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러시아는 물론 독일·일본·이스라엘 등 의료선진국도 진료를 꺼려했던 뇌병변 합병증 환아가 국내 의료기술로 새 삶을 살게 됐다. 이명덕(소아외과)·이인구(소아청소년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선천성질환센터 교수팀은 선천성 저산소 허혈성 뇌병증으로 동반된 섭식장애, 식도기능장애, 위·식도역류증, 흡인성폐렴, 우내경정맥폐쇄 등 합병증을 앓던 러시아 사할린 출신 사몰요토바 다리아나(여·10개월)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고 12일 밝혔다.
2012년 7월 쌍둥이 자매 중 동생으로 태어난 다리아나는 뇌병변 3기 진단을 받고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다리아나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 뇌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보내 수술받기를 원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러시아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였다.
이 어린이는 혼자서 최대 4분 정도 밖에 숨쉬지 못해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해야 했다. 사할린 현지 의사들은 그대로 두면 반복되는 폐렴, 영양결핍, 면역기능 저하 등으로 2~3세 이상 생존하기 어려우니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까지 했다. 부모는 이스라엘·독일·일본 등 의료선진국들을 알아봤으나 모두 ‘치료가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희망이 점차 사라져가던 그 때 서울성모병원이 에이전시를 통해 다리아나의 검사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2500만원에 달하는 검사비용이 문제였으나 러시아 현지 언론의 보도와 각종 모금 캠페인으로 다리아나의 부모는 1500만원 정도를 모금할 수 있었다.
병원 측도 사정을 듣고 검사비용 일부를 나눔의료로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며, 한국관광공사도 이에 동참했다.
다리아나는 지난달 5일 한국에 도착해 이인구 교수에게 진단과 검사를 받았다. 이 교수는 MRI·뇌파검사·위장조영검사·초음파검사 등을 통해 섭식장애, 식도기능장애, 위식도역류증, 흡인성폐렴, 발달장애, 전신마비성근육구축, 우내경정맥 폐쇄, 심한 구개열 등을 확진할 수 있었다. 그는 “뇌병변은 인구 1000명당 2~3명 꼴로 발생하는 질환이나 이번처럼 신장·체중·두위(머리크기) 성장장애, 비정상적으로 제한된 관절근육, 호흡곤란 등 여러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영양상태가 회복되면 합병증에 대한 수술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리아나는 입원 후 보름간 정맥을 통한 영양공급에 들어갔으며 다행히 체중이 0.5㎏(입국시 3.3㎏) 증가해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상태까지 회복했다. 이 소식을 들은 러시아 사할린 정부는 다리아나의 수술비용 전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19일 이명덕 교수의 집도로 수술이 실시됐다. 이 교수는 그동안 코로 영양을 공급받기 위해 있었던 경비위관을 제거했다. 이후 식도병변이 진행되는 것을 막고 영양분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식이용 위장관튜브를 삽입했다. 동시에 위·식도역류로 인한 흡인성 폐렴을 막기 위해 위저부 주름성형술을 시행했다. 또 이재영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협진해 중심정맥 협착을 치료하기 위한 풍선확장정맥성형술을 실시함으로써 입원시 계획에 없던 수술까지 모두 마무리했다.
이명덕 교수는 “심한 영양결핍증으로 신체조직이 약하고 쉽게 찢어져 세심하게 수술해야 했으며, 관절운동이 제한돼 수술 시 체위와 마취 후 기도관리 문제 등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모든 협진팀이 마음을 모아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다리아나는 추가로 영양을 공급받고 회복하기 위해 소아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아버지인 사몰요토바 안드레이 씨는 “본국과 다른나라에서 치료를 거부했을 때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 한국을 잊지 않고 다리아나처럼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와 가족에게 서울성모병원을 적극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을 되찾은 다리아나는 오는 13일 오전에 러시아로 귀국하며 병원에서 만들어준 위장관튜브를 통해 적절한 영양공급과 재활치료를 계속할 예정이다.
이번 사례는 병원·한국관광공사·해외환자유치알선업체·외국 정부 등 여러 기관이 협력해 위중한 해외환자를 치료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국내의 높은 의료수준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됐다.