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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우울증·염증·여드름의 복병 … 끊을 수 없는 ‘설탕’의 유혹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3-11-08 15:37:22
  • 수정 2013-11-15 12: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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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탕섭취 하루 50g으로 줄여야 … 과다섭취 시 비타민B1, 칼슘 챙겨야

어려서부터 청량음료, 주스, 카페인음료, 음식첨가제 등을 통해 당분을 섭취하면 자신도 모르게 ‘스텔스 칼로리’(stealth calory)가 체내에 축적돼 성인병 우울증 여드름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직장인 최 모씨(33)는 평소 믹스커피를 달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며 한 잔, 회의를 하며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저녁 먹기 전까지 손에서 커피를 놓지 않는다. 사무실 경리 아가씨로부터 ‘최 대리님이 탕전실 커피믹스를 빨리 없애는 주범’이라고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웃어넘기며 개의치 않는다. 어쨌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무 피곤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에서다. 믹스커피는 최 씨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직장인 중에는 최 씨처럼 ‘커피중독증’에 빠진 사람이 적잖다. 이들은 모두 한 잔의 커피 없이 오후나기를 힘들어한다. ‘카페인중독’에 빠졌다며 건강에 안 좋은 것은 알지만 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에너지드링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카페인중독이 아닌 ‘설탕중독’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시럽 없이 에스프레소를 애호하기 마련이다.
 
미국 언론인 윌리엄 더프티(William Dufty)는 1975년 ‘슈가블루스’라는 책을 저술해 지금까지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가 말하는 ‘슈가블루스’란 설탕을 과다 섭취했을 때 발생하는 육체 및 정신의 복합적 질환을 말한다. 더프티는 “나도 15년 동안을 설탕중독자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분유와 설탕을 넣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많은 양의 설탕을 꾸준히 섭취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동료의 갑작스런 사망에 충격을 받고 ‘설탕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설탕 없는 48시간째, 그는 마약을 끊었을 때의 금단현상과도 같은 증상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엄청난 편두통, 메스꺼움이 지속된 뒤 서서히 변화가 시작됐다.
더프티를 항상 괴롭히던 항문·잇몸 출혈이 사라지고, 몸의 부종이 싹 사라졌다. 더불어 피부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박차를 가해 5개월간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안 먹었더니 몸무게도 30㎏이나 줄었다.

사실 슈가블루스는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대중가요의 제목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엔 ‘금주령’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마피아가 활개치며 은밀하게 밀주를 만들어 팔았지만 당시 술을 마시지 못한 까닭인지 설탕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설탕은 특별히 건강에 해를 끼치는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고, 단맛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더프티는 저서에서 설탕을 니코틴 또는 헤로인 이상의 중독성을 가진 물질로 보고, 설탕의 섭취를 중단하면 금단현상을 겪는다고 강조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설탕을 공급하다 중단하자 쥐들은 모르핀·니코틴 금단증상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다. 이는 쥐들이 설탕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설탕은 서기 600년부터 페르시아제국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사탕수수에서 나온 즙을 딱딱하게 굳혀 약품으로 사용한 게 시초다. 이슬람제국에 의해 전세계에 퍼지면서 습관성 물질로 바뀌었다는 게 더프티의 견해다.

설탕(雪糖)은 ‘정제된 수크로오스’(Sucrose, sacharose, 蔗糖)로 사탕수수 또는 사탕무 등 천연재료를 가공해 만들지만 여러 화학적 공정을 거치면서 영양소의 90% 이상은 제거되고 칼로리만 남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과다 섭취하면 관상동맥혈전증, 저혈당증, 심장병, 당뇨병 등 신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조울병,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정신분열증 등 정신과적인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엔 전세계 인구 4명 중 1명꼴로 앓고 있는 현대병(비만, 성장저해, 성인병, 우울증)의 주범이 ‘설탕중독’이라는 주장이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다. 반면 한국은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을 정도로 설탕중독 무방비 상태에 노출돼 있다. ‘나트륨은 반드시 줄여야 한다’면서 정작 현대병의 주범인 설탕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해 평균 1인당 설탕소비량은 21㎏이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하루에 음식을 통해 자연적으로 25~50g의 당분을 섭취하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은 하루 50g이하의 당분을 섭취하라고 권고한다.

피곤할 때 믹스커피, 에너지드링크처럼 단 음식이 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뇌가 혹사당하거나 피로할 때 몸은 단 음식을 원한다. 이럴 때 설탕이 듬뿍 든 음식을 먹으면 혈중 포도당이 빠르게 올라가면서 일시적으로 피로도 풀리고 뇌도 안정감을 되찾는다.

송홍지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단맛은 뇌 속 쾌락중추를 자극하게 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며 “에너지드링크나 커피를 섭취했을 때 능률이 오르는 것은 카페인효과라기 보다 설탕에 의한 혈당상승 효과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습관적으로 단 음식을 찾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 이동환 고도일병원 만성피로센터 원장은 “단 음식은 저혈당에 의한 일시적인 피로감을 해소해 줄 수 있지만 피곤할 때마다 단 음식으로 피로감을 해소하려 하면 호르몬 불균형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이런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더욱 강하고 자극적인 단맛을 원하게 돼 중독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당지수(GI,Glucose Index)가 높은 음식이 체내에 흡수되면 혈당치가 빠르게 올라간다. 이럴 경우 인체는 포도당을 흡수하기 위해 췌장에서 인슐린을 다량 분비한다. 이 때 혈당이 뚝 떨어지는데 다시 원상 회복될 때까지 무력감이 느껴지게 된다. 커피를 마시면 잠깐 힘이 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더 피곤해지는 이유다. 이런 무력감이 느껴지는 기간은 ‘슈가크래시(sugar crash)’라고 부른다. 예컨대 에너지드링크나 커피를 마시고 능률이 오르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내 그 느낌이 사라지고 더욱 큰 피로감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평소 컨디션이 좋은 사람은 이런 무력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며 예민해진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럴 경우 슈가크래시가 오면, 무력감과 졸음이 쏟아지는데 이럴 경우 휴식을 제외하곤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하기 어렵다. 적당한 포도당은 뇌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게 섭취하면 신경과민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세포노화와 염증의 주범 ‘설탕’
 
지나친 설탕 섭취는 호르몬 분비 외에 장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장은 인체의 가장 큰 면역기관이자 독성물질을 걸러내는 곳이다. 설탕을 많이 먹으면 장내 세균증식이 활발해져 정상적인 장의 기능을 해치고 장점막까지 손상시킨다. 장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장내 독소들이 그대로 쌓여 만성피로를 유발하게 된다.

이동환 원장은 “장기능이 떨어지면 면역기능에도 문제를 일으켜 이런저런 질병에 쉽게 걸리고 세포와 조직을 병들게 하는 활성산소를 증가시켜 세포의 기능을 약하게 만들고 세포의 노화를 촉진시킨다”고 설명했다.
 
KBS 건강프로그램인 ‘생로병사의 비밀’ 중 ‘수명을 단축시키는 식품-설탕’편에서는 설탕을 많이 먹을수록 혈액속의 단핵구의 숫자가 줄어들고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단핵구란 세균 등의 이물질을 가장 먼저 포착해 아메바처럼 잡아먹는 면역의 최전방을 담당하는 백혈구다. 
단핵구의 숫자가 줄면 감기에도 쉽게 노출되고, 심지어 감기가 매번 폐렴으로 번지기도 한다. 입안 등 점막상처도 빈번해지며 한번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 생리통이 극심해진다. 설탕을 매일 먹으면 인체는 산성화되기 때문에 염기와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 체내 무기염류를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치아 및 뼈가 약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설탕이나 과당은 인체의 면역기능을 약하게 만들어 염증성 반응을 유발하는 화학반응을 촉진한다. 이밖에 설탕대용품으로 손꼽히는 인공화학감미료인 아스파탐(aspartame)도 뇌기능에 악영향을 끼쳐 우울증이나 공항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드름, 설탕 과다섭취가 부른 현대병

일각에서는 갑자기 여드름이 늘어난 것도 과도한 설탕 섭취와 연관이 전혀 없다고 보지 않는다. 과도한 설탕을 섭취하게 되면 신체는 염증반응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여드름이 쉽게 유발된다는 것이다.

조소연 서울대 서울시보라매병원 피부과 교수는 “전에는 여드름과 음식이 상관없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는데 최신 연구 결과 음식과 여드름은 분명 상관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바뀌고 있다”며 “모든 사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당지수가 높은, 혈당을 빨리 높이는 음식을 섭취했을 때 여드름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서구문화가 유입되지 않은 원주민들은 자연식을 주식으로 했을 때 피부트러블이 거의 없었지만, 서양음식을 접하게 된 뒤에는 여드름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보고도 나와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예전에 비해 여드름으로 고생하는 젊은 환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며 “설탕 섭취량 증가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설탕을 많이 섭취한 사람은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타고 벗겨질 위험성이 높다.
 
커피, 청량음료, 에너지드링크 … 설탕보다 위험한 건 액상과당
 
음료수뿐만 아니라 커피·에너지드링크 등에는 설탕이 다량 함유돼 있어 설탕중독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청량음료 시장 규모는 약 1조4300억원에 달한다. 당분은 콜라 100㎖당 13g, 사이다 100㎖당 10~12g이 들어 있다. 청량음료 250㎖ 한 캔을 마실 때 약 20~32.5g의 당분을 섭취하게 된다.
 
송홍지 교수는 “당분은 포도당(glucose), 과당(fructose), 갈락토오즈(galactose, 젖당, 유당)로 나뉘는데 그 중 과당형태가 단맛이 가장 강하다”며 “음료수에는 과당을 액체로 만든 액상과당을 다량 넣게 되는데, 물에 잘 풀릴뿐만 아니라 체내 흡수도 빨라 비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다량의 당분과 기름을 함유한 설탕·소스·케첩 등 조미제, 청량음료나 주스를 즐겨 먹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섭취하게 되는 열량을 ‘스텔스 칼로리’(stealth calory)라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도 음료수가 소아비만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며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2004년 초·중·고교에서 소다수 등 탄산음료의 판매를 금지했는데, 과도한 설탕섭취가 청소년들을 성인병으로 이끌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어린이들일수록 설탕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음료수를 마시지 못먹게 되면 심하게 짜증을 내는 등 설탕을 계속 찾게 된다”며 “미국에서 소아비만퇴치에 나설 때 처음엔 동물성 지방을 줄이는 시책을 펼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아비만은 늘어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슈퍼사이즈’ 음료수가 문제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음료수는 절대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일본의 20세 청년 후지사와 사토시는 건강에 좋다는 TV광고를 보고 매일 2ℓ 이상의 청량음료만 마시다가 당뇨병과 비만 등 성인병으로 혈당치가 극해 달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설탕으로 인한 우울증

설탕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정신적 질환을 겪게 될 수 있다. 인체에서 사용하고 남은 당분은 글리코겐(glycogen)으로 전환돼 신체 여러 부위에 쌓여 비만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글리코겐이 신체 여러 부위에 축적돼 더 이상 갈 곳일 없으면 뇌·심장·신장 등 여러 장기로 향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계산력·기억력 등이 저하된다.
 
특히 슈가크래시를 겪으면서 느껴지는 무력감이 지속되면 감정적으로 우울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메커니즘으로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송홍지 교수는 “설탕에 중독되면 지속적으로 달콤한 맛을 찾게 되는데, 당도가 지나치게 높은 음식을 먹게 되면 순간적으로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 인슐린도 덩달아 분비속도가 빨라진다”며 “이럴 경우 저혈당 증세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정상으로 돌리려는 글루카곤도 급하게 분비될 수밖에 없어 신체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가 잦아지고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인데, 설탕을 과도 섭취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메커니즘은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아직 확연한 의학적 연구결과를 찾아볼 수 없어 가설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설탕 유해성의 대전제는 ‘과량섭취’

당분은 생존을 위해 섭취해야 할 기본적인 식품이기도 하다. 문제는 과량섭취다. 한국인은 이미 밥(쌀) 등 탄수화물을 통해 필요한 당분의 75%를 얻고 있다. 여기에 커피를 마실때 넣는 설탕 두 스푼까지 추가되면 WHO가 권고하는 하루설탕섭취량인 50g을 넘어서게 된다. 

도저히 설탕을 끊을 수 없는 사람은 설탕대사에 필요한 비타민B1이 풍부한 음식을 즐겨 먹고, 당분으로 인해 잃은 칼슘을 보충하기 위한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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