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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타임’ 지키는 제세동기, 알아야 생명 살린다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5-02-06 18:43:52
  • 수정 2015-02-11 18: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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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지 발생 후 1분마다 생존율 7~10% 감소 … 기기 사용법 쉽지만 교육 부족해 무용지물

2000년 4월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 롯데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임수혁 선수가 갑자기 쓰러졌다. 급성 심장마비였다. 당시 갑자기 심장이 멎었던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CPR)’였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선수, 심판, 구단 직원, 관중 등 수만명 중 그를 위한 조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임 선수 옆에 모인 동료가 한 일은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허리띠를 풀고서 구급차에 태운 것뿐이었다. 결국 그는 식물인간 상태로 10년을 보내다 2010년 2월 사망했다.

갑작스런 심장마비 또는 심정지로 누군가 쓰러졌을 때 최소 4분내에 심폐소생술이 시행돼야 한다. 이 시간을 넘기면 병원에 가더라도 환자의 목숨을 건지기 어렵다. 통상 심정지가 발생한 후 1분이 지연될 때마다 생존율이 7~10% 감소한다. 최초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살아날 확률이 약 12.2%다. 국내 심정지 사고 발생은 2008년 10만 명당 41.4명에서 지난해 46.3명으로 증가했다. 심정지 사고 발생 후 최초 목격자가 신고하는 데 평균 5분, 구급대가 도착하기까지 평균 7~8분이 걸리는 만큼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국내 심정지 사고의 60% 이상이 집에서 발생하는 만큼 심폐소생술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려면 먼저 환자의 의식을 확인해야 한다. 이후 주위 사람을 지목해 119에 신고가 되도록 지시해야 한다. 이어 기도를 확보하고 환자의 이물질을 제거한 뒤 호흡이 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호흡이 없으면 환자의 코를 막고 입과 입을 밀착해 약 1초 동안 2회의 숨을 불어 넣는다. 그 다음 환자의 양쪽 유두 사이 흉부 정중앙을 30회 세게 압박한 뒤, 다시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이 과정을 119 구급대원이 올 때가지 반복한다. 환자의 호흡이 돌아왔을 경우 기도 폐쇄를 막기 위해 측면으로 눕힌다.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제세동기’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제세동기는 규칙적인 심장박동을 회복시키기 위해 흉벽으로 전기 충격을 심장에 전달하는 장치다. 미국 심장 전문의 클라우드 벡에 의해 1947년 개발됐다.

제세동기를 사용하려면 먼저 심폐소생술에 방해되지 않는 위치에서 전원을 켜야 한다. 환자의 상의를 모두 벗긴 뒤 한 쪽 패드는 오른쪽 빗장뼈(쇄골) 바로 아래에, 나머지는 왼쪽 젖꼭지 옆 겨드랑이에 붙인다. 땀이나 물이 묻어있다면 반드시 닦아 낸다. 작동 버튼을 누르고 ‘분석 중’이란 음성메시지가 나오면 환자에게 손을 뗀다. ‘제세동이 필요합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면 기계가 충전을 시작하는데, 이 때 가슴을 압박해야 한다. 제세동 작동 버튼이 깜빡거리거나 버튼을 누르라는 메시지가 나오면 가슴압박을 멈추고 누른다. 이후 ‘덜컥’하는 전기자극이 끝나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기기가 지시한 대로 재실시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2012년 8월 4일 개정돼 같은 해 11월 15일 시행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7조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에는 자동제세동기 등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응급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명시됐다. 새로 건설되는 주택뿐만 아니라 기존 주택에도 의무적 설치가 규정화됐다. 구체적인 설치 대수·위치·방법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에 1대의 자동제세동기만 설치해도 법률 위반이 아닌 것이다. 또 설치하지 않아도 이를 규제하는 벌칙 규정이 전혀 없다. 벌칙이 없다보니 설치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자동 제세동기 설치 의무 대상인 철도역사와 터미널 등 120곳을 조사한 결과 설치율이 43%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기기 관리도 제대로 되는지 의문이다. 현재 자동제세동기 관리운영체계를 보면 기기 설치기관이 자체운영과 유지·보수 및 변동을 관할 보건소에 보고하면 설치현황을 파악해 이를 관리토록 조치돼 있다. 하지만 담당 부서 공무원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부족한 인력 운영으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제세동기 한 대당 가격은 약 200만원대로 만만찮은 수준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하는 고가의 제세동기를 써보지 못하고 방치하면 크나큰 낭비다. 이 때문에 예산만 낭비하고 제세동기 업자만 돈을 벌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설치 장소를 늘리기에 앞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치율도 낮지만 제세동기에 대한 인식도 매우 희미하다. 일반인들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는 각 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제세동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세동기의 효과를 배가시키려면 설치 확대보다는 홍보 및 교육이 더 중요하다. 일반인들은 막상 제세동기를 사용해보면 어렵게 생각하지 않지만 응급상황에선 ‘과연 내가 사용해도 되나’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

대한심페소생술협회는 각 기관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를 수료한 사람에게는 자격증을 제공해 응급상황시 책임감을 가진 상태에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교육시간에는 제세동기를 이용한 응급대처요령도 알려준다. 반나절만에 심폐소생술, 제세동기 사용법을 모두 교육한다.

박재석 세종병원 심장내과 과장은 “심폐소생술이나 제세동기 사용법 교육을 자주 할수록 응급심장 환자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고 환자 소생률을 높일 수 있다”며 “2년에 한 번 정도는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응급상황시 당황하지 않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교육을 받은 사람은 제세동기 사용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교육을 받은 지 1년 이상 지났다면 기기를 이용해 제대로 조치를 취할지 의문이다.

박 과장은 “자동제세동기의 사용법은 쉬운 편이지만 교육을 받지 않으면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기 힘들 수 있다”며 “사용법을 알지 못하면 무작정 기기를 사용하지 말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119 구조대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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