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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찔리고, 의사들 ‘수난시대’ … 가중처벌만이 해답?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3-09-27 08:58:27
  • 수정 2013-10-04 13: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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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대적 약자인 환자 권리 축소될 수도 … 경쟁 위주 시스템 개선, 환자·의사간 소통 필요

국내 한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사를 구타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최근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는 개정안 통과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지만 환자·시민단체는 ‘환자의 권리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단체의 주장처럼 처벌을 강화하면 전시효과를 통해 폭력 행위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이 진료실 내 폭력 행위를 근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상대적으로 약자인 환자를 오히려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던 의사가 한 남성 환자가 내리치는 철제의자에 맞아 피를 흘리는 CCTV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돼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영상 속 가해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자신보다 소아를 먼저 진료했다는 이유로 의사를 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에는 대구에서 성형외과 시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가 담당 의사를 수차례 칼로 찌른 사건도 있었다.

얼마전 인기드라마 ‘굿닥터’에서도 김도한(주상욱 분)이 칼을 든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천안에서 개인 치과병원을 운영 중인 이모 씨(35)는 “일반인은 드라마가 다소 과장됐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 진료현장에 있는 의사로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의사가 환자로부터 폭행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의협신문이 지난 2월 회원 4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3.1%가 폭행이나 기물파손 등 진료실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밖에 폭언 등으로 진료를 방해하는 행위를 경험한 비율은 무려 95%에 달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 P씨는 이같은 현상이 급증하는 원인으로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 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꼽았다. 그는 “병원간 경쟁구도가 심화되고 진료수가가 낮아지면서 최소한의 인력으로 수익을 내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의사 개인의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오는 스트레스로 의료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환자의 불만은 쌓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의사와 환자 모두가 피해자”라고 덧붙였다.

진료실 내 폭력 행위가 의사에게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남기고 다른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서는 의료단체와 시민·환자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간호협회 등 5개 단체는 “환자와 의사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진료실 내 폭력 행위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환자의 안전을 위해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 및 협박하는 경우 가중처벌토록 한 ‘의료법 일부 개정안’이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명서를 통해 △의료법 일부 개정안 통한 진료 중 폭행·협박자 가중처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조항 준용 △환자 보호자의 출입통제 적극 협조 △응급실 내 폭력행위 발생 시 병원 차원의 자동적 고소, 고발 조치 △응급실 내 경찰인력 상주 △안전요원에 준사법권 부여 등을 촉구했다.

이학영 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특히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처벌받게 된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통과될 지는 다소 의문이다. 지난 18대 국회 당시 주승용 의원이 발의한 ‘의사폭행가중처벌법’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환자 및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폐기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는 의사와 환자간 관계를 더욱 불공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크게 △형법상의 폭행·협박죄로 처벌하는 것보다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공무집행방해죄(업무방해죄) 등 의사를 폭행한 환자 및 보호자를 가중처벌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고 형량도 과도하게 높아 형벌 체계상 다른 법률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국민 정서상 ‘의사 특권법’으로 인식된다 등 4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시민단체 관계자 A씨는 “환자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거나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한 경우에는 법적인 처벌을 가하는 게 당연하다”며 “그러나 진료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의견다툼이 발생하는 등 상황을 모두 환자의 책임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을 강화한다면 폭력 행위의 의미와 범위 등을 더욱 정확히 규정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의사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환자나 보호자에게 진료소견을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오진이나 의사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환자가 항의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경쟁 일변도의 현 의료상황에서 한 명의 의사가 진료하는 환자 수는 늘어나게 되고,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와 환자의 불만을 유발한다”며 “정부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등 구조적인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원경찰 등 경비인력을 진료실·응급실에 배치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등에서 관할 경찰서로부터 인력을 지원받아 응급실에 경비인력을 배치한 결과 폭행·협박 등 사례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립병원을 제외한 상급종합병원 등이 모두 경찰인력을 지원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사설경비업체를 고용하는 경우 소요되는 인건비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처벌 강도가 아닌 법 집행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석배 대한의료법학회 총무이사는 병원경영연구소가 발간한 ‘병원경영·정책연구’에서 “진료실 폭력의 원인은 경찰·병원의 미온적 대처인데, 병원은 이미지 때문에 적극 대처하지 않고 경찰은 원만한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형량을 높인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으면 폭력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병원·경찰이 협력해 법 집행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이나 병원 관계자 입장에서는 개정안 통과를 바랄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실제로 폭행·폭언 등이 줄어들 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의사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진료실 내 폭행은 당연히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해결책을 두고 각 단체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국민들에게 자칫 ‘아전인수’로 비춰질 수 있다. 단순한 처벌강화가 아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관련 단체간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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