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간·강도 연관, 생산직이 사무직보다 뇌출혈 위험 33% 커 … 교대근무 연관성 없어
김범준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신경과 교수
2012년 국내 근로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회원국 평균치보다 420시간 많은 수치다. 최근에는 ‘주말에도 일하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장시간 근로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그러나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 속에서 실제 노동자들은 여전히 근로조건 개선을 체감하기 어렵다. 주위에서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는 직장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가운데 김범준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신경과 교수는 긴 근무시간이 뇌출혈(출혈성 뇌출혈) 발생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30일 발표했다.
김 교수팀이 출혈성 뇌졸중 환자 940명과 정상인 1880명의 직업·근무시간·근무강도·교대근무 여부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뇌출혈은 하루 평균 노동시간 및 노동강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3시간 이상인 근로자는 하루 4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근로자보다 뇌출혈 발생위험이 94% 높았다. 국내 평균 근로시간인 9~12시간을 일하는 근로자의 경우 뇌출혈 위험이 38% 증가했다.
근무강도도 뇌출혈 발생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육체적으로 격한 근무를 1주일에 8시간 이상 지속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출혈 발생위험이 77% 높았다. 이런 경우 격한 근무를 1시간만 줄여도 위험도가 30%로 떨어졌다. 또 사무직(화이트칼라) 종사자보다 신체 움직임이 많은 생산직(블루칼라) 종사자는 뇌출혈 위험이 3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야 교대근무와 뇌출혈은 특별한 관련이 없었다.
김 교수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과로가 사망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며 “이번 연구는 노동 조건이 출혈성 뇌졸중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보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이번 연구에서 노동자의 근무조건이 뇌출혈 위험을 직접적으로 어떻게 높이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아마도 노동 강도가 증가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혈압이 상승하는 등 생물학적 요인의 일부가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격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충분히 쉬지 못할 경우 건강이 악화되기 쉽다”며 “고혈압 등 문제가 생기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도 이번 연구결과와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긴 노동시간이 오히려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대두되면서 국가 차원에서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근로개정법에 명시된 법정근로시간은 주 5일, 40시간이다. 최근에는 초과근무를 포함한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도 발의됐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업무보고를 통해 장기간 근로를 개선할 목적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 ‘근로시간 특례업종 26개에서 10개로 조정’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건강을 위해 퇴근 후 적당한 운동과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평소 혈압이 높은 사람은 과로하지 않는 게 뇌출혈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할 경우 혈압관리와 함께 금주와 금연 등을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뇌졸중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Stroke)’ 최근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