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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가꾸는 남자’ 그루밍족 전성시대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3-08-08 18:39:28
  • 수정 2013-08-19 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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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력·실천력 모두 갖춘 준 남성 뷰티전문가 늘어 … 국내 남성뷰티시장 세계 1위급

피부관리실은 으레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퇴근시간을 막 넘긴 오후 6시 반 서울 청담동의 한 피부관리실에는 몇몇 남성들이 베드를 차지하고 있다. 인근 회사에서 근무를 마친 남성들이 여유롭게 누워 피부 손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삶은 달걀처럼 매끈하고 잡티없이 쫀쫀한 피부는 더 이상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곳을 주기적으로 찾는 영업사원 심 모씨(29)는 “클라이언트와 만날 때 아무래도 호감가는 인상을 줘야 계약이 쉽게 성사되는 것 같다”며 “일주일에 한번 짬을 내 모공관리를 받는다”고 말했다.
피부관리실 직원 김 모씨(여·21)는 “숍을 찾는 단골 남성고객이 많다”며 “최근엔 모공·여드름 관리 뿐 아니라 비만해결을 위한 슬리밍 관리도 인기”라고 말했다.

패션과 미용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성을 말하는 ‘그루밍족(grooming族)’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남성도 가꿔야 한다’는 모토로 전문가 뺨치는 정보력과 공격적인 실천력까지 모두 갖췄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국내 남성화장품시장 규모는 1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한국 남성용 기초화장품 시장 규모는 세계 1위 수준인 4억9540만달러(약 5600억원·2011년 기준) 규모로 전세계 21%를 차지한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화장하는 남자’는 아직까지도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전국 15세 이상 국민 1498명(여성 1000명·남성 498명)을 대상으로 화장품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남성 498명 가운데 45명(9.2%)이 비비크림·아이라이너 등 색조화장품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남성 10명 중 1명이 색조화장을 하는 것이다.

그루밍족이라는 단어가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약 5년 전이다. 몇몇 남성 아이돌 가수들이 화장을 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다. 이 당시 ‘선구자’들은 과도한 베이스 메이크업과 짙은 아이라인 등 부담스러운 화장으로 무장한 채 주로 홍대·강남역 등 번화가에서 목격되곤 했다. 남녀 불문하고 과도한 메이크업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법. 그들의 화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부담스러운 메이크업 방식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그루밍족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흑역사(창피하거나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일)’를 지우려는 듯 훨씬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예전처럼 짙은 메이크업을 고수하는 이도 있지만 요즘엔 자신의 피부타입·컬러에 맞는 비비크림을 가볍게 발라 결점을 자연스레 커버하고, 눈썹을 다듬어 깔끔한 인상을 만든다.

특히 눈썹관리는 그루밍족이 거쳐야 할 코스 중 하나다. 대학생 정 모씨(23)는 “처음엔 여자친구가 장난삼아 눈썹칼로 눈썹정리를 해 준 게 시작이었다”며 “그 때 처음 눈썹이 인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후로 여자친구에게 종종 부탁해 꾸준히 눈썹을 정리한다”고 덧붙였다. 심지어는 ‘반영구 눈썹문신’을 받는 남성도 있다. 서울 압구정동 R반영구센터에 재직했던 한 미용사는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 중에도 이런 반영구 눈썹 문신은 물론 반영구 아이라인 문신까지 받은 사람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그루밍족은 인위적이고 과한 메이크업에서 벗어나 ‘한 듯 안한 듯’ 세련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분명 인위적인 과정은 거치지만 티가 나지 않게 멋있어지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비비크림 떡칠’을 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근본부터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은 ‘피부 기초공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의 한 피부과, 점심시간 즈음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 몇몇이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단순 피부질환 때문에 찾은 게 아니다. 그들도 옆에 앉은 여성들처럼 코나 이마 등에 마취크림을 바르고 있다. 최근엔 남성들도 자신을 가꾸기 위해 피부과를 찾아 보톡스를 맞거나 여드름치료를 받는 경우가 늘었다. 이 병원 상담 코디네이터는 “가장 인기있는 시술은 인상을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필러를 이용한 콧대 높이기”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성인 남녀 5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안티에이징 산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7%의 남성이 미용을 위한 피부과·성형외과 시술을 받았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피부관리와 성형에 집착하거나 꾸준히 관리하는 남성들의 사례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남성을 위한 남성뷰티 블로거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생 제일 씨(25)는 깨끗한 피부와 세련된 패션감각으로 그루밍족의 ‘기본’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그는 “스킨·로션 등 기초제품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꾸준히 사용했지만, 본격적으로 피부관리를 시작한 것은 대학 입학 후”라며 “대학입시가 끝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거나 단점이 눈에 띌 때 이를 개선하고야 만다”고 덧붙였다.

어릴 적부터 피부에 자신 있었던 제 씨는 입시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탓인지 매끈했던 피부에 오톨도톨 트러블이 올라오고 블랙헤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권하는 기초제품을 쓰는 등 식구들도 피부관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익숙하기도 했다.

그는 뷰티 얼리어답터이지만 ‘신상(신상품)’이라 해서 무분별하게 구입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에 한해 성분을 꼼꼼히 확인하고 테스트를 거쳐 ‘딱 맞는’ 제품을 고른다. 제 씨가 즐겨찾는 제품은 각질제거에 도움되는 ‘AHA’나 ‘BHA’제품군으로 지루성 피부타입이 흔한 남성들에게 주로 추천된다.

제 씨는 “처음 화장품을 접했을 때에는 무조건 명품 백화점 브랜드만 고집했고 로드샵 제품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하지만 아무리 유명 브랜드 제품을 오랫동안 써도 원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자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품을 빠른 페이스로 사용하는 편이라 한 달에 5만~10만원을 지출하는 것 같다”며 “요새는 잡지 부록이나 SNS 이벤트를 통해 제품을 받는 등 예전만큼 돈을 많이 쓰진 않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만의 피부관리 노하우도 꾸준히 개발한다. ‘어떤게 좋다더라’라는 말을 듣고 무조건 따라하는 건 아니고, 쉽고 거창하지 않게 챙길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주로 쌀뜨물 세안을 즐기고, 수분보충을 위해 세안 후 타올 대신 손으로 얼굴을 두드려 말린다. 쉬운 방법이라 하더라도 굉장한 정성과 노력이 아니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제 씨는 “이제는 남성도 자기관리로 피부를 가꾸는 게 익숙해졌지만 아직까지는 남성성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인지 나이든 어르신이나 보수적인 남녀 가운데 ‘남자가 무슨 피부관리야?’라는 곱잖은 시선도 받는 게 사실”이라며 “한국이 남성화장품 세계 1위급인 것에 비해 인식은 아직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남성들이 당당하게 화장품 매장에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화장을 하는 남성들을 보며 ‘성적 취향’까지 의심하는 편협한 시각도 존재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존중돼야 한다. 한국 남성의 화장에 대한 관심이 세계시장을 압도하는 상황이 이같은 시대적 인식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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