아 마시는 주스보다 원액을 착즙하는 게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음으로 등장한 ‘청혈주스’는 한의사의 레시피로 열풍 굳히기에 나섰다. 선재광 한의학 박사는 청혈주스를 마시면 피가 맑아져 당뇨병, 설사, 수족냉증, 불면증, 손발저림 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암까지 치료할 수 있다며 주스예찬을 펼쳤다. 당근과 사과, 귤, 양파, 생강 등을 믹서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며 최소 3주간 꾸준히 실천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디톡스 효과를 얻으려다 자칫 부작용을 얻을 수 있다. 오한진 비에비스나무병원 노화방지센터장은 “과일과 채소는 생으로 먹는 게 좋다”며 “채소와 과일에 포함된 비타민이 믹서 날에서 생기는 열 등으로 파괴될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굳이 갈아 마시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했다.
해독주스나 채소수프 등은 음식을 씹기 어렵거나 소화능력이 떨어진 환자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위장기능이 약하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중증 환자는 식이섬유를 섭취하지 못하면 장운동이 어려워 채소와 과일을 삶아 갈아먹는 게 도움이 된다. 오 센터장은 “주스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한꺼번에 많이 섭취할 수 있고 보관이 편리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이들 식품을 씹어서 먹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임경숙 수원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채소와 과일에 열을 가하면 비타민이 일부 파괴되지만 미네랄 흡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스는 어떤 방식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영양 섭취 정도가 달라진다. 주스는 △찌꺼기를 걸러내 착즙하거나 △생으로 갈거나 △삶아서 가는 등 여러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다. 제조 방법에 따라 영양이 달라지므로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만드는 게 좋다.
착즙 방식은 비타민 파괴가 적어 고농도 비타민을 빨리 섭취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다만 식이섬유가 파괴되는 정도가 믹서로 갈 때보다 훨씬 심하다. 생으로 갈아 마시는 것은 익혀서 가는 것보다 비타민 파괴가 적지만 씹어 먹는 것에 비해 포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주스보다는 생과일이 낫다.
채소를 삶아서 갈아마시는 주스는 생으로 갈거나 착즙할 때보다 흡수력이 높다. 특히 채소는 생으로 씹어서 먹으면 흡수율이 10% 정도로 낮은 편이다. 생으로든 삶아서든 씹어먹는 것보다 갈아서 먹을 때 몸에 흡수가 용이하다.
주스를 활용한 디톡스는 건강 목적보다 단시간에 몸매를 다듬길 원하는 여성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주스에 의존하다보면 오히려 다이어트를 망치는 주범이 될 수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세끼 내내 주스만 짧게는 3일, 길게는 2주까지 마시며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면 당장 먹는 음식이 없으니 다이어트 효과는 분명 눈에 보인다. 하지만 평생 주스만 마실 수 없는 노릇이다. 이후 식단조절에 실패하면 요요현상을 맞을 수 있다.
과일이나 채소 속 식이섬유는 당을 희석시켜 신체에 서서히 흡수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 이들 재료를 갈거나 착즙하면 식이섬유가 파괴돼 당분을 급격히 흡수하게 만든다. 예컨대 주스 재료 중 하나인 생당근의 당지수는 16인데 비해 당근즙은 60이다. 플라보노이드, 비타민C 등 유익한 성분이 풍부한 것은 그대로이나 높은 당 함유량으로 인한 부담이 높아진다. 오한진 센터장은 “당 수치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도비만 환자나 당뇨병 환자들은 해독주스를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주스만 마시면 탈모가 나타날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 모발은 단백질로 이뤄져 있는데, 세끼 모두 주스만 먹다 보면 모발에 필요한 단백질이 부족해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다.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이다.
음식을 씹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건 요리하는 행위”라며 “더욱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굽고 삶고 튀겨가며 요리하는 즐거움이 인류의 문명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요리는 다른 동물에게선 찾기 힘든 인간의 본능이다. 주스는 요리라고 보기에는 단순하고, 아무것도 씹지 않고 주야장청 주스만 마시다보면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주스를 먹고 싶다면 하루에 종이컵으로 한 잔(110g) 정도가 적당하다. 금식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차라리 생과일과 채소를 저지방우유에 곁들여 씹어 먹을 것을 권한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만약 주스만 마시면 탄수화물 섭취량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지면 케톤증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이런 경우 메스꺼움, 어지럼증, 만성피로가 느끼고 몸에서 평소와 다른 시큼한 냄새가 난다. 주스예찬론자들은 ‘명현현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이 과정을 버텨야 몸이 정화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신체가 산성화되는 것이다. 산성화는 디톡스가 아닌 노화를 재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