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처럼 컨디션에 따라, 시간 지나며 자연치유되기도 … 성경험 있어도 바이러스 노출 되지 않는 경우도
HPV는 성생활로 감염되지만 100% 그런 것은 아니며, 인체 어느 부위에나 존재하며 유독 생식기·점막 등에 감염되기 쉽다.
직장인 이 모씨(29·여)는 최근 대학시절 동기들과 오랜만에 술자리를 갖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동기가 ‘HPV(인유두종바이러스, Human Papillomavirus)검사 결과로 여자친구의 처녀성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동기는 “HPV는 오직 성관계로만 감염돼 여기에 노출되면 무조건적으로 성경험이 있다는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성경험이 한 번도 없는 수녀에게서 자궁경부암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연구보고까지 내세웠다.
그냥 듣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 씨는 속으로 조금 억울했다. 아직까지 성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HPV에 노출돼 있어서다. 올해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기 위해 병원을 찾아 겸사겸사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가 HP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사는 ‘드물지만 가능하기는 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HPV는 여성의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감염돼도 대부분 별다른 증상이 없고 당장 큰 건강문제를 초래하지는 않지만 향후에 문제가 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이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높다. HPV로 인한 자궁경부암은 유일하게 ‘백신으로 예방될 수 있는 암’으로 꼽히는데다, 헐리우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내와의 성생활로 구강암에 걸리게 됐다’는 발언 등으로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종류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이 중 13~14가지 정도가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고위험형’이다. 자궁경부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고위험군 바이러스 중 HPV 16·18형이 대표적이다. HPV 6·11형 등은 곤지름(콘딜로마), 재발성호흡기유두종증 등과 관련된 저위험군 바이러스로 구분된다. 이밖에 미분류군, 고위험추정군 등이 있다. 드물게 남성에게는 곤지름, 구강암, 직장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현주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대개 성생활로 감염되지만 100% 그런 것은 아니다”며 “HPV는 인체 어느 부위에나 존재하며 유독 생식기, 점막 등에 감염되기 쉽다. 심지어 4살난 여자어린이가 HPV가 검출됐다는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성의 성’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처녀성을 따지고 중시하는 남성이 적잖다. HPV가 성접촉으로 전염되기 쉬운데다가 성경험이 많을수록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는 만큼 일부에서는 이 바이러스 보유 유무로 ‘처녀나 아니느냐’를 따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HPV 유무로 처녀성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 원장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90% 정도는 1~2년 내 자연적으로 치유돼 사라진다”며 “컨디션, 면역력에 따라 다시 생기거나 사라지는 등 일종의 ‘감기’같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성경험이 가진 여성 중 지난번 검사에서 HPV를 보유했다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컨디션이 좋을 때 HPV 재검사를 받았다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라며 “성경험이 있어도 애초에 바이러스를 보유하지 않을 수도 있고, 검출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녀성’ 보유 여부로 해석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HPV검사는 HPV의 DNA를 고밀도로 배열해 둔 유리기판 위에 검체추출물를 반응시켜 HPV 감염여부를 판독하는 방법으로 각 22종, 19종의 HPV를 동시에 검사한다. 한편 단순한 처녀막 파열여부 정도는 병원에서 진찰을 통해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처녀 여부를 감별하는 진단의학검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