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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이건희 회장 받은 저체온요법, 체온 내릴수록 뇌손상후유증 감소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4-05-15 16:01:22
  • 수정 2014-05-21 16: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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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부체온 낮추면 독성물질 줄어 뇌부종, 뇌염증 감소 … ‘진정치료’ 길어지며 건강 악화 우려 증폭

일시적 심장마비 후 생존한 환자의 뇌손상을 최소화하는데 저체온치료법이 유용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으나, 순수 뇌졸중 환자에 대한 적용은 유효성 검증이 아직 덜돼 일반화에는 수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저체온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 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1년 어버이날 경기 중 쓰러진 프로축구 선수 신영록 씨가 46일 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저체온치료 덕분이다.

저체온치료는 심장마비 등으로 뇌가 3~5분간 산소공급을 받지 못할 경우 치명적인 뇌손상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체온을 낮추면 뇌의 에너지 대사뿐만 아니라 세포수준에서의 2차 신호전달체계의 활성도가 떨어져 뇌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원리는 심부(深部)온도를 낮추면 뇌대사 및 뇌속 혈류요구량이 감소하고, 심장정지 상태에서 생긴 독성물질로 인한 뇌내 염증·뇌부종·뇌손상 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체온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심기능 회복 후 수반되는 인지기능 저하나 혼수상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방법은 환자를 냉각담요 위에 누이고 환자 겨드랑이에 얼음 주머니를 대고 혈액 속에 찬 식염수를 투입한다. 이 상태에서 환자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체온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알코올솜으로 닦아주거나, 찬 욕조에 담가두거나, 피 자체를 차갑게 식혀 외부순환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 정확한 체온조절 및 유도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혈압저하, 면역력감소에 따른 감염 위험성 증가(특히 호흡기), 출혈성 경향, 내분비계 기능정지에 따른 회복후 신체이상 등이 부작용 또는 합병증으로 초래될 위험성도 있다. 자칫 체온 미세조절에 실패하면 환자가 저체온증에 빠져 심장이 다시 멎을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런 위험을 회피하려면 체온조절장치를 통해 체온을 정치하게 유지해야 한다. 최초 24~48시간 동안 체온을 32∼34도로 낮추고 이후 48시간 안에 서서히 정상체온인 36.5도로 올려주는 과정을 컴퓨터로 정확하게 제어해야 한다.

체온조절장치를 이용한 저체온치료는 급성 심정지 환자 외에도 허혈성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뇌출혈 환자의 뇌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다. 미국 뉴욕의 경우 저체온요법을 시행하지 않는 병원으로는 심장정지 환자를 후송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저체온치료를 위해서는 응급의학과, 심장내과, 신경과, 흉부외과, 중환자의학과 등의 유기적인 협진이 필수적이다. 저체온과 연관된 생리적·병리적 변화, 부작용을 숙지하고 이를 능숙하게 시행할 수 있는 의료진의 수준 높은 중환자치료기술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심장정지 환자의 뇌손상을 위한 용도로만 대중화돼가는 추세이며, 순전히 뇌졸중만 입은 환자에게는 중증일 경우에 실험적인 단계로 시도할 뿐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배희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저체온법을 순수 뇌졸중 환자에게 활용하면 중증 뇌졸중 환자의 혈관 재개통률이 2주후에 70%, 1년후에 80∼90%에 달하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며 “아직은 실험적 단계이며, 임상적 검증을 통과한다면 수 년후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서는 박규남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팀이 1997년 국내 최초로 저체온요법을 시행한 바 있다. 박 교수팀이 2009년 3월부터 2010년 9월까지 19개월 동안 병원 외 심정지로 내원한 16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후 자발순환이 돌아온 혼수환자에게 저체온요법을 포함한 적극적인 ‘심정지 후 집중치료’를 실시한 결과 38명(23.2%)이 생존 퇴원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8년 우리 나라에서 병원 외 심정지 환자는 2만명 가량 발생하나, 대부분 숨지고 이 중 약 500명(2.5%)만이 생존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교수팀의 치료 결과는 우리나라 전체 생존퇴원율 2.5%보다 약 9배 높고, 서울지역의 생존퇴원율 4.9%보다는 4.7배 높은 것이다. 미국 전체 생존퇴원율 4.4%보다는 5.3배 높다.
박규남 교수는 “미국 전체의 심정지 환자생존율이 4.4%인데 비해 심폐소생술 교육, 응급의료체계 질 관리가 잘 돼 있고 병원에서 저체온요법을 시(市)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시애틀은 심정지 환자생존율이 16.3%로 높다”고 말했다.

최진호 대전 을지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현재 저체온치료는 뇌손상의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시행돼야 하는 필수적인 치료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다만 체온을 낮추게 되면 심장기능의 저하 및 혈압하강과 같은 부작용이 흔히 동반되므로 이러한 부작용을 견뎌낼 수 있는 환자에게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준호 가톨릭대 인천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과장은 “저체온치료를 시행하면 환자의 심장기능은 물론 뇌기능을 보존해서 심폐운동이 정지된 사람도 정상 체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대다수 응급센터에서 저체온요법을 권장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저체온치료법은 의료보험 급여를 감안해도 1회 치료당 본인부담금이 대략 400만원선이다. 혈액 속에 찬 식염수를 투입하는데 필요한 미세관의 가격이 250만원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환자의 체온을 떨어뜨리고 일정하게 유지할 체온조절장치를 갖추고 관련 진료과 전문의의 협진이 가능한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약 39개소)이라면 저체온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수준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심정지 후 3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80% 이상이 생명을 구하지만 10분이 지나면 이 비율이 10%에도 못미친다.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심장이 수축하지 못하고 부르르 떠는 ‘심실세동’ 상태에 빠지면서 맥박이 고르게 뛰지 못한다. 따라서 이때 제세동기로 강한 전류를 심장에 흐르게 하거나, 가슴을 규칙적으로 압박해주는 심폐소생술이 시행돼야 한다. 병원에 이송된 후에는 저체온요법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환자의 평균 50~60%는 ‘심정지후증후군’을 거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세간의 관심은 이건희 회장이 회복 후 어느 정도의 인지기능을 유지하느냐다. 또 통상 심정지 후 4분 이내에 심장순환이 회복되지 않으면 뇌손상이 진행되고, 7분이 넘어가면 뇌손상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세포는 20초만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도 기능을 상실하고, 4분 후부터는 죽기 시작한다.
심근경색 후 회복하더라도 심정지 기간이 4분을 넘기면 예전처럼 고차원적인 사고기능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발표와 달리 이 회장의 심정지 기간은 ‘5분 이내’가 아니라 이를 초과한 ‘8분 정도’인 것으로 추정 보도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10일밤 오후 10시50분께 심정지 상태에 일시적으로 빠진 후 저체온요법을 최장 48시간 시행, 완료한 13일 이후에도 진정수면제 투여를 통한 진정치료가 계속되고 있음에 위중한 뇌손상이 생긴 게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심장박동이 돌와왔는데도 2주 안에 깨어나지 못하면 통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수면제를 끊고 48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뇌 자기공명영상(MRI)를 찍어 뇌손상 정도가 판가름나면 예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 의대 교수는 “통상적인 심뇌혈관질환 사례에 비해 진정치료 기간이 너무 긴 것은 사실”이라며 “진정치료 기간이라도 자발적 호흡이 가능하다면 생명유지나 뇌기능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인공심폐기(에크모, ECMO·체외심폐순환장치) 에 의지하고 있다면 의외로 여파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측은 19일 현재 이 회장은 뇌파·심장기능·혈압 등 모든 면에서 안정적이며, 인공심폐기를 떼고 자발호흡하고 있으며, 진정치료 지속 여부는 아직 밝힐 상황이 아니라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증세가 호전대는대로 이 회장을 중환자실에서 일반환자실로 옮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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