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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국민 70% 한번쯤 자살충동 느껴 … 우울증 ‘마음의 감기’ 아니라 엄연한 ‘질병’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4-09 08:52:12
  • 수정 2020-09-14 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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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만 상담, 진료 안받으면 중증 악화 가능성 2.21배 높아 … 황사철 대기오염도 자살 부추겨
지난달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일 저가항공사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사고의 원인은 부기장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자살심리 전문가들은 “집단살해를 동반하는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자기 목숨만 버리는 사람들의 심리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진단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1858~1917년)은은 자살의 종류를 이기적 자살·애타적 자살·아노미(anomie)적 자살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과 사회의 결합력이 약할 때, 애타적 자살은 반대로 과도한 집단화로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환경의 차이나 도덕적 통제의 결여(缺如)로 인해 발생한다. 저먼윙스 추락사고의 경우 이기적 자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0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한국사회에 이번 여객기 사고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극심한 취업난, 양극화 심화, 실적 및 성적 만능주의를 원인으로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자살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조사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7~8명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과 경제적 어려움 탓에 한 번쯤 자살을 떠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살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75%가 한번 이상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변했다.
5%는 자주, 14.4%는 가끔, 55.6%는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성별로는 남성(68.8%)보다 여성(81.2%), 연령별로는 20대(70.4%)와 50대(71.6%)보다 30대(80.8%), 40대(77.2%)의 자살충동 경험이 많았다.

또 자신이 속한 계층이 낮다고 생각할수록 자살충동을 자주 경험했다. 자신을 상위층이라고 생각한 응답자는 자살충동 경험이 56.3%인 반면 최하층은 83.8%에 달했다. 하지만 자살충동을 느껴 공공기관이나 사설기관에서 상담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자살충동의 이유(복수응답)는 ’삶이 공허하게 느껴져서’가 42.8%로 가장 많았다. 트렌드모니터 관계자는 “그만큼 우리사회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여유없이 팍팍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적 상황의 어려움(36.3%), 가족·친구·동료들과의 불화(21.9%), 스스로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21.1%), 타인과 비교한 상대적 박탈감(20.1%), 외로움(13.9%), 직장·비즈니스 문제(11.6%), 입시·취업 문제(11.5%)가 자살을 떠올리게 하는 주요 이유로 꼽혔다.
전반적으로 연령이 높으면 경제적 상황의 어려움, 낮으면 스스로 쓸모가 없다는 자존감의 저하가 자살 충동의 원인으로 꼽혔다.

이처럼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자살시도의 가장 큰 원인이다. 서울대 의대가 실시한 ‘2013년 자살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살시도의 주된 원인은 우울감 등 정신과적 증상이 37.9%로 가장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편견 등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김영훈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결과 우울증 환자수는 2008년 47만명에서 2012년 59만명으로 25% 가량 늘었지만 정작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은 비율은 절반 이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등 정신과질환은 진료 여부에 따라 예후가 크게 달라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은 우울증 환자는 진료받은 환자보다 중증 질환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2.2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연속 자살률 1위의 주된 원인이 제대로 된 진료를 안받기 때문이라는 신경정신의학계의 진단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다.

이밖에 일상활동에 지장이 있는 사람은 우울증 경험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2.18배, 운동능력이 없는 사람은 1.57배, 와병 경험은 1.47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우울감 승산비(odds ratio)가 0.94배로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 교수는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자들이 진료를 꺼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과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며 “정신질환자들은 보험가입부터 차별받고 실손보험 보상범위에서도 모두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을 앓고 있는데도 정신건강의학 전문가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며 “의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정신치료와 심리치료 등 임상을 표방하며 잘못된 진단을 내릴 경우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자살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았다. 최근 김도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2006~2011년 국내 각 시도별 환경오염지수와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미세먼지와 오존 농도가 높아질수록 자살률도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1주일 동안 대기 중 미세먼지(PM-10) 농도가 37.82㎍/㎥ 증가할 때마다 국내 전체 자살률은 3.2%씩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존 농도가 0.016ppm 증가하면 전체 자살률은 7.8% 올랐다.

연구기간 국내 인구 10만명당 연간 자살률은 29.1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미세먼지나 오존과 같은 대기오염 물질이 중추신경계의 면역체계와 신경전달물질을 교란시키거나 평소 질환을 악화시켜 우울감이나 충동성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오존의 경우 세로토닌 대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자살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도관 교수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라며 “자살률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대기오염과의 연관성도 밝혀진 만큼 자살예방 대책에 이 부분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살은 주변인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즉 친구, 유가족 등은 큰 트라우마(trauma)를 겪는다. 자살 유가족들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 최진실 씨(2008년), 고 최진영 씨(2010년), 고 조성민 씨(2013년)의 연이은 자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살예방협회는 자살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저 관심을 끌려는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즉 자살은 사전 시그널(신호)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유은정 좋은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마다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간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보통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살이나 정신병력을 쉬쉬하는 분위기 때문에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정신과나 정신보건센터나 자살예방기관을 찾지 않는다”며 “자살 예방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자살 고위험군이 도움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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