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속 3회 이상 자연유산되면 ‘습관성유산’ … 검진 후 문제점 개선해야
연속 3회 이상 자연유산을 겪었다면 유전적 요인, 내분비적 요인, 해부학적 요인, 면역적 요인 등이 있는 지 면밀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임신 10주째를 맞은 주부 이 모씨(27)는 지난 추석연휴에 아찔한 일을 겪었다. 오랜만에 만난 6살 조카가 장난을 치며 윗배를 세게 때린 것이다. 어린아이의 돌발행동에 모든 친척들이 따끔하게 혼냈지만 이 씨는 혹시나 이 일로 유산하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빨리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작년엔 특별한 문제 없이 자연유산을 2번이나 겪은 만큼 같은 불상사가 또 생길까봐 늘 불안하다.
유산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가 되기 전에 임신이 종결되는 상태를 뜻한다. 최종 월경일 기준으로 임신 20주 이전에 태아가 생명을 잃는 것을 말한다. 자연유산은 의학적 시술을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인공유산은 흔히 말하는 내·외과적 처치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는 시기에 임신을 인위적으로 종결짓는 것이다.
자연유산은 △자궁으로부터 출혈이 동반된 ‘절박유산’ △자궁경부가 열리고 양막이 파열돼 양수가 흘러나와 유산이 불가피한 ‘불가피유산’ △자궁경부가 열려 출혈이 발생, 수태물이 자궁에서 떨어졌으나 아직 자궁 속에 존재하거나 자궁경부에 걸쳐있는 ‘불완전유산’ △수태물이 자궁에서 완전히 떨어져 자궁 밖으로 완전히 배출된 ‘완전유산’ △임신됐으나 배아가 보이지 않거나, 자궁경부가 닫힌 상태에서 배아 혹은 태아가 죽은 채 자궁 내에 수일 또는 수주간 머물러 있는 ‘계류유산’ △연속 3회 이상 자연유산된 ‘습관성(반복)유산’ 등 크게 6가지로 나뉜다.
방장훈 호산여성병원장은 “자연유산을 겪는 과정에서 질출혈, 하복부 통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다만 출혈 정도와 통증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며, 유산할 때에만 두드러지는 ‘특징적인 하복부 통증’은 없다”고 말했다. 보통 초음파검사로 태아의 심박동이 관찰되지 않으면 자연유산으로 진단된다. 이 검사는 산모의 상태와 자궁내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방 병원장은 “질출혈·하복부통증 등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데 초음파검사에서 유산을 진단받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자연유산 후 유산된 태아와 태반조직은 자궁 내에 남아 있거나, 열린 자궁 경부로 일부가 배출된다. 자연유산으로 확진됐는데 태아·태반조직이 남아 있다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약물투여나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다. 임신산물이 배출되는 과정에서 감염될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방장훈 병원장은 “다양한 자연유산 중 신경써야 할 게 ‘습관성유산’”이라며 “이런 문제를 겪었다면 유전적 요인, 내분비적 요인, 해부학적 요인, 면역적 요인 등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인이 밝혀진 경우 다음 임신 전 해당 원인을 교정해주는 게 유산을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사 중에는 반드시 피임해야 하며 경구피임약보다 콘돔을 사용하는 게 좋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임신을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다.
초기 자연유산·습관성유산의 원인으로는 △염색체 이상 △호르몬 이상 △자궁 및 자궁경부 이상 △자가면역질환(면역 이상) △감염 △환경적 요소 등이 있다.
가장 흔한 원인으로 ‘염색체 이상’을 꼽을 수 있다. 자연유산의 50~60%가 염색체 이상과 관련돼 나타난다. 이는 습관성 유산의 원인 중 약 5%를 차지한다.
이런 경우 임신 전 부부가 유전학 상담을 받은 뒤 임산부는 융모막검사·양수검사를 거쳐야 한다. 부부의 염색체가 정상이더라도 2회 이상 자연유산된 후 임신했다면 반드시 산전 기형아검사를 받아야 한다.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어도 유산될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배란 이후 황체호르몬 부족으로 나타난다. 습관성유산 원인의 30%에 달한다. 자궁내막검사로 월경주기를 확인하고, 배란 후 황체호르몬 수치 등에 대해 파악해 황체호르몬 부족 여부를 체크한다. 이후 황체기 결함을 교정하기 위한 황체호르몬이나 배란촉진제를 투여한다. 치료 중 임신이 되더라도 8~10주까지는 치료를 지속해야 한다.
자궁 및 자궁경부 이상도 자연유산의 원인이 된다. 선천성 자궁기형, 자궁내막유착, 자궁근종 등으로 태아의 성장 및 혈관공급에 장애가 생기면 유산을 반복하게 된다.
자궁기형이나 자궁내막 유착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는 ‘자궁·난관 X-레이’를, 자궁근종 진단에는 ‘정밀 초음파’를 시행하게 된다. 필요한 경우 ‘자궁내시경’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 검사 결과 자궁근종·자궁내막유착·자궁기형이 발견되면 자궁경·복강경수술 또는 개복수술로 교정한다. 자궁경관부 무력증이라면 임신 14~20주차에 자궁입구를 묶는 수술을 시행한다.
부부의 백혈구 항원이 비슷하면 임신시 태아 거부반응을 차단하는 항체를 생산하지 못해 유산될 수 있다. 산모가 루푸스·류마티스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을 가진 경우에는 자가면역 항체가 태아를 공격해 유산되기도 한다. 면역이상은 습관성유산을 일으키는 원인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경우 자가면역 항체검사와 백혈구 항원검사를 실시한다. 남편과 백혈구 항원이 비슷해 자꾸 유산되는 경우라면 특수처리한 남편의 백혈구를 수혈하는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자가면역 항체가 존재하면 소아용 아스피린 또는 항응고제를 투여해 치료한다. 이들 약제는 난소반응성, 난소와 자궁으로 가는 혈류량, 착상과 임신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질염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여성의 감기’로 가볍게 생각하지만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받아야 한다. 세균에 의해 질에 염증이 생기면 양막 또는 태반막에 염증이 파급돼 유산될 확률이 생긴다. 이밖에 음주, 흡연, 약물복용도 유산 확률을 2배 이상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습관성유산의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약 15%에 달한다. 이런 경우 보통 부부관계로 인한 ‘핑퐁감염’으로 서로 같은 세균에 감염돼 있을 확률이 높아 부부가 함께 치료한 뒤 임신을 시도한다.
방장훈 병원장은 “습관성유산 환자가 월경이 1주 이상 늦어지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 필요한 검사를 시행한 뒤 건강한 태아를 만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