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다. 정상인은 3대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 불편함이 없지만 장애를 갖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내의 경우 사고나 외상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전체의 약 95%에 달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하루 아침에 장애를 갖게 되면 엄청난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장애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에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척수장애의 경우 식욕과 수면욕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지만 만족스러운 ‘성생활’에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인은 휠체어 생활을 하는 하지마비 장애인이 성생활을 포기한 채 살아갈 것이고 속단한다. 또 ‘몸도 불편한데 성생활에 관심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척수손상 환자가 예전처럼 건강한 성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김재식 국립교통재활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장애인의 ‘성’은 단순히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며 “몸이 불편한데도 성 욕구를 표출하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친밀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친밀도가 향상되면 상호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된다”고 강조했다.
척수손상으로 인한 대표적인 성기능장애는 발기부전으로 전체 환자 10명 중 7~8명에서 나타난다. 그 다음으로 호소하는 장애가 ‘무사정’이다. 주로 2번 요추신경 상부가 완전 절단될 경우 무사정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10번 흉수신경이 완전히 손상될 경우 감정을 통한 발기는 어렵지만 성기자극을 이용한 감각성 발기는 가능하다. 하지만 자체 발기력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다.
척수손상으로 인한 발기부전은 경구용 발기부전치료제 복용, 진공발기 기구 사용, 음경내 주사법, 음경보형물삽입술 등으로 치료한다.
경구용 약물 복용은 급성기 척수쇼크 단계가 회복된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다. 70% 이상의 발기 성공률을 나타내지만 척수손상 환자의 경우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경제적 부담이 크다.
또 척수신경 및 5번 흉수신경 상부가 손상된 환자가 약물을 복용할 경우 저혈압이 올 수 있어 비뇨기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좋다.
진공발기 기구는 음경에 기구를 넣은 뒤 펌프로 공기를 빼내 기구내 압력을 떨어뜨려 음경으로 가는 혈액량을 증가시켜 발기를 유도한다. 비용이 저렴하고 안전하지만 30분 이상 발기를 유지하기 어렵고 음경과 음낭이 만나는 부위게 고무밴드를 끼우고 있어야 한다.
또 감각이 저하된 척수손상 환자의 경우 피부손상, 조직괴사 등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음경내 약물주사법은 음경해면체에 주사액을 주입해 발기를 유발하는 방법이다. 발기 성공률이 높지만 주사 부위 통증, 주사한 곳이 딱딱해 지는 경절 형성, 음경이 휘어지는 음경만곡, 음경발기지속증 등이 부작용을 나타날 수 있다. 비뇨기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고 음경발기지속증이 발생할 경우 바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적 치료법으로는 음경보형물삽입술이 있다.
또 척수손상으로 인해 사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진동기 등 기구를 항문에 넣은 뒤 전기자극을 보내 사정을 유도한다.
흉수 6번 이상이 손상되면 성행위시 두통, 혈압상승, 홍조, 서맥 등 자율신경과 반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성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
체위는 정상인 배우자가 상위에 있는 게 좋지만 상반신 사용이 가능할 땐 이를 충분히 활용한다. 인테리어, 음악, 조명 등으로 매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도움된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키스 등 스킨십을 시도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해 자신감을 갖는 게 좋다.
김 교수는 “척수손상 환자의 성생활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그룹 교육 등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 욕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상대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겠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