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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저수가 때문에 대학병원이 ‘휘청’? … 고유목적사업비 명목으로 흑자 은폐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4-09 09:13:58
  • 수정 2020-09-14 1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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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련병원들 2013년 당기순이익 3억2317만원 적자, 암병원 난립 … 고유목적사업준비금 등 총 7054억원 축소
저수가 및 급여 확대 등으로 개원가가 고사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인력 및 재정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일부 대학병원마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대형병원들이 고유목적준비금을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해 경영실적을 고의로 축소함으로써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즉 경영난을 빌미로 정부에 수가인상, 의료영리화 등을 요구하기 위해 회계상 적자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대한병원협회 산하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은 최근 240개 수련교육병원을 대상으로 인력 현황, 진료통계, 대차대조표 등을 집계한 ‘2013 병원경영통계’를 공개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인건비는 급격히 상승한 반면 의료수입은 줄어 대다수의 병원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음을 알 수 있다.

수련교육병원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지정을 받아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의료기관으로 일반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시설·장비·의료인력 등을 잘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평가 대상인 240개 병원도 상급종합병원 43곳을 포함해 상위 8%에 포함된다. 이처럼 양적·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병원마저 경영난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암울한 의료계 상황을 대변한다.

240개 병원의 평균 당기순이익은 2009년 1억3508만원 흑자를 기록한 뒤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2012년엔 2억8718만원 적자, 2013년엔 3억2317만원 적자를 냈다. 반면 부채는 2009년 83억2235만원에서 2012년 106억3547만원까지 늘었고, 2013년엔 99억8534만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조직이 향후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성장성지표의 경우 총자본·자기자본·순이익·의료수입·입원수입·외래수입 증가율 등이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순이익 증가율도 2009년 이후 곤두박질쳤다가 2011년과 2012년 소폭 상승한 뒤 2013년부터 다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석훈 병원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총자본과 자기자본증가율이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이 멈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저수가 고수·건강보험 비급여 수입에 대한 가혹한 통제·의료의 공공성 약화로 인한 정부의 혜택 철회, 급성기 환자 감소 등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병원들의 재정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같은 문제를 타개할 의료시장 상황이나 정책적 비전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시민사회의 부정적 시각만 확산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학병원의 경우 인건비가 재정 악화의 주원인이다. 상당수 대학병원들은 인건비 부담이 45~50%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국립대병원 임직원들은 공무원법에 따라야 하고, 사립대병원도 사립대 교직원 규정에 의거해 정년을 58~65세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은 아직 평생 직장이라는 인식이 강해 인력이 적체되고 인건비 비율이 계속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병원 노조 등의 반발로 인력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수익창출을 위한 시도도 ‘의료영리화라는 이유’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노조는 “서울대병원은 공공병원임에도 SK텔레콤과 영리 자회사인 헬스커넥트를 설립하고, 원격의료와 의료관광 등 정부의 의료영리화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며 파업을 단행했다.

극심한 경영난은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대학병원들이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진료의 질보다는 양적 규모에 집착해 무분별하게 병상 수를 늘렸고 신축 건물과 분원을 앞다퉈 건립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대학병원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암병원 건립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암병원 총병상수는 최근 개원한 연세암병원이 510병상, 고려대 구로암병원 300병상,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770병상,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650병상, 국립암센터 550병상, 서울대병원 암병원 202병상 등으로 이미 3000병상을 돌파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이 암병원을 개설할 때 드는 비용은 몇 백억원 단위로, 병상가동률을 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재정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상황이 악화되자 일부 대학병원의 새 병원 건립 사업이 줄줄이 취소 및 중단되고 있다. 경희대의 경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일대 3만3000㎡ 부지에 병원을 설립할 계획이었지만 재원부족을 이유로 2008년 사업을 백지화했다.

연세대의료원도 경기도 용인시내에 800병상 규모의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을 건립하려 했지만 자금난 등을 이유로 결국 취소했다. 인천시와 함께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짓기로 한 1000병상 규모의 국제병원(1000병상) 설립 계획도 비용 3900억원을 마련할 길이 딱히 없어 무기한 연기됐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신관건물의 용도를 심뇌혈관병원에서 의생명연구원으로 변경했다. 이는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단순히 진료 공간을 늘리기보다는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건양대병원은 최근 충남 홍성군 내포 신도시에 대학병원을 설립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부지 매입에 따른 비용 부담이 너무 크고, 환자 유치도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유명 대학병원들이 고의로 경영이익을 축소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대형 종합병원의 약 80%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나 고유목적사업비를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경영이익을 축소해왔다는 설명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시스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대학 홈페이지 등을 통해 43개 상급종합병원의 2012년 재무제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지난 1월 25일 밝혔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법인의 고유목적사업을 위해 건물·토지·의료기기 등 고정자산 취득을 목적으로 적립하는 금액이다. 고유목적사업비는 고유목적사업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법인으로 전출한 금액을 의미한다.

경실련에 따르면 2012년 기준 43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35개(81%)가 고유목적사업준비금 6027억원과 고유목적사업비 1026억원을 모두 회계상 비용으로 책정해 실제보다 경영이익을 약 7054억원 축소했다.

병원별 축소액은 연세대의료원(신촌·강남·원주)이 257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아산병원(서울·강릉·정읍·보령 등)이 1200억원, 가톨릭대 성모병원(서울·여의도·대구) 610억원, 서울대병원(서울·분당) 520억원, 순천향대병원(서울·부천) 310억원, 부산대병원 220억원, 영남대병원이 200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이들 병원은 총11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다고 공시했지만 실제로는 579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는 게 경실련의 분석이다. 감사원도 2010년 국립병원 감사에서 병원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 등을 비용으로 책정해 이익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고유목적사업준비금 등을 비용이 아닌 이익잉여금으로 처리토록 하는 ‘재무제표 세부 작성방법’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지만 지금까지 확정되지 않고 있다.

경실련은 “병원은 경영적자를 이유로 매년 약 3000억원의 건강보험 수가 인상과 영리자회사를 통한 부대사업 확대 등을 요구해왔다”며 “이로 인해 국민의 건강보험료와 의료비 부담이 증가함에도 정부는 병원 경영상태를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수가인상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복지부는 최근 5년간 비용 과다계상을 통한 병원경영 왜곡 실태를 조사해 부당하게 지출된 건강보험 재정을 환수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무분별한 부대사업 허용 정책도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대한병원협회는 “준비금을 적립한 후 5년내 법인병원의 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으면 병원 수입으로 다시 환입되는데, 이런 경우 의료외 수익으로 계상돼 세금혜택을 받았던 기간의 이자까지 가산해 물어내야 한다”며 “경실련의 주장처럼 해당법인이 이같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부러 경영이익 등을 축소하기 위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적립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나 고유목적사업비 목적으로 병원 순익을 ‘창고’에 쌓아뒀던 게 의료계의 관행이었다”며 “특히 유력 대형병원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당국에 로비를 벌여 병원 돈은 최소한으로 쓰고, 국고를 대거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사업준비금이나 사업비를 아끼면서 해마다 적자 타령을 하는 등 엄살을 부려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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