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CF출연에 사회참여 기고까지 … ‘끼’ 발산하며 ‘주목받고 싶은’ 신세대 정신과 의사
상큼한 말씨, 빼어난 외모, 온유한 매너로 여성 폭식증 환자들의 마음건강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는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
여자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이어트 심리 연구에 전념하면서 ‘식욕억제제’ 없는 비만치료를 확산시키는 전도사, 맑고 매끈한 외모와 톡톡 튀는 말투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싶은 신세대 ‘라이프스타일리스트’가 바로 서울 서초동에 좋은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유은정 원장(42)이다.
유 원장은 지난 9월 삼성카메라 CF에 출연해 호평받았다. 마음건강을 보살피는 정신과 의사로서 사진을 찍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카메라가 소통의 장을 열어줄 수 있다는 ‘Connected Window Project’ 콘셉트가 마음에 와닿아서 출연을 결심했다는 그는 당당하면서도 온유한 이미지가 호응을 얻어 LG패션, 더후화장품 광고에도 출연하게 됐다. 유 원장은 “광고 촬영을 처음 해보는 데도 재미가 나서 별 부담을 못 느꼈다”면서 “주목을 받는 게 제 자존감 확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저를 만나러 온 환자 분에게도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어떤 환자들은 유 원장이 패션화보를 찍을 때 입었던 LG패션 Mogg 자켓과 바지를 사 입고 진료실에 나타나기도 했다.
유 원장은 문턱없는 블로그상담(
www.lifestylist.co.kr)을 통해 여성들이 다이어트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마음건강 주치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현재 대한비만치료학회 학술이사로 ‘식욕억제제 없는 비만치료’를 전파하기 위해 의사들과 비만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한자살예방협회 대중문화예술인 담당으로 대중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과 준비생’을 위한 심리상담에도 나서고 있다.
그는 비만·스트레스 전문병원인 ‘유은정의 좋은클리닉’ 원장(
www.goodimageclinic.com)으로 비만치료를 하면서 부설상담기관인 굿이미지상담원을 운영, 전문 심리상담가들과 함께 폭식증 해결과 자존감 고양을 위한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나는 초콜릿과 이별중이다’ 등 3권의 다이어트 심리서 저술을 통해 병원까지 선뜻 방문 못하는 폭식증 환자에게 자가치유법을 선물하기도 했다.
유은정 원장은 개인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전체의 힐링에 정신과 의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마음 곳곳이 아프다.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그 결과로 ‘모태솔로’, 독거노인, 황혼이혼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더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욕구’에 함몰돼 도저히 휴식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는 ‘일중독’, 남과 비교하고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체면치레’와 ‘수치심 문화’에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 원장으로부터 한국인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하고 일상의 즐거움은 무엇인지 들어본다.
- 젊은 여성 정신과 전문의로서 진료할 때 주안점을 두는 포인트는. 진료 패턴에서 다른 정신과 의사와 차별화되는 점은.
“푸릇푸릇한 여자 의사라는 점을 장점으로 삼고 싶다. 상담하러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 여성이고 주로 다이어트문제, 폭식,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여자로서 여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편이다. 내 진료 스타일은 늘 목적지향적이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가장 힘든 시기에 도움을 청하러 왔기에 ‘저를 만나서 꼭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뭔가요. 그 부분을 집중해서 함께 해결하고 싶습니다’라고 묻는다. 서로의 동맹을 강하게 확인하고, 신뢰를 쌓으며, 치료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말이 빠른 게 정신과 의사로서 핸디캡이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기 때문에 급한 저의 성격이 전문의 초기에는 걸림돌이 됐다. 그 대책으로 상담 초기에는 속으로 숫자를 세기도 했지만, 요즘은 바쁜 현대인들이 빠른 솔루션을 원하니 급한 성격조차 장점으로 여기려 한다.”
-비만 상담 전문클리닉으로 특화했는데 하루에 몇명의 환자를 보나요.
“제가 2001년에 비만클리닉을 처음 열 때 서울에는 비만클리닉이 하나도 없었다. 어찌보면 개인병원 최초로 비만치료를 시작한 셈이다. 입소문이 나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왔고 지점을 여러개 내기도 했다. 진료는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보는데 늘 환자들이 꽉 차 있는 편이다. 하루 20명 이내로 충분한 심리상담과 비만시술을 병행하고 있다.”
-비만·스트레스 환자도 연령층과 고민거리가 다양하죠.
“엄마 손에 끌려온 소아비만 어린이, 학업스트레스로 엄마와 싸우는 중고등학생, 외모와 체중에 민감한 대학생, 지친 일상에 허덕이다가 주말만 되면 폭식하는 사회초년생, 아이를 출산한 후 산후비만으로 고통받는 엄마들, 예전과 다른 자신의 몸매에 거울을 멀리하게 되는 40대 여성들, 사춘기 자녀와 불꽃 튀는 전행을 치루는 갱년기여성들, 빈둥지증후군을 앓는 60대 어머님들, 무릎이 아파서 체중감량을 하셔야 하는 70대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찾아온다.”
-식욕억제제를 처방하지 않는 비만치료를 고집하고 있죠.
“비만치료 초기에는 살이 빠졌다가 일정기간이 지나 다시 살이 찌는 환자를 많이 봐왔다. 식욕억제제는 중독성이 있고 약을 끊으면 요요현상이 생겨 다시 체중이 불게 되고 이 때문에 약을 끊을 수 없는 맹점이 있다. 이를 계기로 식욕억제제를 처방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게 됐다. 대한비만치료학회 학술이사를 맡으면서 식욕억제제 없는 비만치료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리상담과 체형교정시술을 병행하는 치료로 전환한 뒤 환자들은 식욕억제제를 먹지 않으니 요요현상이 사라졌고, 스트레스 안받고 이렇게 쉽게 살이 빠질 줄 몰랐다는 피드백을 보내오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비만시술을 한다는 것은 생소한데요.
“보디라인을 살리는 시술을 통해 출산과 갱년기를 겪는 40~50대 여성들의 무너진 체형을 통증 없이 해결하는 것은 보너스인 셈이다. 비만전문의로서 체중감량의 과정이 여성으로서 자기자신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자신감을 찾는 여정이라고 환자들이 화답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내 비만치료의 철학은 다이어트는 내일로 미루고 싶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나를 챙기는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죠. 정신과 의사로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한 점은 특이한데요.
“사실 서구 신학이란 기독교의 유일신을 공부하는 학문이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인문학의 최고봉’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일천한 인문학에 대한 지평을 늘리는 데에는 신학공부의 도움이 컸다. 나 자신에게, 세상에게, 신에 대해 존재의 이유를 묻고 성찰할 수 있었던 성숙의 시간이었다.”
-비만한 환자나 한국사회 중산층을 진료하며 느끼는 소회는.
“현대인들이 자기중심적,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깜짝 놀라곤 한다. 자신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줬으면 좋겠다. 다들 그만하면 좋은 학교·좋은 직장 다니고, 그만하면 예쁘고 날씬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부정적인 색안경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우울해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은 없으니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데에도 더 적극적이였으면 좋겠다. 나만의 취미라든가, 운동, 개인시간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해서 더 이상 일중독의 노예가 되지 않길 바란다. 결국 한국사회의 중산층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일할 때 진정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수려한 미모와 지성, 패션감각의 조화로움을 발산한 유은정 원장의 CF장면. 삼성카메라(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LG패션 MOGG브랜드, 더후 비첩 자생 에센스 화장품의 CF장면.
-거시적으로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도움되는 ‘마인드 피트니스’ 팁 몇가지를 조언한다면.
“많은 한국인들이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 즉 ‘인정욕구’에 굶주려 있다. 지나치게 성취지향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50%의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아도 나는 성공했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내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중독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누가 시켜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쉴줄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못견디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다. 일중독의 뿌리는 낮은 자존감에 있다. 내가 아무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쉬고 있으면 남보다 뒤처지게 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들은 뭔가에 열중해야만, 정신없이 바빠야만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식 탓에 불행하다. 이런 분들에게는 80%만 일하라고 권한다. 당신이 일을 줄여도 직장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끝으로 한국의 정신건강을 좀먹는 ‘수치심 문화’에서 해방되라고 말한다. 수치심이란 ‘내가 본래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본질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수치심 문화에 빠지면 자꾸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비하를 하게 되고 자기는 없어지고 남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다수와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 즉 ‘잘못된 사람’이 되어버리고 개인의 특성은 무시되는 한국사회의 특성 때문에 수치심 문화의 뿌리가 뽑힐 줄 모른다. 남에 대한 지나친 의식, 체면치레 행동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요즘 독신을 고집하는 ‘모솔’, 청춘이혼에 못지 않은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이혼이 옛날과 달리 인생의 하자거리가 안된다는 분위기다.
“겉으로 보면 이혼이 예전처럼 하자거리가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전히 많은 이혼한 사람들, 이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변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인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직장 안은 물론 친인척 사이에도 이를 비밀로 부치길 원한다. 정부가 이혼 조정기간(숙련기간)을 의무화한 다음 이혼율이 떨어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충동적인 결정을 예방하고 해결책을 생각해볼 시간들을 가질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혼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고 이혼 후폭풍이 예상보다 거세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이혼율이 늘 30%정도 유지된다고 한다. 이혼율이 0%에 가깝다해서 모든 결혼이 성공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0%인 나라는 여성인권이 무시되는 후진국이다. 30%에 해당되지 않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성문제, 경제적인 위기, 신체·정신 건강상 문제 등에 배우자가 신경쓰고 배려해야 한다. 내가 불행하다고 해서 그 탓을 배우자나 결혼생활에 돌리지 말고, 인생의 굴곡에 숨겨져 있는 위기들을 평생 같은 편이 돼 이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결혼관에 대한 생각과 바람직한 나아갈 방향은. 꼭 여성의 육아·출산환경이나 배우자의 경제적 능력·재산·직업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현 세태의 결혼관은 ‘왜 내가 누구랑 사는가에 대해서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헤어져야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란 생각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최소의 사회단위인 가족은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하고 그 안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이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이다. 현 세태에서 다른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많지만, 가정내 갈등도 적극적인 해결보다는 덮어버리고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신세대들은 성대한 결혼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결혼 전에 결혼하고 나서 예상될 수 있는 갈등의 소지들을 미리 숙지하고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역할 분담, 경제권, 자녀, 양쪽 가족에 대한 배려, 성생활, 취미 등 사랑으로만 극복될 수 없는 일상생활의 영역을 현명하게 타협해야 한다. 결혼전 예비상담을 통해 실제 이혼율을 줄였다는 보고도 있다. 이제 결혼생활은 ‘사랑과 희생’의 가치관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가치관이 바뀌더라도 결혼이 주는 이득을 무시할 수는 없다. 독신도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결혼을 경제문제 등 현실적인 이유로 단지 피하고 싶어서 가정이 주는 정서적 안정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도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인구 고령화와 극심해지는 경쟁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자살 등이 늘고 있다. 자살과 우울증 예방에 관한 견해는.
“자살률이 감소되지 않자 보건복지부는 전국민정신건강검사 (1인당 평생 15회),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 응급실 자살시도자 관리강화 등의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일본처럼 예산을 투자해서 자살율을 적극적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도 소아청소년들의 경우 학교에서 정서기질 검사로 스크리닝해서 정서적인 문제를 학부모에게 통지하고 있다.
내과에서 위장장애 등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의 70~80%가 스트레스와 관련돼 있는 사실을 볼 때 스트레스 관리와 우울증 예방은 질병관리 차원에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선결돼야 할 것은 우울증 치료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울증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약보다는 먼저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야 하고 우울증약은 한번 먹으면 끊을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울증이 재발이 잦은 질병이어서 한번 약을 먹은 환자들이 계속 먹게 되는 것이지 항우울제 자체는 신경안정제나 수면제와는 달리 의존성이 없다. 요즘 김장훈·차태현·이경규 등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이 별것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고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마당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실제 취업이나 민간보험가입 등에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어 시정돼야 한다.”
-1인가구 중 ‘화려한 싱글’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노인’이다. 최근엔 의류브랜드를 패러디해 독거노인을 ‘DKNY’라는 속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만간 1인가구는 3가구당 한 곳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대개의 1인가구는 독거노인이다. 이들의 노년기 정신건강을 관리해줄 정책적 솔루션이 나와야 한다. 알코올중독·우울증·화병·수면장애 등의 예방과 치료에 힘쓰고, 노인에게 약한 노동강도의 직업을 부여하며, 취미활동·친구교제·신앙생활 등을 통해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노인복지다.”
- 최근 3년간 내놓은 저서(역서)가 제법 좋은 반응을 얻었죠. 책 내용과 출판과정의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
“2001년부터 비만환자들을 만나면서 스트레스와 비만의 상관관계에 대해 정신과 의사로서 관심을 갖게 됐다. 다이어트의 성패는 식욕조절에 달려있는데 ‘심리적 허기’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첫 번째 다이어트 심리서를 낸 게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윤대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공동 저술한 ‘나는 초콜릿과 이별중이다’(21세기 북스)이다. 이 책을 쓰면서 여자들이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바로 ‘자존감’ 때문임을 확신하게 됐다.
두 번째 책 ‘그래서 여자는 아프다’(들녘)는 좀더 수월하게 집필할 수 있었다. 진료실에서 내가 만나는 두 명의 전형적인 여성A(20대 폭식증)와 여성B(중년 비만)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이야기형식으로 풀어난 것이다.책을 쓰면서 독자들이 읽고 난 뒤 ‘한 시간의 심리상담’을 직접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는데 과연 좋은 반응이 나와 독자와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정신과 상담이 시간이나 비용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으니까 책으로나마 ‘만원의 행복’을 드릴 수 있어 좋았다.
세 번째 책은 독일의 유명한 심리학자 마리아 산체스가 지은 ‘식욕버리기 연습’(한국경제)의 번역본을 감수한 것이다. 한국 실정에 맞게 진료시 처방했던 내용을 추가했다. 실제 환자분들이 제가 처방한 액션플랜을 따라하면 집에서 스스로 폭식을 이겨낼 수 있다. 식욕에는 진짜 식욕말고도 ‘가짜 식욕’(심리적 허기)도 있어서 심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책이었다.”
-실제 진료하다보면 폭식증 환자가 흔하고 증세도 심한가요.
“폭식증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뜻 도움을 받지 못한다. 먹는 것 하나 조절 못하는 인간이란 얘기를 듣기가 두렵고, 그것이 병인지도 모르고, 어느 병원에 가야할지 종잡지 못한다. 20대 여성이 폭식증 때문에 겪는 괴로움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다. 인생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도 이야기를 못한다. 5년, 10년이 지나 폭식증이 만성화되면 학교도 제대로 못다니고 대인기피증,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도 폭식증을 적극 치료해 예전의 외모와 내면(자신감)을 되찾는 20대 여성들을 보면 보람차다. 폭식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게 아니라,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들어오는 ‘경고등’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보듬고 사랑해줄 시기라고 이해할 때 치료가 시작된다. 결국 다이어트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자신감과 동기부여, 즉 ‘마음먹기’다.”
-정신과 의사를 택하게 된 동기는. 본인의 적성에 맞나요.
“본래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던 지라 의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내 문과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정신과를 택하면서 의대 공부에 대한 회의가 해소될 수 있었다. 인턴 시절, 다들 정신과 병동을 싫어하는데 나는 환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참 좋았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상담심리사와 팀으로 함께 일하는 것도 좋았고 정신과 치료라는 게 약물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상담·사이코드라마·미술치료 등 여러가지 창의적인 치료법을 접목해 이뤄지는 게 신기했다. 어려서 호기심도 많았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인턴 시절 마지막까지 전공선택에 있어서 피부과와 정신과를 두고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전망 좋고 돈도 잘 벌수 있다며 피부과를 권했지만, 평생 직업으로는 내 적성에 맞는 정신과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 정신과에 지원했다. 요즘엔 정신과가 피부과보다 전망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평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태어나도 정신과를 지원하고 싶다.어려서부터 정신과에 다니는 사촌동생과 고모를 보았고 시집살이로 우울증을 겪어야 했던 어머니도 보았다. 정신과가 찾아가기 힘든 곳이 아니라, 교회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갖게 된다. 친근하고 문턱이 낮은 정신과가 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좋은클리닉을 오픈할 때에도 간판에 ‘정신과’라고 적지 않았고 편안한 카페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외활동을 좋아하죠. 요즘 하는 기고활동이나 방송매체 출연은?
“10년 넘게 기독교 잡지에 매달 다양한 삶의 면면과 진료실 경험을 소재로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글을 연재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조세일보-헬스오에 ‘라이프스타일리스(마음건강주치의)’로서 사회의 이슈가 되는 문제를 글로 표현하고 있다. 방송은 스토리온의 ‘렛미인’에서 폭식증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전문가로 출연하고 있다. 방송을 하면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해 준비하면서 스스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진료시간 외에만 방송한다는 원칙을 지키다보니 몸이 많이 피곤한 게 사실이다. 진심으로 말하는 것보다 글쓰는 것이 더 좋다.
-요즘 관심 갖는 분야와 향후 집중하고 싶은 일은.
“의상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을 정도로 스타일과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어떤 사람의 옷장 안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환자 중에서 처음에는 무채색의 딱딱한 느낌의 옷을 입다가 어느 순간 우울증이 좋아지면서 자신의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여성스럽고 섹시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옷장심리학’을 생각하게 됐다. 어떤 의상을 입느냐에 따라 기분, 마음가짐, 행동이 전부 바뀔 수 있다. 여자 의사로서 환자들의 체중이 1㎏만 늘어도 알아볼 정도로 외모변화에 민감하고 관심이 높다. 작은 변화를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의 기분변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외모와 태도는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99%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단서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로서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도 옷장심리학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해볼 계획이다.”
유은정(劉恩庭) 좋은클리닉 원장의 프로필
1996년 이화여대 의대 졸업
2001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취득
2001년 미소의원 스트레스비만클리닉 공동원장
2003년 이화여대 의학석사 취득
2006년 이화여대 의학박사 취득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풀러(Fuller)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2010년 이후 현재 대한비만치료학회 학술이사
대한자살예방협회 대중문화예술인 전문상담가
비만·스트레스 전문병원 좋은클리닉 원장
부설 굿이미지 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