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는 병원’제도는 환자의 부담을 대폭 줄였지만 비급여 과잉진료, 낙상 등 안전사고 우려, 간병인 고용보장 문제 등 고려할 사안이 많다.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에게 간병인은 꼭 필요하지만 하루에 6만~7만원, 한달에 20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이 모두 나서 환자 병수발에 나서지만 직장생활 또는 학업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병수발을 들던 가족이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형외과 병·의원을 중심으로 ‘보호자·간병인 없는 병원’이 인기다. 이 제도는 병원 소속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가 간병인 대신 환자를 돌보고, 여기에 필요한 임금과 운영비를 국가나 병원이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와 병원이 간병비 전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환자 및 보호자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처음에는 정부 시범사업을 통해 진료현장에 적용되다가 최근엔 개원가에서 보호자 없는 병원을 표방하며 환자유치에 활용하는 분위기다. 간병비 부담이 덜해 환자들은 대체로 만족하지만 1대1 간병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보니 낙상 등 안전문제가 발생하거나 정형외과 특성상 비급여진료가 남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100억원을 투입, 전국 13개 병원을 대상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병원은 목동힘찬병원, 서울의료원, 삼육서울병원(이상 서울), 인하대병원(인천), 부천세종병원, 동국대 일산병원, 윌스기념병원(이상 경기도), 청주의료원(충북), 목포중앙병원(전남), 순천한국병원(전남), 안동의료원(경북), 온종합병원(부산), 좋은삼선병원(부산) 등 13개 의료기관이다.
사업 초기 성적표는 기대 이하인 것으로 나왔다. 병원별 차이는 있었지만 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간호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대체로 만족하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간호인력 충원 문제도 당장 급한 불은 끈 모양새다.
삼육서울병원은 시범사업 초기 간호사 채용률 65.0%, 간호조무사 채용률 53.90%로 저조한 성적을 냈지만 현재는 당초 계획했던 154병상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초기에는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지원자가 몰려 하루종일 면접을 본 적도 있다”며 “전문간호사가 항상 동행하면서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환자만족도가 높고 진료 및 치료과정이 원활히 진행된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윌스기념병원 관계자는 “인력 채용 및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제도 시행 뒤 일부 직원이 퇴사하는 등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지방에서 온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외래환자가 대폭 증가하는 효과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일부 병원은 자체 인건비로 병상 담당 간호사에게 수당을 지급하거나, 사업 종료 후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시범사업을 운영 중인 한 S병원 관계자는 “사업기간 동안 병상 담당 간호사에 한해 총 3차례 수당을 지급했다”며 “계약기간이 종료된 간호인력은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법적으로 규정한 게 아니어서 간호사들은 계약만료 때까지 숨 죽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하이병원, 제일정형외과병원, 바로병원 등이 자체적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해 환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제일정형외과는 지난해부터 특진비·상급병실료·간병비가 없는 ‘3無병원’을 운영 중이다. 수술 뒤 간병인이나 보호자의 도움 없이도 병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인력을 배치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구축해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한다.
바로병원은 2012년부터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환자가 무료로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간병비 없는 병실’을 운영하고 있다. 인공관절수술은 수술 뒤 거동 자체가 불편하므로 간병인을 쓰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간병비를 100만~200만원 줄일 수 있다.
하이병원은 인천돌봄간병사업단, 천사메디칼간병협회 등 전문단체와의 상호교류 및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전문 간병인력을 무상으로 제공키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호자 없는 병원’ 운영에 소요된 재정 일부를 비급여 과잉진료, 값싼 치료재료 사용 등으로 메꾸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중소병원 관계자는 “병원 간호인력을 활용하더라도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거나 간병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 지원이나 공동 간병인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이상 병원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형외과 특성상 비급여진료를 남발하거나 값싼 수술치료·재료를 사용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나 건강정보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은 이같은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환자는 자신의 진료비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중인 한 병원 관계자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재료나 약품을 사용하거나 과잉진료를 하다 적발되면 병원에 지급되는 급여가 전액 삭감돼 손실이 매우 크다”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행위를 저지를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행으로 인한 간병인 고용불안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급성기병원(치료가 시급한 환자를 돌보는 일반병원)에 2만5000여명, 요양병원에 2만여명의 간병인이 활동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2017년 전체 의료기관의 70%가 최소 1개 병동 이상에서 포괄간호서비스(보호자·간병인 없는 병원)를 시행할 경우 최소 6000여명이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현재 활동 중인 간병인의 대다수는 중·장년층 여성들로 새로운 일을 찾는 게 만만치 않다. 간호조무사로의 전환도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시험을 통과해야 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간병 부문 제도 개선은 3~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되므로 간병인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전 문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하다 낙상사고나 욕창이 발생하면 병원이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정작 보호자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일반 병동으로, 경증 환자는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병원이 전문 간병인력을 제공한다지만 1대1 간병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낙상 등 사고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단지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신의 가족을 입원시키보다는 전문 간병인이 어떻게 배정되는지, 낙상 등 안전사고 위험은 없는지, 적정진료를 하고 있는지 등을 정확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