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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클라라 거짓말 논란에 ‘허언증’ 이라니 … ‘공상허언증’ 뭐죠?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3-09-12 16:05:51
  • 수정 2013-09-16 18: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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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방어 기전으로 보기도 하지만 심하면 ‘해리장애’의 일종 … SNS 환경이 상황 악화 부추겨

클라라가 지난 7월 24일 출연해 ‘허언’ 논란을 빚고 있는 MBC ‘라디오스타’ 장면 캡처

요즘 방송인 클라라의 ‘페이스북 절필 사건’으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떠들썩하다. 10년 가까이 긴 무명생활을 거쳐 이제 막 섹시스타로 부상하기 시작한 그녀는 신중하지 못했던 ‘소통’ 한 번에 논란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이번 논란으로 ‘구라라(거짓말쟁이 클라라 라는 뜻)’라는 오명을 얻어 이미지는 급속도로 추락했다. 평소 SNS에서 팬들과 소통을 즐기며 자신의 생각을 공유해 온 그녀는 다양한 기부활동 등도 펼쳐 ‘개념 연예인’으로 등극했다. 인기와 함께 여러 방송에서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목을 받기 위한 부담 때문이었을까. 최근 방송에서 수차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네티즌에게 딱 걸렸다. 같은 주제를 놓고 출연한 방송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달랐다. SNS에 게재한 글과 방송에서 말한 내용이 다른 경우가 많았고, 네티즌들은 이런 상황을 캡처해 비교하며 그녀를 조롱했다.

논란 해명에서 소속사와 클라라의 말이 엇나가고 급기야 “영국 출신이라 한국 정서를 잘 몰랐던 것 같다”며 거짓말을 정서의 차이로 돌렸다. 그녀의 해명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 됐다. 단순히 뜨기 위한 거짓말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인들이 불편해하는 ‘무늬만 한국인’임을 스스로 인정해 버린 셈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클라라의 주가는 인기를 얻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대폭 하향세다. 긴 무명생활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의 행동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허언증’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클라라뿐만 아니라 최근 일부 연예인들의 거짓말은 꾸준히 논란이 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터뷰나 방송에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포장했으나 결국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이런 발언을 한 연예인들은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 Pseudologia Fantastica) 환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공상허언증이란 없었던 일을 마치 사실처럼 확신을 가지고 만들어 말하거나 일어났던 일에 자신의 공상을 덧붙여 위장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말한다. 허풍이 심한 사람은 주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과장됨을 알고 ‘내가 또 왜 그랬지’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공상허언증을 겪는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스스로조차 사실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이는 단순한 거짓말쟁이와 병적 환자로 나누는 근거가 된다.

전문가들이 허언증을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허언 자체를 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행동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혹은 ‘해리장애(解離障碍, Dissociative Disorder)’의 하나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도 꼬집는다.
해리(dissociation)란 자기 자신의 정체감, 시간에 대한 인식, 주위환경에 대한 연속적인 의식이 단절되는 현상이다. 해리장애는 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상태로 다중인격과 비슷하다. 해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진화론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허언증은 그 자체로 질환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자아상, 대인관계,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갖는 질환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윤 교수는 이어 “허언증이 심한 사람 중에는 자기정체성을 과도하게 세우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허언증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남에게 과시하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거짓말은 날로 정교해지고 커진다. 그렇다고 이번 클라라 사건의 경우 ‘허언증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서국희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경우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나 허언증과 비슷한 면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SNS를 통해 자신의 또다른 자아를 노출하는 과정에서는 허언증의 특징인 해리장애가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이 SNS상에서 돋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 없이 거짓을 늘어놓는 허언증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SNS상에서 실체를 ‘오버’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는 것은 매한가지인 듯하다. SNS를 통해 자신이 잘 나가는 것처럼 과장하거나 각색해 글을 올리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어버리는 것이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비서 양 모씨(25)도 비슷한 경우다. 외동딸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그는 자신이 제일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친구들 사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연찮게 ‘온라인 미인 콘테스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게 됐고, 이 사건 이후로 SNS를 이미지 관리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인뿐만 아니라 제3자도 자주 왕래하는 페이지로 변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있었던 ‘놀랍고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쓰면서 ‘선배 언니들로부터 사랑고백을 받은 적 있다’, ‘늘상 고백은 받았지만 공부에 전념하느라 모두 거절했다’, ‘인기 인터넷소설 작가였는데 절필했다’라는 등 동창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연재했다. 누군가 그에게 ‘그런 적 없었잖아’라고 말하면 크게 화냈다.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 사진을 ‘포샵’하지만 그는 ‘전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뗀다. 누군가 조목조목 따지면 크게 화를 내며 그런 내용을 담은 댓글을 일일이 지운다. 지금은 SNS와 이곳을 들락거리는 사람들만이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다. 그럼에도 그는 ‘정말 끝내주게 예쁘시네요’, ‘부럽다, 저도 님처럼 살고 싶어요’라는 댓글을 보면 기쁘다.

이렇게 SNS에서 자신의 실제와 다른 인격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나, 방송에서 되돌릴 수 없는 거짓말을 하는 연예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크다는 것이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욕망이나 욕구가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을 때 대리만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럴 경우 글을 올린다고 해서 남들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은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거짓말로 특별한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상허언증 환자 중에는 의외로 사회적 지위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높은 이상은 현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원동력이 됐지만 허언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남들에게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자신의 삶은 완벽해진다고 믿는다. 또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품고 있던 욕망을 사실인 양 말하며 만족감을 얻는다. 공상허언증 환자들은 자신이 말한 내용에 대해 추궁을 당하면 반사적으로 화를 낸다. 깨져서는 안 될 자신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공격적 방어 형태를 취한다.

남들이 의심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자신의 세계는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포장한다. 이들은 남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거짓말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허언증에 걸린 것 같아서 문제가 돼요’라며 병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거짓말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하물며 거짓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느껴 ‘바꿔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긴다.

서국희 교수는 “거짓말에 중독된 사람에게 가짜로 쌓여진 자존감은 모래성에 불과하고, 금방 무너진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에는 공상허언증에 심리상담이나 면담 위주의 치료법이 시도됐지만, 최근에는 뇌와 관련된 문제로 여겨 약물치료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학위를 속이거나 부자인 척 하는 것도 ‘공상적 허언증’의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극단적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하더라도 거짓말을 남발한다면 진정성 없는 삶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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