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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의사·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두고 진흙탕 싸움 … 복지부 왜 방관하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2-01 13:58:51
  • 수정 2020-09-14 13: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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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레이·초음파 사용 불허 가능성 커, 김필건 한의협 회장 단식 … 직능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수도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새해 벽두부터 박근혜정부의 ‘규제기요틴’ 정책이 의료계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기요틴(guillotine)은 죄수의 목을 베던 사형도구(단두대)로, 규제기요틴은 사회 전반에서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의미한다.

이 정책이 의료계에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요건규제 완화, 의사 환자간 원격진료 제한 완화 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의료이익단체 사이에 찬반 여론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사안이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이다. 한의사들은 “정확한 진료를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의료계는 “의사면허 반납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했다.
 
그러던 중 복지부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한의사의 X-레이와 초음파기기 사용을 사실상 불허한다는 뜻을 밝히자 무게중심이 의사들 쪽으로 약간 기운 모양새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21일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들 중 법 개정 없이 행정부 해석과 지침으로 규제를 풀 수 있는 부분에 한해 허용 범위를 논의하겠다”며 “2013년 12월 헌재의 결정에 나온 기준을 토대로 의료기기의 한의사 사용 범위를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헌재와 법원은 각각 엑스레이와 초음파에 대해 한의사 면허 범위 밖이라고 판단했다”며 “이 부분을 고치려면 행정부의 해석이나 지침이 아닌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X-레이나 초음파의 경우 현행대로 한의사의 사용을 불허한다는 의미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2013년 12월 헌재 결정을 가르키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례가 제시돼 있다”며 “판례를 기준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복지부가 의사들의 ‘갑질’에 굴복했다”며 “이번 발표는 규제기요틴의 취지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전형적인 면피성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김필건 한의협 회장은 지난 28일부터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단식에 돌입했다. 김 회장은 “실제적 권한을 행사하는 주무부처가 보이지 않는 관행과 자의적 판단을 근거로 움직인다면 정부의 핵심과제인 규제기요틴은 어떠한 성과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한의사들을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서 넓은 마음으로 살펴주시고 관심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추무진 의협 회장은 20일에 들어간 단식 투쟁을 6일만에 접었다. 단식 농성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자체평가에 따른 것이다.
 
한의사들이 가장 허용되길 원하는 기기는 X-레이다. 한의원 진료 특성상 무릎이나 발목 부위 등의 골절 환자가 많아서다. 예컨대 손목이나 허리가 접질렀다며 찾아온 염좌 환자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다가도 혹시나 ‘골절이 아닐까’ 걱정될 수 있다. 이럴 땐 일반 의원에서 X-레이를 촬영한 뒤 다시 한의원을 방문해야 한다. 한의협은 “한의학적 골절과 의학적 골절은 다르지 않고, 단지 이를 어떻게 해석해서 진단 및 치료하는지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지난 25일 오후 의사협회 회관 앞마당에서 ‘보건의료기요틴 저지 전국의사 대표자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을 비롯해 박상근 병원협회장,황인방 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 김일중 개원의협의회장, 송명제 전공의협의회장, 함현석 의대협회장 등이 전국의사대표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 단체는 “정부가 기업중심의 의료영리화정책과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및 무자격자의 의료행위 허용 정책을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11만 회원을 총동원해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결의대회에 앞서 열린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는 보건의료 기요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 비상대책 특별위원회’ 구성과 운영안이 통과됐다. 비대위는 추무진 회장을 비롯해 16개 시도의사회, 개원의협의회 등 의료계 모든 직역과 지역이 참여할 예정이다. 비대위 활동에 쓰일 예산 4억3000여만원도 마련했다.
 
의협 관계자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국민건강 위해, 국민의료비 증가, 의료의 질 저하 등을 초래할 것”이라며 “의사의 고유 영역을 한의사에게 허용하는 것은 불법을 합법화하려는 것으로 정부는 직능간 갈등을 유발하는 처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육내자극치료(IMS)에 대한 논란도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4년 복지부가 강원도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A 씨에 대해 침술을 시행했다며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법정 소송이 시작됐다. 1심 법원에서는 A 원장의 행위를 침술로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업무정지 처분이 취소라는 뒤집혀진 판결이 나왔다. IMS에 대해 의사들은 ‘현대의학에 근거한 의료행위’, 한의사들은 ‘한의학의 침술에서 비롯된 한방 의료행위’라며 팽팽히 맞섰다.
대한IMS학회는 “IMS는 침술의 발전된 형태로 적당히 설명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는 훨씬 복잡하고 과학적인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다”며 “손상된 근육에 도달하기 위해 바늘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 대법원 판례는 “IMS 빙자한 양의사 침시술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환자에게 침을 시술하고 IMS시술이라 주장한 정영외과 원장 선모 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유죄를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이 의사는 2011년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허리 부위에 여러 개의 침을 꽂은 뒤 적외선을 조사하고 5분 후 뽑는 방법의 시술을 한 혐의로 고발됐다.
1심은 학문 간 융합 추세에 따라 양한방 의사 간 업무범위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환자의 이마와 귀 등 부분에 침을 놓았는데 이 때 사용한 침이 침술 행위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시술법도 침술과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안압측정기와 자동안굴절검사기의 경우 한의사의 사용이 적법하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와 있는 상태다. 2013년 3월 서울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하모 씨 등은 안압측정기와 자동안굴절검사기 등으로 눈질환을 진료한 것에 대해 ‘면허 외 의료행위’라는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가장 낮은 단계의 형사처분이지만 죄가 성립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에 하 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은 “하 씨 등이 사용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은 측정결과가 자동 추출되는 기기로 신체에 아무런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며 “한의사가 결과를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기기 사용에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면허 외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한의대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한방진단학과 한방외관과학 관련 실습 및 강의는 해당 기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며 “전통의학서인 동의보감은 안구 구조와 대표적인 안질환의 원인 및 치료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안압측정기 등의 사용은 옛부터 전해 내려온 망진, 문진, 절진 등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행위는 적법한가’라는 주제를 두고 두 직업군은 수년째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해왔다. 논쟁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1항과 87조 1항은 의료인은 면허외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번 판례에 의존해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기기, 컴퓨터단층촬영(CT), X-레이 등을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려 의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의사 심모 씨는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4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성장판검사를 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학문적 기초가 달라 학습과 임상이 전혀 다른 체계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는 무면허 행위와 같다”며 “영상의학과는 초음파진단기기 등 첨단의료장비로 획득한 영상을 통해 질병을 진단 및 치료하는 서양의학의 전문 진료과목으로 이론적 기초와 의료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이를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반면 검찰은 최근 한방의료의 발전을 위해 한의사도 의료기기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며 잇따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의사와 한의사간 다툼은 어느정도 이해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사든 한의사든 국민건강 보호를 이유로 들지만 결국 CT나 X-레이 등의 검사료가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이 같은 논란이 생기는 것 아니냐”며 “적정 비용으로 정확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면 누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역간 갈등만 부추긴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와 한의사가 피터지게 싸우고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 누가 이기나 보고 지켜보고 있다”며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 갈등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국민건강과 직결된 문제로 여기고 확실한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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