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북부병원은 지난 8월부터 9개 전문클리닉에 한해 ‘초진환자 30분, 재진 10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국내 의료계는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다. 병원간 빈익빈 부익부는 갈수록 심해지고, 재정악화로 문을 닫는 병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한 관련 단체들의 대립은 정도가 점차 심해지는 추세다. 또 ‘빅5’를 비롯한 대형병원들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가운데 지난 24일 서울대병원 노조가 장기파업에 들어가 경영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의료계의 현 상황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의 허와 실에 대해 짚어봤다.
이화의료원, 전 병실을 1인실로. 허황된 꿈인가, 실현 가능한 계획인가?
저수가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의료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국내 병·의원들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빅5’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일 이화의료원은 2017년 서울 마곡지구에 들어설 예정인 제2부속병원(1000병상 규모)의 전 병실을 1인실로 구축하고, 이 중 70%는 상급병실료를 받지 않는 일반병실로 운영하겠다고 밝혀 의료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모든 병실을 1인실로 꾸미는 것은 국내에서 아직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병원들이 운영하고 있는 1인실은 상급병실료를 부과해 하루에 25만~30만원의 입원비용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환자가 장기입원하는 경우 치료비보다 입원비가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병원들이 환자에게 상급병실 이용을 강요하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윤석준 고려대 교수팀이 상급병실료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상급병실에 입원한 환자의 59.5%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의료원의 계획안이 실현되면 환자는 목욕시설을 갖춘 16㎡ 규모의 1인실을 쓰고, 병실료는 5~6인실과 같은 1만~2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또 철저한 감염관리와 환자의 사생활 보호에도 크게 도움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상급병실료에 대한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의료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비용이다. 윤 교수팀의 조사결과 상급병실료는 전체 병원급 이상 총수입의 4.2%, 비급여 총수입의 14.4%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급병실료를 포기하는 경우 수입과 지출의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 전 병실 1인실 체계를 갖추는 데 필요한 공사비, 관리비 등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이순남 이화의료원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정책상 상급병실료의 존치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를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인 것”이라며 “대신 해외환자를 적극 유치하고 특허·기술료가 창출되는 연구활동을 강화하는 등 병원 수입모델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새 병원의 나머지 30% 병실은 해외환자를 위한 최고급 인테리어와 시설을 갖추게 된다. 이를 통해 VIP 해외환자를 적극 유치하고 프리미엄 건강검진센터를 활성화해 상급병실료를 대체하겠다는 게 의료원 측 주장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반신반의하는 입장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이화의료원의 이번 계획은 이상적이지만 여기에 소요되는 엄청난 공사비·관리비 등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전 병실을 1인실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의료인력도 급증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병실의 1인실화가 환자의 비용부담을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이화의료원과 같은 사례는 종합병원의 병상경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며 “다른 종합병원도 이를 선례로 삼아 다인병상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준병실을 1인실화하면 의사나 간호사 등에 대한 인건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환자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에서는 ‘결국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와 ‘한번 지켜보자’는 관망론이 뒤섞인 가운데 이화의료원의 ‘모험적 실험’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 북부병원 ‘초진 30분, 재진 10분’, 의료계 패러다임 바꿀까?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30분 대기, 3분 진료’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많은 환자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황모 씨(29)는 “대기시간이 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지만 의사의 무성의하고 불친절한 모습은 극심한 짜증을 유발한다”며 “형식적인 질문만 툭툭 던지고 처방전을 휘갈겨 쓰는 모습을 보면 기다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라고 불평했다.
이같은 현상은 빈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의료계 현장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병원마다 비상경영체제를 외치는 현 상황에서 의사 한 명이 진료해야 할 환자는 점점 늘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오로지 의사 개인의 인성문제로만 간주해 손가락질하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다.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의사를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윤추구가 최우선되고 ‘인술’의 의미는 점차 퇴색하고 있는 현 의료계에 서울시 북부병원은 지난 8월 ‘초진환자 30분, 재진 10분’을 선언해 ‘착한 병원’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병원이 지난 5월 개소한 당뇨병·콜레스테롤·콩팥병·두통·뇌졸중·어깨통증·삼킴장애·스트레스·건망증 등 9개 클리닉은 초진환자는 30분, 재진환자는 10분 동안 진료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권용진 서울시 북부병원장은 “진료시간이 길어지면 이전보다 적은 환자를 볼 수밖에 없지만 더욱 세심한 상담으로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 및 진료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충분한 진료시간을 통해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고 진료할 수 있으며, 환자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자세히 묻고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게 가능해졌다. 이같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방문하기 전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진료예약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일반 외래진료는 여느 병원과 마찬가지로 진료시간이 5~10분에 불과하다. 병원 관계자는 “클리닉이 초진 환자만 진료하는 경우 하루 총 진료환자는 15명 내외로 줄어든다”며 “이는 외래가 아닌 클리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가지 한계는 이같은 시도가 북부병원이 공공병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진료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일정 시간안에 볼 수 있는 환자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이는 곧바로 병원의 수익감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병원 측 설명에 따르면 환자수가 감소하면서 발생한 손실분은 서울시로부터 내려온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적 손실에 대한 걱정을 상대적으로 덜 하면서 의사가 충분한 진료시간을 환자에게 할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민간병원 입장에서는 북부병원의 이같은 행보가 썩 달갑지만은 않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반 민간병원이 30분진료를 시행한다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환자들이 자칫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을 단편적으로 비교해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부병원의 30분진료 실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의료계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또 공공병원으로서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료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병원 측은 초진 30분제도를 실시하면서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진료시간을 도출할 계획이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와 의료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장 효율적인 진료시간을 파악한 후 이를 실제 진료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격진료, 정말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위한 최선책일까?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유헬스(U-Health), 특히 원격진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1일 환자·의사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었지만 대한의사협회와 각종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잠정 연기키로 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간 원격진료만 허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선박 항해자, 군인 등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의료정보 및 전문적 조언을 원격으로 제공한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에게 남들만큼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 자체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격진료가 대형병원 위주의 의료양극화를 가속화하고 환자의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는 원격진료시스템을 갖추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동네 병의원들에게 고가의 원격진료장비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원격진료는 그나마 재정상황이 나은 대형병원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환자 쏠림현상을 악화, 1차 의료기관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원격진료는 의료전달체계 및 1차의료기관 존립기반 붕괴, 의료접근성 악화, 의료시장 혼란 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며 “원격의료 산업의 경우 포커스가 의료기기에 맞춰져 있어 경제부흥 및 국민편익증진에 기여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가속화된다”며 “이 때문에 중증질환 진료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할 대형병원이 외래진료에 매달리고 있는 기형적 구조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격진료 자체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고 오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화면상으로 나타나는 환자의 모습으로 의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수치화할 수 있는 혈압, 맥박, 혈당, 심전도 등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IT기술을 이용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게 반대측 주장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원격진료가 지역적으로 고립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의료접근성에 문제가 있다면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원격진료가 아닌 지역내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원격진료 허용대상을 1차의료기관에 한정하고, 대형병원은 한정된 범위에서만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을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지난 20일 서울 63시티에서 열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관련 법을 만들 때 원격진료는 1차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할 것”이라며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입원 후 수술했던 환자를 상담하는 경우 등으로 활용 범위를 한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