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터인가 피부과는 ‘뷰티살롱’으로 변모했다. 질환을 고치는 곳이 아닌 평범한 피부를 탄력있고 환한 피부로 개선시켜 ‘의학적 프리미엄 피부관리실’이란 말이 맞을 정도다. 아파서 가는 곳이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정작 심각한 피부질환으로 인근 피부과를 찾아가면 “우리 병원에서는 이런 치료를 하지 않아요”라며 대학병원 등 큰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환자는 이럴 경우 큰 질환이 아님에도 대학병원까지 가서 번거로운 절차를 밟으며 긴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이런 몇몇 피부과의 ‘의무 불이행’은 수많은 매체에서 지적하지만 시정되기는 요원한 게 현실이다. 의학은 과학의 하나이지만 의료는 결국 시장논리에 의해 이윤추구적으로, 크게 보면 정치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최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저명한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 씨는 “피부과에 비싼 돈 들일 필요 없다”며 “여윳돈으로 받는 게 맞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과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사람들의 미(美)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피부고민에 맞춰 시술도 각양각색이다. 게다가 의학기술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돼 ‘신상’ 시술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외모가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 맑고 탄탄한 피부는 동안(童顔)의 요소로 꼽힌다. 왠지 ‘인기 있는 그 시술’을 받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처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는 비싼 비용과 상당한 시간을 들여 관리를 받았지만 생각보다 효과는 미비한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는 20대 여성의 얘기를 소개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피부과 시술을 받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피부과에서 강조하는 동안의 요소로 한껏 업(up)된 V라인과 투명하고 탄력있는 피부가 꼽힌다. 이런 가운데 피부를 절개하지 않는 비수술적 방법으로 피부탄력을 높여준다는 ‘실리프팅’에 대한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이 시술은 인체에 무해한 녹는 실을 피부 진피층에 주사해 콜라겐 생성을 늘리고, 피부층을 단단히 잡아 올려 탄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의 종류와 실을 피부에 심는 방법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절개 없이 V라인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많은 여성들은 혹한다. 매우 마른 체형을 가진 반면 얼굴은 지나치게 통통해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여성 정 모씨(27)는 서울시 강남구 유명 피부과를 찾아 V라인 실리프팅 시술을 받았다. 약 250만원의 비용이 들었고, 회오리실 전체를 얼굴에 주입하는 시술이었다. 병원에서는 약 2~3주가 지나면서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시술 후 한 달이 지나도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정 씨는 리터칭을 받으러 병원을 찾아 불만사항을 털어놨지만, 병원 측은 “환자의 체질에 따라 효과가 달리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정 씨는 리터칭을 받고 3개월이 지난 지금도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방에서 말하는 체질도 아니고 도대체 피부과에서 내 체질이라는 게 어떤 체질인지 분명히 알고 싶다”며 “이렇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을 거라면 차라리 더 저렴한 얼굴지방흡입(최저 70만~90만원 선)을 받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요즘엔 흔히 맞는 ‘보톡스’ 주사도 누구에게나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여대생 이 모씨(25)는 다소 각진 턱이 맘에 들지 않았다. 꾸준히 혼자서 스스로에게 경락마사지를 해주고, 피부탄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영양보조제도 먹고, 한쪽 턱으로 음식을 씹거나 딱딱한 음식 섭취를 자제하는 등 아름다운 턱선을 위한 노력은 다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 씨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병원 시술을 택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모아놓은 돈으로 비용을 충당하기로 했다.
이 씨가 찾은 서울 중구의 한 피부과에서는 “턱선을 갸름하게 만드는 보톡스를 맞고 콧대를 높이면 얼굴에 입체감이 생겨 단점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피부과 코디네이터의 말에 큰 맘 먹고 두 가지 시술을 모두 받기로 결정했다. 패키지 상품이라 상대적으로 적은 5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래도 학생 입장에서는 꽤 비싼 돈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다.
하지만 효과는 한여름밤의 꿈 마냥 사라졌다. 이 씨는 “나는 아무래도 보톡스 등 약물을 흡수하는 체질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 시술 후 병원을 찾아가 시술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니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 “환자의 체질상 시술이 잘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콧등에 넣은 필러도 벌써 퍼져 자신의 본래 콧대로 회귀했다. 히알루론산 필러의 경우 퍼지면서 녹는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2주일 만에 실현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보통 필러 지속효과는 3~6개월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씨는 “이후 의사선생님의 권고에 4번 더 시술받아 200만원 정도 들였지만 시술받은 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1년 동안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께 굳이 비밀로 할 필요도 없었다”며 “왜냐하면 전혀, 하나도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화를 냈다.
반면 여드름 치료는 호평이 많았다. 대학원생 곽 모씨(26)는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 여드름이 나면 피부과를 찾아 일명 ‘염증주사(스테로이드제제)’를 맞고 약물을 처방받았다. 보통 정해놓지 않고 근처에 가까운 피부과를 찾고 있다. 곽 씨는 “미리미리 여드름이 곪기 전 예방하면 연예인 피부처럼 보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흉해지지 않게 도와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헤어디자이너 이 모씨(26)도 중·고교 시절 여드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 케이스다. 성인이 되면서 여드름은 사라졌지만 여드름 자국이 심했다. 이 씨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다보니 외모가 커리어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모님이 직접 병원에 등록해주셨다”며 “필링, 레이저 치료와 메디컬 스킨케어를 주로 받았다”고 말했다. 1년간 들인 비용은 약 600만원. 그는 “자국은 많이 옅어졌지만 ‘호전됐다’는 느낌이지 드라마틱하지는 않다”며 “확실히 비용이 비싸 다시 받기는 부담스러워 사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정한 피부트러블이 없지만 주기적으로 피부과를 찾는 사람도 있다. 뷰티 마케팅업에 종사하는 조 모씨(26)는 “피부과 진료를 꾸준히 받다가 그만두면 피부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것 같다”며 “시술을 받고 있긴 하지만 비싼 값을 못하는 게 피부과 시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씨는 대학 입학 후 프락셀 레이저, 여드름 치료를 위한 PRP시술, 필링 등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이런 습성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시술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에게 피부과 의사들이 한 말이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환자의 체질에 따라 효과가 크고 작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술 후 불만을 느끼는 여성들은 시술 전에는 당연히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시술효과가 없다고 말하면 말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아 배신감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모든 미용효과를 위한 시술은 꾸준함이 키포인트다. 피부과도 예외는 아니다. 한 번의 시술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기는 힘든 게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점은 바로 ‘과대광고’다. 보통 피부과를 찾아가기 전 시술정보와 효과는 인터넷 피부과 홈페이지 등에서 접하게 되는데, 병원 사이트에서는 대개 한 번의 시술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한 경우가 대다수다.
직접 상담을 가더라도 병원 코디네이터나 상담실장의 ‘썰 풀기’에 혹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거나 추가 시술을 함께 결정하기도 한다. 환자들이 믿고 의존하는 것은 ‘병원측의 정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극단적인 광고가 눈에 확 띄기야 하겠지만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법무법인 대세의 의료법무 전담 이경권 변호사(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책연구소장 겸 교수)는 “의료광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최근의 의료광고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하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요즘 의료광고는 정보 제공보다 마케팅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마다 홈페이지를 갖추고 있고 소비자는 홈페이지, 인터넷광고, 신문광고 등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를 얻고 있지만 이런 정보들은 광고주가 보여주기 싫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도 제공되지 않고 의료기관에도 경제적 부담이 되는 의료광고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정말로 의료광고가 효과가 있는지 실증적인 연구를 진행해볼 시점이 있다”며 “비용-효과 분석을 통해 들인 비용 만큼의 효과가 발생하는지, 소비자의 의료서비스 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를 분석해 지금처럼 너도나도 광고판에 뛰어들지 않도록 하는 제어장치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물론 시술효과가 없을 경우 환자도 자신의 시술 후 행동을 돌아다볼 필요가 있다. 병원에서 권고한 ‘시술 후 생활습관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리 가벼운 시술이라도 그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술효과를 극대화하거나, 미비한 효과를 그나마 더 부각시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 병원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에는 ‘시술 후 술을 마셨는데 괜찮은가요’ 혹은 ‘시술 후 담배를 피우고 사우나에 다녀왔는데 어떡하죠’ 등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환자도 적잖았다. 미용클리닉 코디네이터 김 모씨(32·여)는 “환자들 중에는 제대로 시술 후 규칙을 지키지 않고 효과가 없다며 불만을 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이럴 경우에는 병원 측도 난감하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은 “처음으로 피부과에 방문하시는 고객도 많지만 다른 병원에서 여러가지 시술을 받았음에도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해서 찾아오시는 고객도 상당수”라며 “피부과 전문의로서 적지 않은 비용의 피부과 시술에 대해 얼마나 올바른 이해를 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싼 피부과 비용을 치른 환자는 시술을 받고 난 뒤 당연히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며 “환자는 시술 능력이 다소 과장될 수 있는 온라인 광고보다는 병원을 직접 찾아 전문의의 진단과 설명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의도 환자에게 시술 효과를 있는 그대로 인식시켜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