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한 모씨(28)는 요즘 산부인과 진료를 받은 뒤 영 마음이 찜찜하다. 얼마 전 좌욕을 하다가 외음부 밑쪽에 아주 작게 뭔가 하나가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 임신 전 ‘곤지름(콘딜로마, condyloma)’이 발생해 치료했는데 임신 후 다시 재발한 것이다. 예전엔 작은 알갱이가 여러개 뭉친 모습이었다면 이번엔 뾰루지처럼 딱 한 개 올라왔다. 한 씨는 “곤지름이 출생 시 신생아의 후두부에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길 적잖이 들어왔기 때문에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병원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곤 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곤지름은 성기나 항문 주위에 닭벼슬 혹은 브로콜리 모양으로 번지는 성기사마귀다. 잠복기는 2∼3개월로 초기발견이 어렵다. 주로 흰색이지만 핑크색 혹은 연갈색을 띠기도 한다. 곤지름을 일으키는 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 virus)다. 자궁경부암의 대표적 유발인자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HPV는 종류가 아주 다양하며 6, 11형이 곤지름과 연결된다.
곤지름은 주로 성행위를 통해 전염되긴 하지만, 무조건 성병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번 감염되면 사마귀 자체를 제거할 수는 있지만 완전 박멸하는 게 쉽지 않아 난치성 피부염으로 꼽히기도 한다. 일단 감염되면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 한번 생기고 재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의 컨디션이 나빠지면 재발하기 쉽다.
HPV, 태아에 수직감염되지 않고 분만 과정서 ‘일시적 오염’ 발생하기도
외관상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큰 불편함은 없지만 산모들이 무엇보다도 걱정하는 것은 ‘아기에게 악영향을 끼칠까봐’서다. 게다가 곤지름은 HPV가 원인이라는 말에 아이에게 곤지름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까지 감염시킬까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HPV에 감염된 임신부의 신생아 약 20%는 수직 감염됐지만, 분만 2개월 뒤 바이러스가 모두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HPV 감염이 임신·출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뿐더러 신생아에 노출되는 부분도 일시적인 것으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신부에서 신생아로의 HPV 전염은 임신 중 태반을 통한 수직감염이라기보다는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오염으로 판단된다”며 “임산부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태아에 감염되면 ‘후두부 곤지름’ 유발 … 분만 직전엔 제왕절개
곤지름 자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출산 직전 곤지름이 발견됐다면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는 제왕절개를 권하는 편이다.
신용덕 호산여성병원 원장은 “보통 태아의 목을 통한 ‘후두부(喉頭部) 곤지름 감염’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신생아의 호흡기에 곤지름이 생기면 호흡곤란이 유발될 수 있고 결절이 생기면 제거도 어려울뿐더러 재발이 잦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제왕절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능하면 태아에게 ‘곤지름에 대한 노출을 최대한 제한해보자’는 의미에서다. 자연분만하면 태아가 곤지름균이 섞인 양수를 먹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가능하면 감염된 양수를 많이 먹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최근엔 둘 사이의 발병률 차이가 크지 않다는 연구도 나와 있어 곤지름이 심하지 않으면 자연분만을 선택하기도 한다.
신용덕 원장은 “아기뿐만 아니라 산모를 배려해서 제왕절개를 권하기도 했다”며 “자칫 자연분만 시 질의 절개 및 파열에 의해 곤지름이 확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임신 초·중기 곤지름, 재발없다면 자연분만 가능 … 레이저제거·전기소작술 등으로 치료
하지만 임신 초기나 중기에 곤지름이 발견된 뒤 재발이 없다면 제왕절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정기검진 중에 발견되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여겨지면 바로 병원을 찾는 게 좋다. 분만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임신을 하지 않은 다른 환자와 똑같은 방법으로 곤지름을 치료한다. 보통 레이저치료, 전기소작술, 냉동요법 등을 이용해 제거한다.
신 원장은 “만약 분만실에서 병변을 발견한 경우엔 양수가 미리 파열되지 않았으면 자연분만할 수 있지만, 양수가 파열된 후 4시간이 지난 후에 분만하는 상황이라면 태아가 감염될 우려가 높아져 아직까지는 이론적으로 제왕절개를 권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분만진통이 시작됐을 때 이미 산모도 모르게 양수가 미세하게 파열됐을 수도 있어 분만 임박시에 산도에서 곤지름 병변이 발견된다면 제왕절개를 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곤지름은 대개 출산 후에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외음부를 매일 세척하고 완전히 습기를 제거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신 원장은 “곤지름은 HPV 감염, 즉 직접접촉에 의해 생기는 만큼 배우자끼리 서로 옮기도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며 “만약 곤지름 병변이 나타났다면 상대편도 HPV를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 남편에게도 병변이 관찰된다면 함께 치료에 나서 재발을 막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만약 병변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서로 컨디션 조절에 힘써 병변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