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기업과 대기업 공채에서 학력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서류심사가 실시되는 등 한국 사회 곳곳에서 학벌 파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서울대를 중심으로 명문 의대의 입지가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의 수장들은 서울대 의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연세대, 고려대, 가톨릭대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진료과의 경우 과거 외과 중심에서 내과 중심으로 트렌드가 점차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빅5를 포함한 수도권내 대학병원의 의료원장 및 병원장 46명을 조사한 결과 진료과는 내과, 출신 학교는 서울대 의대가 가장 많았다.
내과 출신이 16명을 차지한 가운데 세부적으로는 심장내과가 8명으로 가장 많았다. 진료과목이 심장내과인 의료원장 및 병원장은 박성욱 서울아산병원장,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 김영훈 고려대 안암병원장, 김성구 순천향대의료원장, 탁승제 아주대병원장, 유규형 동탄성심병원장, 최석구 서울백병원장 등이다. 빅5 중 4곳의 수장이 심장내과 출신이라는 점은 그만큼 국내에서 심혈관질환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국내 심혈관질환 진료 환자는 2006년 449만2000명에서 2010년 574만6000명으로 연평균 6.3%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원인으로 서구화된 식습관과 인구고령화로 인한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의 증가를 꼽는다.
순환기내과와 심장내과를 혼동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병원 규모나 필요에 따라 순환기내과, 심장내과로 다르게 부르거나 세부진료과로 분리했을 뿐 두 과의 진료내용은 같다. 하지만 같은 질환이라도 병원에 따라 진료하는 곳이 다를 수 있어 미리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예컨대 부정맥, 흉통, 협심증 등 심장질환과 관련된 질환은 심장내과,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 혈액순환과 관련된 질환은 순환기내과에서 보는 곳도 있어 병원을 찾기 전 진료과 명칭을 문의해야 한다.
기타 내과로는 강무일 가톨릭중앙의료원장과 백세현 고려대 구로병원장이 내분비내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감염내과, 김형중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은 호흡기내과, 이순남 이화여대의료원장이 혈액종양내과, 유권 이대목동병원장과 이문성 순천향대 부천병원장은 소화기내과다.
반면 외과 출신 병원장 비율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해명 의정부성모병원장(위장관외과), 권성준 한양대병원장(일반외과), 김홍주 상계백병원장(소아외과), 이삼열 강동성심병원장(이식외과), 전욱 한강성심병원장(화상외과), 지훈상 분당차병원장(외과), 곽영태 강동경희대병원장(흉부외과) 등 7명 뿐이다.
빅5 병원장 중 외과 전문의가 없다는 것은 내과가 강세인 현재 의료계의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외과공화국’으로 불리던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1989년 개원 이래 초대 원장이었던 이문호 핵의학과 교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외과 출신들이 병원장을 맡아왔다. 서울대병원도 내과 출신 원장은 제10대 이영우 원장 이후 20년만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수술 건수가 많거나 수술을 잘하는 의사, 즉 외과 의사가 명의로 인식될 때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국내 질환 상황이나 비수술 최소침습치료 등의 인기에 힘입어 내과 명의들의 수가 늘고 있다”며 “지나친 비약일 수 있겠지만 최근 의료계의 닥친 ‘외과의 위기’가 병원장의 진료과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K 대학병원 관계자는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의사의 경우 남성적이고 직선적인 이미지가 강한 반면 내과 의사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가 특징”이라며 “내과 병원장의 증가는 개인의 리더십이나 추진력보다 조직간 소통·화합이 강조되는 현 의료계의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추측했다.
기타 진료과로는 산부인과가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홍서유 을지병원장·윤태기 강남차병원장·민응기 제일병원장 등 4명, 정형외과가 윤강섭 서울시보라매병원장·송석환 여의도성모병원장·서진수 일산백병원·서유성 순천향대병원 서울병원장 등 4명이었다. 영상의학과는 차상훈 고려대 안산병원장·박충기 한양대의료원장·이열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장 등 3명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임영진 경희대병원장(신경외과),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이비인후과), 한설희 건국대병원장(신경과), 김성덕 중앙대병원장(마취과), 김우경 고려대의료원장(성형외과), 이근 길병원장(응급의학과), 채석래 동국대 일산병원장(진단검사의학과), 김세철 명지병원장(비뇨기과) 등이 있다.
병원장들의 출신 학교는 서울대 의대가 1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연세대가 9명, 고려대 6명, 가톨릭대 5명, 경희대 4명, 한양대 3명, 경북대는 2명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고려대, 한양대 등은 산하 병원 수장을 전부 모교 출신이 맡고 있다. 빅5의 경우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 출신 의료원장 및 병원장으로는 오병희 서울대병원장,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윤강섭 보라매병원장, 박성욱 서울아산병원장,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 김성덕 중앙대병원장, 유권 이대목동병원장, 한설희 건국대병원장, 최석구 서울백병원장, 김홍주 상계백병원장, 서진수 일산백병원, 이열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장, 유규형 동탄성심병원장, 채석래 동국대 일산병원장, 민응기 제일병원장 등이 있다. 백병원의 경우 수도권 지역 병원 3곳의 수장이 모두 서울대 출신인 게 특징이다.
연세대 출신은 정남식 연세의료원장,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 김형중 강남세브란스병원장,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 탁승제 아주대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이혜란 한림대의료원장, 지훈상 분당차병원장, 윤태기 강남차병원장 등이다. 아주대의료원과 차병원의 경우 산하 병원 수장이 전부 연세대 출신이다.
가톨릭대 출신으로는 산하 병원장을 제외하고 이삼열 강동성심병원장이 있다. 고려대도 산하 병원을 제외하면 홍서유 을지병원장, 서유성 순천향대 서울병원장이 이 학교 출신이다.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이미 여러 곳의 의과대학과 대학병원들이 있고 의사들의 실력도 점차 평준화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이 인사발령 시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전통적인 명문인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고려대 등은 산하 병원장으로 거의 모교 졸업자를 임명하고 나머지 병원들은 외부에서 영입하는데 서울대와 연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적인 의료계에서 학벌의 영향력은 지대하고 이는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학회에서도 이어진다”며 “주요 학회에서 서울대 출신의 입김이 센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