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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논란 … 지겨운 영역싸움 언제 끝나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1-06 00:44:54
  • 수정 2014-01-09 13: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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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재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 인정, 법규정 없어 논란 지속 … 일부 시민 “밥그릇 싸움 지겨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국내 최초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와 의료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사안을 두고 오랜 기간 대립해 온 의사와 한의사간 감정의 골도 더욱 깊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하모 씨 등은 안압측정기와 자동안굴절검사기 등으로 눈질환을 진료한 것에 대해 ‘면허 외 의료행위’라는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가장 낮은 단계의 형사처분이지만 죄가 성립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에 하 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은 “하 씨 등이 사용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은 측정결과가 자동 추출되는 기기로 신체에 아무런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며 “한의사가 결과를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기기 사용에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면허 외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한의대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한방진단학과 한방외관과학 관련 실습 및 강의는 해당 기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며 “전통의학서인 동의보감은 안구 구조와 대표적인 안질환의 원인 및 치료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안압측정기 등의 사용은 옛부터 전해 내려온 망진, 문진, 절진 등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논란에 경종을 울린 의미있는 헌법 결정”이라며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안과의사회 등 의사단체는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한의사의 무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안과의사회 관계자는 “안압측정기로 측정된 안압만으로는 질환 정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시신경이나 신경섬유층 등에 대한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결과를 판독하는 데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의협도 지난달 31일 성명서를 통해 헌재 결정은 기본적으로 법이 지켜야 하는 원칙, 가치, 최소한의 상식 등을 저버린 편협하고 왜곡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국민건강권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 사건 심리과정에서 전문가단체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은 절차적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의협 관계자는 “한번의 실수도 환자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는 의대를 포함해 수년간의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적인 의학적 술기를 배운다”며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은 의사교육과정과 의료제도 전반을 완전히 부정하고, 현대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한의사에게 의학전 진단을 흉내내라고 암묵적으로 용인해 준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행위는 적법한가’라는 주제를 두고 두 직업군은 수년째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 논쟁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1항과 87조 1항은 의료인은 면허외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번 판례에 의존해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기기, 컴퓨터단층촬영(CT), X-레이 등을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려 의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의사 심모 씨는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4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성장판검사를 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학문적 기초가 달라 학습과 임상이 전혀 다른 체계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는 무면허 행위와 같다”며 “영상의학과는 초음파진단기기 등 첨단의료장비로 획득한 영상을 통해 질병을 진단 및 치료하는 서양의학의 전문 진료과목으로 이론적 기초와 의료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이를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2006년에도 초음파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면 검찰은 최근 한방의료의 발전을 위해 한의사도 의료기기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며 잇따라 무혐의 처분을 내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게다가 IMS(근육내 자극치료)의 양방 보험수가 적용에 대해 1심과 2심은 한방침술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데 비해 2011년 5월 13일 대법원은 한방의료행위인 침술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판결해 한의사 편을 들어줬다.

지난해부터는 정치권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3월 20일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천연물신약 처방을 허용하는 ‘한의약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한방과 현대의학에 대한 획일적인 관리체계로 고유한 특성을 발휘하거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행 법체계가 현대의학 위주로 구성돼 있는 만큼 한의학의 특수성을 고려한 독립적인 법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린 대한한의사협회 창립 115주년 기념식에서 “20명에 가까운 한의사가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해 고소·고발 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한의사에게 X-레이나 골밀도 검사기 등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권을 주지 않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을 만들어 보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는 추미애, 안철수 의원도 참여해 공감을 표시했다. 

한의약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아직까지 희박해보인다. 의협 등 의사단체가 X-레이 등 진단용 의료기기는 한방이론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부정적인 시각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의협이 회원 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3.9%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오진 위험이 높아 국민 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응답이 76.2%로 가장 많았다.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의사와 한의사간 다툼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해당 논란에 대해 두 직업군의 볼썽사나운 ‘밥그릇 싸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시 오류동에 거주 중인 회사원 강모 씨(35)는 “의사든 한의사든 국민건강 보호를 이유로 들지만 결국 CT나 X-레이 등의 검사료가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이 같은 논란이 생기는 것 아니냐”며 “적정 비용으로 정확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면 누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는 의료기관의 경영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양보가 쉽지 않다”며 “국민에게 제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지기 전에 정부가 나서 두 직업군간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 등 관계 부처는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진단용 의료기기의 경우 종류가 매우 다양해 사용 주체를 일일이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만을 판단해 의료인에게 사용 허가를 내주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타당한 지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법원 판례를 참고해 올바른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두 직군간 갈등을 줄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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