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 새누리당 의원(가운데)이 지난달 31일 주최한 4대 중독(마약 게임 도박 알코올중독) 예방 관리제도의 입법 관련 공청회 모습.
‘게임중독법’으로 불리는 게임산업 규제법안을 놓고 여야가 들썩이고 있다. 당론은 아니지만 새누리당은 게임중독에 빠진 어린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게이머와 게임업체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지난 11일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법안을 반대하는 넥슨,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엔에치엔(NHN) 등 게임업계 선두기업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업계가 ‘게임산업에 대한 사망 선고’를 운운하며 게이머를 선동하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국민 8명 중 한명이 각종 중독(마약 게임 도박 알코올, 이른바 4대 중독)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워본 엄마 입장에서 도저히 게임중독을 외면할 수 없었다”면서 “게임업계 대표님들은 정말 중독에 이르러 일상생활까지 지장받는 아이들이 없다고 믿느냐”고 쏘아붙였다.
반면 같은 날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게임커뮤니티(루리웹)에 올린 글을 통해 신 의원이 발의한 게임중독법에 대해 “게임을 마약과 동일시하고, 그 수준의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법리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전 원내대표는 이 글에서 “게임산업은 박근혜 정권도 공약한 ‘글로벌 5대 킬러 콘텐츠’로 육성해야 할 한국의 유망한 콘텐츠산업”이라며 “겉으로는 육성을 말하면서 실제 규제의 칼을 꺼내드는 ‘꼰대적 발상’으로 인해 세대간 갈등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신 의원은 게이머와 게임업체로부터 신랄한 비만에 직면해 있다. 게임규제를 반대하는 서명자가 수십만명에 이르고 신 의원의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지난 4월 신 의원은 국무총리 소속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신설, 4대 중독의 관리체계를 일원화함으로써 예방·관리 활동을 강화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새누리당은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정기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졌지만, 게임업계가 반대 서명 운동에 나섰다. 한 게임업체 대표는 국내서 (게임)사업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극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맞서 최근 학부모단체와 교육계, 종교계, 보건단체 등도 찬성 서명 운동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게임산업은 1970년대 전자오락기부터 시작됐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나 차가 앞차와 가장자리 장애물을 피해 가장 오래 달려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최초의 전자오락 형태였다. 이후 갤러그, 스타크래프트 등이 뒤를 이었다.
초중고 시절 전자오락 게임은 돈이 만만찮게 들어 웬만한 부잣집 아이나 부모님 말을 무척 듣지 않는 불량학생(돈을 훔치거나 강탈, 빼돌리는…) 이 아니면 장시간 할 수도 없었다.
대체로 1990년대 이전엔 전자오락게임이 순발력을 좋게 하고, 지능도 발달시킬 수 있다고 믿기까지했다. 부모들의 걱정은 단지 돈과 시간을 게임에 많이 뺏긴다는 수준이었지 마약중독처럼 정말 병적으로 중독된다고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컴퓨터 단말기(퍼스널 또는 노트북) 중심의 게임이 확산되고 내용의 폭력성이 더해지면서 밤새도록 자지 않고, 부모 몰래 이불을 뒤집어쓴 채 게임을 하고, 방학이면 책과 식음을 전폐하고, 그것도 몇날 며칠을 게임에 몰입하는 광란의 게임족들이 생겨났다.
이후 게임의 폐해를 논하는 많은 의학자들의 연구논문이 나왔다. 매일 2시간 30분 이상 인터넷게임을 하는 게임 과다사용자는 마약중독자와 유사하게 대뇌 특정 영역이 활성화돼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지나치게 추구하며 중독에 취약한 성질을 가졌다는 게 대표적인 의학이론이다.
게임중독이 마약중독처럼 도파민이라는 쾌감을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불러오고 중독의 강도가 강할수록 원하는 쾌감의 수준도 높아져 일단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는 갈망이 강해진다는 설명도 있다.
게임중독이 심해지면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피질이 손상돼 참을성이 떨어진다. 툭하면 화내고, 생각하기 싫어해서 행동이 산만해지고 학습부진으로 이어지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에 빠질 수도 있다. 이는 공격적인 행동과 폭력성으로 이어져 ‘왕따’나 ‘학교폭력’, ‘범죄성향’으로 미칠 수도 있다.
이밖에 게임중독은 잘못된 자세와 장시간 앉아있기 등으로 허리와 목에 디스크 등 정형외과질환을 유발하며, 가성근시 등으로 시력을 망가뜨리고, 부부간 불화의 도피처로 활용돼 이혼의 단초를 제공하는 등 문제가 많다.
중독이란 당사자에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무서운 것이다. 지난 10일 개그맨 신정환, 박용만에 이어 이수근 탁재훈도 도박에 빠져 거액의 돈을 날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언론매체는 마카오에 이어 싱가포르, 일본, 러시아도 도박산업 육성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뭐하냐는 질책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강원도 정선에 매일 수십명, 수백명의 도박중독으로 패가망신한 사람이 나오고 있는데 국가가 세금을 걷으려 이를 방치하고 있는 현실도 모자라서 도박장 만들어 외국인에게 ‘도박 삥’을 뜯자는 게 많은 경제학자, 지성인들이 내뱉고 있는 소리다.
심지어 어느 지성인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좋은 게임을 만들어 어두운 이 나라의 상처받은 영혼들이 마약하지 않게, 부탄하지 않게, 본드하지 않게, 자살하지 않게 지켜주고 있다’며 게임업계 편을 드는 칼럼도 썼다.
게임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연간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연 매출액이 8조8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이 게임 수출로 번 돈이 2조8000억원이라니 대단하다.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7%가 게임에서 나오니 미래 성장동력산업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국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게임산업 육성해 남의 나라 국민의 심신을 황폐하게 해도 된다는 ‘애국적 발상’이 무섭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게임중독법’ 입법 영향으로 국민감정에 부담을 느낀 CJ그룹이 공을 들이는 엔터테인먼트사업 중 핵심인 게임사업체(CJ게임즈, CJ E&M)를 매각키로 했다는 관측성 기사를 보면 기업의 입장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정서법’에 휘둘려 뜻대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경해야 하는 아픔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게임은 선용하면 저렴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될 수 있고 정신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정신노화 지연이나 학습에 도움되는 게임에 대해 공공보조금으로 구매자에게 할인혜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선용이 어디 쉬운가. 대마초 애호가들은 헤로인이나 필로폰, 모르핀과 달리 대마초는 탐닉성, 금단증상이 덜하니 마약에서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마초도 선용하면 마약이 아니면서도, 담배보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도박이나 게임도 그렇다. 친지나 친구끼리 하는 소액 화투나 포커놀이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술이고 담배고 게임이고 도박이고 한번 빠진 사람에겐 ‘적당히’가 잘 안된다는 게 문제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12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군’과 ‘게임 과몰입위험군’은 각각 0.8%, 1.2%로 게임 이용에 문제적인 이용행태를 보인 청소년 비율인 2% 수준에 그쳤다. 안전행정부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중독자가 47만명이고 이 중 60~70%가 게임으로 인한 중독으로 추정된다고 돼 있다. 이 수치를 놓고 게임중독이 심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직은 얼마든지 중독현상을 컨트롤 할수 있다는 보는 시각도 있다.
요즘 심하게 세무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아, 과격하게 말해 ‘심하게 털리고’ 있는 대표적인 전문직 중 하나가 의사다. 필자가 아는 한 의사는 기자에게 게임중독법 입법 추진과 관련, “나 한테 세금(게임중독 예방세) 뜯어다가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전문가에게 갖다주는 꼴 아니에요”라고 반문하며 “게임은 개인의 책임 하에 절제해야지, 왜 오지랖 넓게 국가가 나서치료까지 나서냐”고 화를 냈다. 이어 그럴바엔 비만세(탄수화물 중독세) 등 국가가 거둬야 할 세금이 어디 한두가지냐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산업은 청소년의 피해 위에서 큰 것은 틀림 없다. 게임중독이나 게임과몰입이 나타내는 일관된 추세는 가난할수록, 시골일수록, 지능지수(IQ)가 낮을수록, 다문화가정의 자녀일수록 게임에 몰입하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이다. 또 게임에 몰입하는 청소년의 20~30%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공부는 하지 않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게임만 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은 1920년부터 13년간 지속된 미국의 금주령처럼 게임금지령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오직 한 가지 중독은 ‘공부중독’일 뿐이다.
사실 정치권이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고 게임의 폐해를 몰라 이런 논란이 빚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이런 모든 게 ‘가치판단’의 문제다.
청소년의 건강권과 학습권 보호, 게임산업 육성 및 국익 증진을 조화시킬 묘안을 뭘까. 귀가 후 홀로 집에 보내는 맞벌이부부의 자녀들이, 학원으로 떠밀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덜 의지하도록 부모의 온정, 자기주도적 학습습관 형성, 운동 등 취미활동 장려를 통해 적극성과 능동성의 배양할 수 있도록 전 사회가 나서야 한다. 이런 노력이 선행된 후에 게임업체에게 수익금의 일부를 중독자 치료에 기부하라고 사회가 요구하는 게 맞다.
어려서부터 인터넷에 중독되면 평생 인터넷노예가 되고 디지털치매가 오고, 기억력이 떨어져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
게임중독법이 나오게 된 것은 게임의 폐해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일 것이다. 폐해의 실체를 잘 알고, 청소년들이 왜 게임에 매달리게 되는지 원인을 찾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