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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한국은 지금 ‘꽃중년’ 열풍, 그들은 왜 젊음에 열광하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3-11 11:23:22
  • 수정 2014-03-14 14: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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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족·루비족, 외모·옷에 과감히 투자 … 외모지상주의, 중년의 불안감, 강한 자기애적 성향 원인

미국 할리우드의 대표적 꽃중년 배우인 휴 잭맨

최근 연예계 핫키워드는 ‘꽃중년’이다. 조재현·조성하·김성령 등 중년 배우들은 신세대 스타들 못지 않은 외모와 패션감각을 바탕으로 드라마나 CF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휴 잭맨, 주드 로, 키아누 리브스 등이 대표적인 꽃중년 배우로 꼽힌다. 꽃중년 열풍은 연예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보다 젊어지길 원하는 40~50대들은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미 안티에이징·패션업계에서 중년층은 가장 영향력이 큰 파워 구매층으로 자리잡았다. 중견 유통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모 씨(43)는 출근 전 항상 BB크림을 바르고 퇴근 후에는 헬스클럽에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한다. 그의 옷장은 스타일별로 분류해 놓은 정장과 슬림핏의 청바지들로 가득하다.
그는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에서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기관리는 필수”라며 “동료들 중에는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위기 위해 소녀시대나 빅뱅 노래를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중년층의 열망은 체형도 변화시켰다. 최근 조사결과 40대 남성의 평균키는 8년새 169.9㎝로 1.3㎝ 커졌으며 몸무게는 71㎏ 에서 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50~60대의 경우 허리 윗부분이 날씬해지고 비만율이 낮아졌으며 키도 커졌다. 40대 여성은 8년전보다 평균 키가 2.4㎝, 다리길이는 1cm 커졌으며 체형도 눈에 띄게 날씬해졌다.

이 같은 현상은 노무족(NoMU), 루비족(RUBY) 등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No More Uncle’이라는 의미의 노무족(族)은 아저씨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40·50대 중년층을 지칭한다. 이들은 나이보다 더 젊어보이기 위해 틈틈이 피부관리를 받고, 운동을 거르지 않으며, 젊은층처럼 옷을 ‘슬림핏’으로 입는다.

루비족은 신선함(Refresh), 특별함(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 젊음(Young)의 단어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40~50대 중년여성을 의미힌다. 이들은 가족에 대한 희생을 강요당했던 전통적인 여성의 개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할애한다.

이처럼 젊음을 향한 중년층의 열망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꽃중년 열풍의 주원인으로 중년의 위기에서 오는 불안감을 꼽는다. 중년기는 청년기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지금까지의 삶을 평가하는 시기다. 즉 ‘지금까지의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가?’, ‘앞으로도 이런 삶을 지속할 것인가’ 등의 질문에 진솔하게 대답해야 한다. 이들은 또 자녀들이 모두 성장해 부모 곁을 떠나는 ‘빈둥지(empty nest)신드롬’, 직장내 자신의 능력 한계 및 후배들의 추월 등으로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강수 차병원 차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40~50대는 해고에 대한 불안감, 승진의 한계, 자녀의 결혼, 노화에 대한 걱정 등 많은 사회적·심리적 변화를 겪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며 “이들의 젊음을 향한 열망은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젊음을 원하는 중년층의 심리에는 강한 자기애적 성향도 자리잡고 있다. 이는 젊은 시절 외모가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들이 가졌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은 ‘노화’라는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손상될 수 밖에 없다.
이시은 삼육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피할 수 없는 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은 건강하게 나이들기 위한 방법”이라며 “그러나 자기애적 경향이 짙은 사람은 더이상 인정받을 수 없고 공허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노화를 필사적으로 회피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중년층은 지나간 청춘을 자꾸 그리워하고,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젊은층의 소비행태를 좇게 된다. 네덜란드 심리학자인 다우베 드라이스마에 따르면 인간은 ‘망원경 효과’로 인해 나이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 망원경 효과는 망원경으로 물체를 볼 때 실제보다 훨씬 가깝게 보이듯이, 과거의 사건이 더 나중에 일어났던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10년전 사건이 5년, 3년 전에 발생했던 것처럼 인식되는 ‘시간축약’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 신경학자인 피터 맹건(Peter Mangan)은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에 실제 시간은 상대적으로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실험 대상자를 9~24세, 45~50세, 60~70세군으로 나눈 후 3분을 마음속으로 헤아리게 한 결과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오차범위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9~24세군은 3분을 3초 이내에 알아맞힌 반면 45~50세군은 평균 3분16초, 60~70세군은 평균 3분40초라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맹건은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 중뇌에 위치한 인체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외모지상주의도 꽃중년 열풍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외모지상주의, 즉 ‘루키즘(lookism)’은 외모가 개인의 우열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공 여부까지 좌우한다는 믿음으로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나 사회 풍조다. 2000년 8월 미국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가 인종·성별·이념·종교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차별요소로 외모를 지목하면서 이 단어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미국 심리학자인 리처드 세인트 존(Richard St. John)은 “평범한 외모가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팀이 10년 동안 CEO·배우·작가·운동선수 등을 추적 조사한 결과 평범한 외모의 사람들이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보다 모든 분야에서 더 높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보통 사람은 상대방의 외모가 매력적일 때보다 평균 정도일 때 경계심을 낮추고 마음을 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젊게 살기 위한 노력은 심리적 안정감을 도모하고 자아존중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된다. 자아존중감은 자신을 유능하고 성공적이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창조성·생산성·대인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조화로운 인격형성과 성공적인 환경적응이 가능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자아존중감이 낮으면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상태를 보인다. 이강수 교수는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환경적응력이 빠르고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하며 우울증, 신경증적 행동, 궤양, 불면증 등 증상이 적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젊음과 외적인 아름다움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신체에 무리가 가거나 불필요한 지출이 증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꽃중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나 식스팩이 아니라 삶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과 내면의 품격에서 나온다”며 “자신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면서 지금의 나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시은 과장은 “나이보다 젊고 아름다워보인다는 칭찬은 노화와 공허함에 직면하는 시기를 지연시킬 수는 있다”며 “그러나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노년의 기쁨 중 많은 부분은 젊은 사람, 자식, 후배, 제자 등의 성공으로 대리적 즐거움을 갖는 것”이라며 “젊음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자신의 노화를 너무 늦게 깨닫게 되고, 이 같은 즐거움을 놓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조언했다.

우울·불안·절망·분노의 탈출구로 외모에 치중하지 않는지 점검하고 ‘나를 살리는 힘은 내안에 있다’, ‘나 자신이 살아야 가족도 산다’는 의지로 중년 또는 노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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